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나의 아내인 당신에게

2007.11.07 13:03

김영문 조회 수:843 추천:131

                     분명히 나의 아내인 당신에게

    당신이 나가고 갑자기 삭막해진 집에 혼자 앉아서 잘 마실 줄도 모르는 소주를 반 병이나 마시고 있소. 우두커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구료. 우리가 결혼해서 같이 산지가 거의 십오 년이 되어 가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소. 그렇게 이해가 느리기 때문에 또 나보고 바보 병신이라고 당신이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소. 밑도 끝도 없이 바보하고는 지긋지긋해서 더 살지 못하겠다면서 그렇게 찬바람 일으키고 나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처사가 아닌지 묻고 싶소. 남들은 다 잘 나가는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발전 없는 생활의 연속에 염증을 느낀다는 말도 안정된 현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오. 더구나 거의 십오 년이나 별 탈 없이 같이 살아왔는데 왜 변함없는 마음으로 조금만 더 참고 살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요. 당신이 나를 항상 바보 취급해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보다 내가 갑자기 더 바보가 된 것도 아닌데 별안간에 이렇게 태도를 바꾸는 이유를 알 길이 없소. 처음 결혼할 때부터 당신은 내가 남들처럼 약삭빠르고 교활하게 머리를 돌릴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결혼하지 않았소. 당신이 경멸 섞어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저 소 같은 사람에 불과하오. 다른 집 남편들처럼 잽싸고 똑똑하게 기회를 탈 줄도 모르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할 줄도 모르오. 그렇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와 당신을 남들만큼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힘들게 노력하고 더 긴 시간을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왔소.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보람이 있어서 이제 십삼 년 전 초라한 이민 보따리 하나씩 들고 모질게 바람 불고 추운 11월 시카고 공항에 내렸을 때 비하면 그래도 지금은 잘 살고 있는 편이 아니요. 당신은 이것도 집이냐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도 있고 차도 비싼 것은 아니지만 새 것으로 장만해서 타고 다니고 있소. 남에게 뚜렷하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어도 집 페이먼트 한 번 늦어본 적 없고 자동차 할부금도 꼬박꼬박 제 날짜에 지불했소. 당신과 손잡고 같이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안정된 우리의 터전을 일구어내었소. 다행히 영희도 속 썩이지 않고 얌전하게 잘 커서 이제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거의 되어가고 있지 않소. 당신과 내가 이렇게 서로 도우면서 힘껏 노력해서 이제 살만해지고 있는데 당신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든 이혼 서류를 덜컥 던져놓고 집을 나가버리면 어떻게 한다는 말이요. 이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요.

    당신이 그렇게 내 가슴에 못을 박듯이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당신과 동반해서 어디 나가면 썩 돋보이는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겠지만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소. 단 한 번만이라도 돈 많고 키 크고 잘 생긴 남자와 팔짱 끼고 걸어보고 싶다고 당신이 말했을 때 그 것이 얼마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있소? 그 못난 주제에 또 무슨 말대꾸냐고 당신이 화를 낼까봐 말을 못하고 살았지만 당신의 그런 불평이 내 자존심을 얼마나 건드렸을 것인지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말이요. 당신이 바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그런 자존심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있소? 내가 썩 잘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결혼을 했을 텐데 이제 살만해지니까 당신이 구박을 하는구료. 나는 그럼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밤잠 안자면서 열심히 일했더라는 말이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요 모양 요 꼴이냐고 당신은 빈정대지만 이건 내 나름대로의 최선이요. 우리보다 돈 많이 벌고 더 빨리 발전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야 많겠지만 그렇게 비교하고 시기심을 느끼거나 스스로를 한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우리의 생활이요.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열심히 이룩한 우리의 것이요. 그것이 남의 것보다 열등하다 하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소. 나의 이 조그만 집이 나에게는 남의 대궐같이 큰 집보다 더 자랑스럽게 느껴지오. 푼돈도 쪼개 써야하는 내 생활이 나에게는 거드럭거리며 보란 듯이 낭비해대는 남의 생활보다 더 소중하오. 나는 당신이 왜 남의 생활을, 남이 가진 돈을, 그리고 남의 잘 생긴 남편을 부러워하는지 알 길이 없소.
          
    말이 나온 김에 하지만 지난 번 크리스마스 파티 때 말이요. 어쩌자고 그렇게 나 혼자 우두커니 테이블에 남겨놓고 당신만 나가서 꽤 괜찮아 보이는 남의 남편 붙들고 계속 춤을 추었느냐는 말이요. 당신은 돌아오는 차속에서 발끈해서 당신도 다른 집 부인과 춤추면서 즐기면 되는 노릇이지 뭐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했지만, 여보, 당신이 알다시피 나는 그런 숫기가 없는 사람 아니요. 더구나 춤도 출줄 모르고 당신 말마따나 키도 작고 못 생겼는데 괜스레 나섰다가 퇴짜라도 맞으면 망신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새삼스럽게 말 안 해도 당신은 잘 알지 않소. 당신이 춤 조금만 추고 내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어줬더라면 그날 밤 참 좋았을 텐데 말이요.

    당신이 요새 자주 만나고 있는 그 남자를 나도 먼발치에서 보았소. 당신이 그렇게 원하던 대로 허우대 좋고 잘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어렵사리 번 돈이 은행 쎄이빙스 구좌에서 자꾸 없어지던데 과연 그 잘 생긴 남자가 돈 다 떨어진 다음에도 당신을 공주처럼 떠받들어줄지 생각해본 적 있소? 내가 험담하는 것 같이 들리겠지만 그 사람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일 해보지 못하고 빈둥거리면서 남의 집 유부녀나 꼬드겨서 용돈 받아 살아온 게으르고 비열한 사람은 아닌지 당신 확인해 보았느냐는 말이요. 그렇게 오다가다 아무렇게나 만난 남자가 과연 나만큼 당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오? 당신이 감기 걸려서 콜록하고 기침 한 번만 해도 나는 부리나케 뛰어나가 감기약 사들고 들어오는데 그 남자도 그렇게 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당신 어려운 일 있을 때 그 남자가 나 몰라라 하고 팽개쳐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가 말이요. 그러나 나는 절대로 당신을 버릴 사람이 아니요. 이건 지난 십오 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검증된 사실이요. 가장 어려운 때가 되면 인간은 홀로 서는 것이라지만 나는 당신이 외롭고 고통스러워 할 때 맹세코 홀로 서게 만들지 않을 것이요. 나는 당신 옆에 항상 변함없이 서서 당신과 고통을 같이 나누고 당신의 괴로운 짐을 같이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소.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당신이 가장 믿을만한 남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 바라오.

    여보, 소주 한 병이 다 없어졌소. 취하는구료. 이제 그만 써야하겠소. 더 늦기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오구료. 내가 당신의 마음에 흡족한 남편이 되지 못했다는 점 미안하게 생각하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당신 마음에 들도록 하겠소.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아내였소. 내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또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하고 싶소. 당신 없이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나의 이 진실한 마음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오. 십삼 년 전 미국에 이민 와서 그 고생하며 살던 때를 생각하고 우리 손잡고 같이 또 한 번 시작합시다.      

    계속 당신의 남편이고자하는 남자로부터



김영문/Youngmoon Kim (110107) (200 x 19매)
young@esila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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