국어 현실 개선을 위해 언론계가 할 일

2013.05.25 10:22

동아줄 조회 수:335 추천:18

국어 현실 개선을 위해 언론계가 할 일

최시한 / 숙명여대 의사소통 능력 개발센터장

이 글은 2005년에 한겨레신문사 한겨레말글연구소가 연 학술발표회(대주제: 국어 발전과 신문의 사명)
에서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흐름이 끊기거나 문체가 일정하지 않아도 양해하여 주셨으면 한다.

1. 국어 현실이 어지럽게 된 원인

‘아이엠에프 사태’라는 말이 있다. 잘못은 아이엠에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저지른 성싶은데, 그 기관이
큰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 말을 온 국민이 써오고 있다. 필자는 어느 신문사의 중간급
책임자에게 그 신문만이라도 ‘외환위기’라든가 ‘구제금융 사태’ 같은 말로 바꾸어 쓰라고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홍글자’(The Scarlet Letter)라는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이 있다. ‘글씨’가 아니라 ‘글자’가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영화 대부분이 ‘주홍글씨’로 번역하고 있다.

단지 낱말 차원의 두 가지 예를 들었는데, 더 이상의 예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고와 표현,
사물의 인식과 외국 문물의 수입 등에서 잘못되거나 부적절한 예를 한없이 많이 보기 때문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의 오류는 말할 것도 없다. 임자말과 풀이말이 호응되지 않는 말, 머리말과 맺음말
사이, 또 주제문과 보조문 사이에 긴밀성이 없는 말, 외국어로 반죽된 말, 거창해 보이지만 도무지 졸가
리가 잡히지 않는 횡설수설, 사실의 핵심을 놓치거나 잘못 표현한 말, 하나마나 한 같은말 되풀이 ……
우리는 그런 말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영어에 관해서는 ‘독해력’이라든가 ‘초급ㆍ중급ㆍ고급 영어’라
는 말을 쓰면서 정작 국어에 관해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으며, 국어 실력이 모자랄 경우 외국어 실력이
좋아지기 어려운데도 외국어 학습에만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 붓는가 하면, 이른바 문화 콘텐츠와
정보산업을 중요시한다면서 그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의 중심에 언어가 있으니 그 쪽 전문가를 양성해
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우려는 이의 열정을 무참히 꺾어버리는 오역투성이 책의
번역자들과, 배우가 욕설을 내뱉지 않으면 박진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영화감독들, 또 상황과 맥락
은 무시한 채 말꼬리나 붙들고 늘어지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에 둘러싸여 거칠어져 가고 있다.

국어활동을 교육하거나 비판할 때, 흔히 말하는 이의 태도라든가 지식, 윤리성 등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지금 필자는 좀 더 내적(內的)이고 심층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거칠어지고 착종된 현실의
원인, 곧 우리의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떨어뜨려 지식과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으며, 국민 통합을
깨는 것은 물론 문화적 개성과 주체성을 잃게 함으로써 우리를 국제화시대의 미아로 만들고 있는 그
원인을 드러내지 않으면,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 어려울 터이다. 현실의 문제점이 복합적이고 심각한
만큼 그 원인도 간추려 말하기 어렵다. 대략 몇 가지만 거칠게 지적해보면 이렇다.

첫째, 말에 대한 무지, 나아가 우리 말과 문화에 대한 무지와 열등감이 사회ㆍ문화 전반에 퍼져 있다.

언어능력은 인간의 핵심 능력인 사고력과 표현력 그 자체이거나 그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우리 사회
는 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다. 게다가 ‘사고력’이라는 말도, 이성적 능력(생각하는 힘)만을 주로
가리켜서, 감성적 능력(느끼는 힘, 정서적 능력, *감성력)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
이는 ‘상상력’이란 말을 자주 쓰기만 할 뿐 그것을 기르는 데는 관심이 없는 현상과 통하는, 우리 문화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 현상이다.

한편 근대화의 초기에 주체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한 채 나라마저 잃었을 때,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한국인의 병은 고치기 어려운 병이 되었다. 그리하여 자기 고유의 말과 글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생활의 근대화를 충실히 이루지 못하여 아직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에 대한
상식 수준의 기준도 마련하지 못하였고, 무분별하게 외국어 특히 영어에게 안방을 내주는 데만 열심이었다.

이제 그 자기 것 경시, 국어 경시라는 고질병은 온몸에 퍼져서 있는 말을 잡아먹는 단계에서 나아가
새말 만드는 능력 즉 조어능력마저 마비시켜 가고 있다. 신문과 잡지의 난(欄,) 이름, 상품 이름, 심지어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 이름까지가 외국어와 외국글자로 범벅이 되어 있다. 이런 문제가 의외로 더
심각한 곳은 학문 영역인데, 새로운 개념을 만든다든지 외국 이론을 들여올 때 한국어를 의식적으로
기피하기까지 한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문화와 학문은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지며 종속된
위치를 벗어나기 어려울 터이다. ‘옷’과 ‘드레스’, ‘연립주택’과 ‘빌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한국
어와 외국어 사이에는 계급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어는 거의 천골(賤骨)이 다 되었다.
‘강변여관’과 ‘리버사이드 호텔’을 비교해 보라.

둘째, 한국어 사용능력을 발전시킬 책임이 있는 연구자들과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이냐 한자 병용이냐의 표기문자 다툼에 정력을 낭비한 일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국어학자들은 대개 문장을 넘어서는 말덩어리는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아왔다. 그런가 하면
국문학자들은 작품 연구에만 매달리거나 외국 이론을 학습하여 활용하는 데 골몰하여 ‘지금 여기서’
사용하는 언어를 세련시키는 일에 소홀하였다. 그리하여 적어도 우리 국어국문학계는 어학과 문학 소양
이 모두 필요한 문장론, 문체론이 아주 빈약하며, 바람직한 의미의 수사학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수사학회, 작문학회 등이 잇달아 창립되는 것은 그러한 현실의 반증이다.

셋째, 국어교육이 부실하였기 때문이다. 국어 교육은 언어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식(이라기보다
잡동사니 정보) 중심으로, 단계적 훈련 프로그램 없이, 또 사고는 제쳐둔 채 표현(이라기보다 정서법)
위주로 이루어져 왔다. 현재 중등학교에서는 말본 교육과 글짓기 교육이 전혀 연관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그들과 문학 교육이 따로 놀고 있는데, 이 기이한 노릇은 너무도 오래 되어서 이제 아무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양성 과정에서 교사의 국어 능력을 충분히 기르지 않는데다가,
맹목적인 평균주의에 사로잡혀 학생과 시간을 배분하다보니 실습 지도가 어려우며, 입시 위주의 환경을
구실로 수업방식이 교사 중심, 암기 위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교육이 세칭 일류대학에 진학
할 점수를 따는 데는 이바지했을지 모르나, 자신의 삶을 조리 있고 세련되게 인식ㆍ표현하며, 학문 언어
의 심오하고 창의적인 세계 속에 사상의 집을 짓는 데는 거의 이바지하지 못했다고 본다.
일류대학 삼류대학 가릴 것 없이 대학생들이 똑같이 수다 수준 언어 일변도의 대중문화에 탐닉하며,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대학이나 학자를 찾기 어려운 것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

2. 일반적인 개선 방향

첫째, 도구적 언어관을 타파해야 한다. 국어 공부는 점수를 따기 위한 것이요 한국어는 한국인의 의사표현
을 돕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기에, “말이 좀 잘못 되면 어떠냐”는 소리가 지식인 입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말이 부정확한 것은 관념과 생각이 부정확하고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저급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정서에 대한 경험, 지식이 저급인 사람이라고
까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서가 취미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여야 하듯이, 한국어 능력은 한국인이 살아가
는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생각, 따라서 그 능력의 수준에 따라 삶의 가치와 보람이 좌우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혀야 한다.

도구적 언어관은 언어능력을 표현 중심으로 이해하도록 만든다. 말본 공부가 국어나 글쓰기 공부의 핵심
인 것처럼 안다든가, 주어진 글을 간추리는 게 읽기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어려운 낱말을 쓰고,
말을 매끄럽게 하며, 입담이 좋아 청중(독자)을 사로잡을 줄 알면 국어능력이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물론 표현에 중점을 둔 그런 활동과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사고능력이 중요하다.
우리는 말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꾸로 그 생각은 주로 말로 이루어진다. 도구적 언어관은 이점을 놓침
으로써 특히 교육 분야에서 공허한 말놀음을 막는 데 소홀하였다. 알맹이 없고 사실과 논리에 어긋나는
말글이 가상(사이버) 공간과 텔레비전에 넘쳐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천박하고 위험스런 일이다.

언어 혹은 국어에 대한 관념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무엇보다 교육이나 시험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육과 시험은 말로 하는 것이고 말에 관해 하는 것인 까닭이다. 예를 들어 면접시험 따위가
달라질 터이다. 면접을 하면서 짧은 시간에 불가능한 일 곧 인간됨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
의 정밀성과 논리성을 평가하게 될 터이다. 피면접자의 말은 그가 지닌 지식과 사고력의 대부분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평가할 고급의 국어능력을 지닌 면접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국어를 지식 중심이 아니라 능력 중심으로 이해하고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국어에 대한 지식은
많을수록 좋겠으나, 지식이 곧 능력은 아니다. 말본을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언어행위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와 사용하는 대상, 상황 등에 따라 무한히 변하는, 어디서나 누구나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합리적으로 고안된 단계와 절차에 따라 생각하
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고’ 훈련해야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국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
나 잘 하는 것 아니냐, 글 잘 쓰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런 상황이므로 영어 교재에는 정밀한 훈련 프로그램이 있으나 국어 교재에는 그게 빈약하여 “국어 공부
는 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학생의 국어 점수와 논술시험 점수가 비례하지 않고, 직원의 학력
과 업무수행능력이 따로따로가 된다. 한국에서, 직업상 말을 많이 써야 하는 언론계, 종교계, 교육계 등에
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은, 비유하자면 거의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능력 중심으로 국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여러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과(理科) 사람도
국어를 잘 해야 하며, 인문과학 전공자도 산업체에서 할 일이 많다든가, 국어 교육은 국어 교사만 하는 게
아니고, 사원 연수가 언어예절이나 전문 기술 연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셋째, 국어 능력, 특히 국어능력의 총화인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글쓰기 교육에 관심을 가져도 국민의
국어능력은 달라질 것이다. 외국에 나가 영어를 익히는 데 들이는 돈과 시간을 십분의 일만 글 읽기와
쓰기에 투자한다면, 국가의 문화 수준은 놀랍게 향상될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언어능력에 대해 모르는 채 졸업장에만 관심을 두며, 학교는 읽기 쓰기를 지도해 줄 여건
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맹목적인 영어 숭상’에 빠진 회사 대표는 무작정 토익 점수로 사원을 뽑는다.
이렇게 우리 말과 글에 대한 무지와 열등감에 빠진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대중가요
와 신문, 잡지 등에 영어가 마구 사용되는데, 청소년더러 영어나 영문자를 섞어 쓰지 말라고 해봐야 소용
이 없다. 서울시 같은 공공기관이 ‘뉴타운 건설’ 운운하고, 정부 부서에서 무슨 ‘로드 맵’을 발표하며,
정당 대변인이 ‘아니면 말고’식의 언어폭력을 자행하는 사회에서, 국어를 정확하고 진실하게 사용하려는
정열이 솟아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식량’을 ‘먹거리’로 대체한 결과 얻어진 국가적 이익 같은 것에
예민한 공무원 또한 바라기 힘들다. 현재의 환경에서, ‘강(江)’이 ‘가람’을 밀어내듯이 ‘키(key)’라는 말에
‘열쇠’가 밀려나면, ‘자물쇠’와 ‘쇠’(열쇠와 자물쇠를 모두 가리키는 준말) 또한 죽거나 ‘키’처럼 따로 설명
해야 하는 낱말이 되는 현상, 그런 현상 속에 들어있는 사태의 심각성에 국민의 얼마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언어는 섞이고 변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정도와 양상인데, 지금 한국 사회는 아예 그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듯하니 이 환경 전반을 개선하지 않고는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어 사용자의 언어 능력을 발전시키고 혼란된 현실을 개선할 환경을 마련하는 데는 무엇보다 언론이나
방송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점은 따로 자세히 논의한다.

3. 언론계 사람이 할 일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이나 방송계에서 일하는 이들은 국어 현실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당한 이해와
투철한 사명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대다수가 국어를 오히려 어지럽히는 데 동조해왔다고 하
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이해와 사명의식을 갖고, 해 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몇 가지 구체적으로
들어 보면 이렇다.

첫째, 언어 문제가 사고와 학문의 문제요 문화와 경제에 직결된 근본적 문제임을 확고하게 인식해야 한다.
오늘의 국어 현실 개선은, 말을 어법에 맞게 쓰도록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사고를 합리적이고
자주적이며 인간적이게 이끄는 일이다. 발레 악극 ‘호두까기 인형’을 ‘호두까개 인형’으로 바로잡는 것은
발레의 예술성을 높이는 것이며, ‘김씨의 신병(身柄)을 확보했다’를 ‘김씨를 찾아냈다’(경우에 따라 ‘김씨를
구속했다’)로 바꾸는 일은 사물을 뚜렷하고 평등하게 보도록 국민의 의식을 향상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둘째, 상업주의, 선정주의에 휩쓸려 외국어와 영문자를 함부로쓴다든가, 국어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말과
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대중의 자기 문화 열등의식에 휩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문과 잡지의 칸 이름, 방송 프로그램 이름 따위에 외국어나 외국글자 쓰기를 피하고, 국어능력이 부족한
관련 종사자들(특히 통신원, 연기자, 출연자, 사회자 등)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심하게 부자연스러운 말을 귀 따갑게 쏟아내는 텔레비전 어린이 프로그램의 출연자와 연출자들은
거의 모두 교체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는 광고, 한자를 배경에 마구 박아 넣은
일본식 광고 그림, 마지막에 원어민의 영어를 넣은 광고방송 등을 규제할 규칙이나 제도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셋째, 국어 생활 전반의 문제점을 깊이 파헤치고, 그 심각성을 알리며, 대안도 제시하는 기사와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의 온도조절부에 ‘강’이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일까?”
같은 물음을 던지고,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그런 것들이 문화와 경제를 얼마나 좀먹는지를 풀이하면 좋다.
논술고사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류, 번역을 잘못하여 생긴 학문적 혼란, 날로 떨어져 가는 국어 조어능력
등도 다루고, 각종 시험의 잘못된 국어 문제, 여러 기관의 조례와 규정이 어법에 어긋나서 생긴 혼란과 피해,
조약문의 뜻을 오해하여 생긴 국가적 손실 등을 파헤쳐 고발해도 좋을 것이다.
한글날 무렵에 소나기 치듯이 호칭어 사용법, 자주 틀리는 맞춤법 등이나 다루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넷째, 자신의 국어실력을 끊임없이 세련시켜야 한다. 언론이나 방송계 종사자들의 국어실력이 참으로 개탄
스런 예는 많다. “내일은 맑은 날씨를 보이겠습니다” 식의 어색한 말을 쓰는 것은 이제 너무도 흔해서 아예
어색하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논리가 약한 문장, 독자를 인식과 통찰로 이끌지 못하는 뻔한 내용, 재미라
고는 없는 낡아빠진 표현 등을 깨뜨리는 것이 언론계 종사자의 ‘본업’이라는, 언어능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존경받는 언론인, 진정한 대기자(大記者), 대통령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방송토론 사회자는 다름
아닌 고급의 언어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 2017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동아줄 김태수 2017.01.11 284
32 뇌졸증 예방 신비의 약 만드는 법 동아줄 김태수 2016.09.13 261
31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2012 동아줄 김태수 2016.03.08 413
30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11) 동아줄 김태수 2016.03.08 874
29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08-2010) 동아줄 김태수 2016.03.08 1356
28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05-2007) 동아줄 김태수 2016.03.08 1443
27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03-2004) 동아줄 김태수 2016.03.08 1165
26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2000-2002) 동아줄 김태수 2016.03.08 841
25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 동아줄 김태수 2016.01.21 110
24 건강을 위해 버려야할 물건은? 동아줄 김태수 2015.12.26 50
23 번개탄, 곶감, 매실 액기스의 불편한 진실 동아줄 김태수 2015.10.16 301
22 우리의 전통 차에 대하여 동아줄 김태수 2015.10.12 229
21 수유칠덕 동아줄 김태수 2015.09.14 103
20 나무 젓가락의 불편한 진실 동아줄 김태수 2015.06.01 340
19 GMO - 유전자 조작 생물체 동아줄 2015.04.11 471
18 <문장 부호> 용법 현실화, "한글 맞춤법" 일부 개정안 고시 동아줄 2014.12.15 831
17 표준어 13개 추가 인정 동아줄 2014.12.15 314
16 천부경 해설(2) 동아줄 2014.12.04 616
15 소주의 진실 동아줄 김태수 2014.01.12 605
» 국어 현실 개선을 위해 언론계가 할 일 동아줄 2013.05.25 335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2
어제:
23
전체:
1,167,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