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출발

2007.11.26 04:13

김영문 조회 수:970 추천:121

                             찬란한 출발
        (이 글은 중앙일보 2007년 11월 26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귀퉁이가 해진 결혼사진 속의 어머니는 영락없는 시골처녀였다. 한복에조그만 꽃다발을 들고 이쪽을 보는 얼굴이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옆에 아버지도 잘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어색한 표정이었다. 결혼식을 올린 곳은 고향의 작은 교회라는데 하필이면 신랑 신부 머리 바로 위에 붓으로 서툴게 쓴 ‘화장실’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부모님의 이 결혼사진을 볼 때마다 외아들 영석의 가슴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곤 했다. 어머니도 그 때 꿈 많은 처녀였을 텐데 화려한 결혼식을 얼마나 하고 싶으셨을까?
    “그 때 힘들게 살았다. 이제 너한테라도 잘해서 한을 풀고 싶구나.”
    빈손으로 미국에 와서 호텔 왕으로 대성하여 갑부가 된 아버지는 영석이 결혼사진을 보며 안쓰러워할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영석이 지영을 데리고 와서 결혼 의사를 밝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기뻐하며 화려한 결혼식을 약속했다.
    “우리는 결혼한 날에도 월세 방에서 잤다. 허니문은 생각할 수도 없었지. 작은 방에서 목사님이 쪼그리고 앉아서 선하게 열심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셨다. 방이 좁아서 못 들어온 사람들은 밖에 서서 기도했어.”
    그 때의 그 단간 셋방과는 비교가 안 되는 대저택에 살고 천만 불이 넘는 호텔을 여러 개 소유했으면서도 아버지는 소탈했다. 그 옆에 다소곳이 앉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영석은 문득 꽃다발을 든 사진 속의 수줍은 신부를 보았다. 그 때로 되돌아가서 어머니에게 면사포를 씌우고 멋진 결혼식을 해드릴 수는 없을까.
    “주례 목사님은 김석훈 목사님이셨더군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영석을 보았다.
    “네가 그건 어떻게 아니?”
    영석과 지영이 의미 있는 눈을 교환했다.
    “사실은요, 아버지, 저희가 결혼 승낙을 받은 후에 한국에 있는 그 교회에 가봤어요. 목사님은 연로하시지만 지금도 예배를 직접 인도하고 계셔요.”
    “아니, 거길 갔었다구? 그 교회가 그냥 있어?”
    어머니의 눈에 반짝 눈물이 맺혔다.
    “네, 어머니. 그 주위로 큰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교회는 그냥 있어요. 읍에서는 허물고 새 건물을 짓든가 팔고 나가라고 여러 번 독촉했다지만 목사님이 꿈쩍도 안 하신대요.”
    “그런데, 거긴 왜 갔었지?”        
    아버지의 물음에 영석이 어색하게 지영을 보았다. 지영이 설명했다.
    “아버님. 저희 결혼식 때 십만 불 주신다고 하셨죠?”
    “했지. 더 있어야 되겠니?”
    “아니에요. 저희는 사실 그런 큰 결혼식이 필요 없어요. 그래서 결혼은 교회에서 하고 그 돈을 아버님 결혼하셨던 교회에 보내드리려고 해요.”
    “아니, 너희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의 눈에서 아른거리던 눈물이 떨어졌다.
    영석이 멋쩍은 얼굴로 미소하며 덧붙였다.
    “우선 그 삐뚤빼뚤한 ‘화장실’이라는 팻말부터 바꿀 작정입니다.”
    목이 메어서 침묵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잠긴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초호화판 결혼식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작은 교회의 조촐한 식장에 놀랐다. 돈 많은 사람이 더 인색하다더니.
    주례 목사님은 신랑의 아버지를 먼저 단상에 소개했다. 아버지가 이 결혼식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자 웅성거리던 식장이 조용해졌다.
    “저는 저의 가난했던 결혼식이 한스러워서 큰 예식을 준비하려 했지만 이 아이들은 화려한 결혼식이 그만큼 큰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마다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진 한 장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초라한 결혼식이 안타까웠던지 저희들이 절약한 돈을 아버지가 결혼한 교회에 보내기로 했답니다. 오늘 결합하는 두 아이들의 이 찬란한 출발을 따뜻한 마음으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숨죽이고 듣던 장내에는 감동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영석은 소리 내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 땡큐.”

김영문 / Youngmoon Kim (110807)
young@esila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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