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아, 수진아 (제 1 회)

2012.06.09 09:56

김영문 조회 수:506 추천:25




                         수진아, 수진아 (제 1 회)

(1)

  나는 남에게 정을 줄 줄도 모르고 남에게서 정을 받기를 기대하지도 않는 차가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반 당하지 않는다. 몇 년을 죽마지우처럼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태도를 표변하여 배신한다 해도 나는 그런 놈도 있는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며 별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않는다. 똑 같은 원리에 의해서 나는 실연을 당하지도 않는다. 오래 동안을 같이 지내며 백 번도 넘게 성교를 했던 여자가 갑자기 나보다 나아 보이는 남자가 생겨서 작별을 고해도 나는 그 떠나는 뒷모습에 아무 감정 없이 손을 흔들어 버릴 수 있다.
  인간 관계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는 귀소 욕망 또한 희박하던가 아니면 전연 없다. 늙으면 자기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던가 죽으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묻히고 싶다는 그런 욕망이 없다는 말이다. 어디에서건 나의 숨이 멈추는 곳에서 한 줌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 버려질 수만 있다면 그 것으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된 것은 선천적으로 얼음 덩어리처럼 차가운 성격을 타고났기 때문은 아니다. 살면서 터득한 아픈 경험을 토대로 자기 보호의 방편으로 스스로 개발한 후천적 방어 방법일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더 이상 나의 가슴에 상처를 내지 못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험난한 세파에 부대끼며 방황해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애태우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그렇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무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이후로 나는 어디에서나 아무에게나 웃고 악수할 수 있다. 겉으로만 나오는 가식적 웃음이다. 그 웃음은 돌아서면서 지워지고 웃는 그 순간에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아니하는 웃음이다. 얼굴이 구겨지면서 헤, 헤, 소리 내고 또 상대도 헤, 헤, 소리 내고 돌아서면 서로 그 뿐이다. 그렇게 돌아서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다음에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또 얼굴 구기며 헤, 헤, 웃고 다시 시작했다가 또 그 자리에서 끝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도록 모질게 닫아버린 나의 마음 속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도무지 말도 안 되도록 완고하게 자리잡고 버티고 앉아 있는 녀석이 하나 있다.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없어지지 않으며 잊을만하면 가슴 속을 헤치고 들어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인데 전연 여자다운 짓을 하지 않는다. 옷도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입고 화장하는 일도 없을 뿐더러 그 흔한 반지 한 번 끼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녀석에 대한 나의 느낌은 애틋한 그리움이라던가 그 없음으로 인해서 느껴지는 서글픈 고독이라던가 하는 그런 강도가 약한 안타까움이 아니다. 무섭게 내려 쪼이는 사막 한 낮의 살인적 태양 아래 벌거벗고 서서 통곡하며 끌어안고 입 맞추고 땀 투성이의 몸을 비벼대며 단말마의 몸부림을 치고 절정에서 허덕이다가 쓰러지고 지치면 그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그 발 밑에 엎드려 절명하고 싶은 그런 강렬하고 치명적인 그리움인 것이다. 십 수년 전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몰려 다니던 시절에는 나의 감정을 스스로 속이며 도리어 관심 없는 척, 그 녀석이 옆에 있는 것이 귀찮은 척, 짜증스러운 척 했다. 왜 그랬는지 나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아마 너무나도 진실한 내 감정을 그 녀석이 알아채는 것이 두려웠었는지도 모른다. 녀석이 가까이 오면 나는 멀어지고 따뜻한 말을 해 오면 도리어 화난 것처럼 돌아 앉아서 퉁명스럽게 빈정거리기만 했다. 나의 이런 반항적 적대적 태도에 대해서 녀석은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쾌한 내색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녀석도 나처럼 뭔가 가슴에 진짜 가지고 있는 속내를 안 보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면 그랬으면 하는 나의 바램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짜이었던 것처럼 생각되면서 나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 이상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십년도 전의 이야기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들은 헤어졌고 그 십년도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전연 모르면서 지냈다. 그러나 그렇게 엄청나도록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나는 단 한 순간도 녀석을 잊고 산 적이 없다. 마치 죽음으로 치닫는 몹쓸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신음하며 나는 언제나 녀석이 나의 곁에 있다고, 나의 곁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고 나서 녀석과 헤어진 얼마 후 나는 기성 사회에 대한 반항적이고 이단적인 행동이 문제 되어 나이 많은 원로 교수와 마찰을 빚다가 학교에서 퇴학 당하고 무직자가 되었다. 한참을 모진 고생을 하며 외톨이가 되어 내가 설 곳을 찾지 못해서 불안하게 방황하다가 그 알량한 영어 좀 하는 덕에 뉴먼 앤드 하딩이라는 미국계 유태인 합작 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한국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이 뉴먼 앤드 하딩이라는 회사는 미국 유수한 백화점 체인들과 용역 계약이 되어서 세계 각국에서 좋은 상품의 생산 공장을 찾아내어 백화점 체인들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회사였다. 생산, 품질 관리, 새 상품 개발, 창고 보관과 선적 등 모두가 이 회사에서 대행해주는 업무였다. 한국에서 그 질식할 것처럼 도식화되어 있는 사회에 제대로 섞여 들어가지 못하고 배고프게 살던 시절, 영자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가서 미국인 부사장과 인터뷰를 하고 채용되었던 것이다. 나는 고루하고 규범과 제도에 짓눌려 있는 한국 사회와는 전연 다른 개방되고 능력 위주로 운영되는 이 합작 회사의 분위기에 잘 맞아 들어가 뜻밖에도 눈부신 성장을 했고 마침내 본사의 초청을 받아서 뉴욕으로 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뉴욕에서 산지도 거의 십 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날에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그 녀석, 그 윤수진 녀석에게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질도록 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담박에 녀석의 목소리를 알아내고 온몸을 떨며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수진아! 수진아!
  한국에서의 내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 곳을 떠나면서, 마치 검은 장막으로 나의 인생에서, 나의 과거에서 완전히 차단되고 절단되어 없어졌던 것 같던 십여 년 전의 녀석과의 그 가슴 설레는 모험적인 시절이 녀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마음 속으로 왈칵 밀려 들어왔다.  

(2)
그러니까 그게 언제적이었던가? 우리들의 마음이 지금처럼 세상 사에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빈대떡 두어 점 놓고 막걸리 마셔가면서 밤새도록 지칠 줄 모르고 온갖 잡소리 떠들어대던 시절이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집에 가지 못해서 헤매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고 돈 좀 있는 밤에는 사창가를 찾아가기도 하면서 매일 매일을 마치 그 날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불 지르고 다니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 시절, 구차스럽게 다음 날을 위해서 어떤 것이라도 남겨놓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의기투합하여 하루에 하루치의 생명을 모두 소모하면서 살기로 결의했던 친구들이 네 명 있었다. 모두 장발에 검정 색 홀대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교수 따위가 나부랑 대는 소리는 기성인의 구태의연하고 창의력 없는 앵무새 소리 정도로 여기고 철저히 무시해버리던 그런 그룹이다. 요새 같으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보통의 무리밖에 안될 터인데도 그 때는 몹시 눈총을 받았다. 우리가 살인이나 역적모의를 한 사실도 없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선량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 사실도 없는데 사회에서는 우리를 망종 취급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평화를 사랑하면서 미국에서 있었던 비트족 (BEATNIK)과 버금하여 평화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피스족 (PEACENIK)이라고 부르며 전쟁과 무력과 심지어는 개인 사이에 있는 알력 조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평화 주의와 인도 주의를 신봉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궤도 위에서 이미 잘 계획되어 있는 길을 그렇게 잘 계획되어 있는 대로 아무 저항이나 비판 없이 양처럼 따라가면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는 동떨어져 우리들만의 세계 속에 파묻혀 고립되어 우리들만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그 때 한문 가르치는 조교가 있었는데 이 작자가 나를 어찌나 싫어했는지 지금 생각만 해도 나는 피가 모두 머리 꼭대기로 치솟아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다. 얼굴이 오랑우탄같이 생긴 이 작자는 나중에 한문 교재를 지정된 책방에서 구입하도록 유도해 놓고는 뒷구멍으로 구전 챙기다가 들통 나서 해고당했다. 개인 사물을 꾸려 들고 풀 죽어서 나가던 날 그 작자가 그렇게도 증오하고 폐물 취급하던 나를 비롯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그 등 뒤에 대고 박수를 쳤다. 뒤돌아보면서 최후의 발악이라도 한 번 해서 사그라진 위엄을 살려보려는 시도를 해 볼만도 할 텐데 이 작자는 그저 서둘러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 때 우리 네 명의 이단아 중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이 여자가 바로 지금도 내가 그렇게 가슴 아프게 보고 싶어하는 녀석이다. 장발에 검정 홀대바지가 나머지 세 명의 승냥이와 조금도 다르게 보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 녀석이 우리와 신체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같이 지내고 있었다. 특수한 경우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떼 지어 몰려다니다가 공중변소를 가게 된 다던가 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또 언제인가 통금에 걸려서 네 명이 모두 유치장에 갔는데 이 녀석이 우리 세 명과 분리되어 여자용 유치장으로 들어간 것 아니겠는가. 그 때 우리는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아, 쟤가 우리하고 다르구나, 하고 느끼게 됐었다. 이 윤수진은 그림을 전공하는 친구였는데 말이 없고 항상 뒤쪽에 처져 있다가도 이따금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재능이 번쩍이는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술이 반쯤 취하면 침묵에서 깨어나 광기를 부리며 다루기 힘든 야생마처럼 되어버린다. 그 단계가 지나서 더 취하면 이번에는 그늘지고 습진 바위 밑에 독을 품고 꼬리를 치켜든 전갈처럼 위험해진다. 그러면 우리는 수진을 저 혼자 가만있게 내버려 두어야 했다. 이런 때에 잘못 건드리면 맹독에 찔려 절명할 수도 있으니까.
  나와 최명도는 명작 소설을 쓰겠다고 기세를 부렸고 김현석은 연극 배우 지망생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의리와 신의로 똘똘 뭉쳐서 남녀의 생물학적 분류에는 개의치 않고 오직 정신적 맹방으로 서로의 지적 세계를 넘나들며 상대가 가진 세계를 터득하려 애쓰며 서로를 즐겼다. 우리 네 명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창의력에 대한 광적인 존경이었다. 우리도 물론 우리 또래의 꽤 티 부리는 다른 녀석들처럼 대가들의 작품을 찬미하고 비평했다. 그러나 항상 결말은 그런 작품들을 참고로 우리는 우리 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귀결하곤 했다는 점이 틀린 부분이다. 우리보다 앞서간 대가들의 위대한 작품을 다만 '거론하고 비판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거론하고 비판하는' 백치들을 우리는 경멸했다. 더 우스꽝스러운 광대들은 자기의 광범위한 지식을 전시하고 자랑하기 위하여 그런 작품들을 나열해대는 가련한 백치중의 백치들이다. 메모리 기능이 꽤 잘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노릇이긴 하겠지만 그 것만으로는 크게 자랑할 건수라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언제인가 신문에서 보니까 전화국의 교환수가 전화 번호 삼천 개를 제꺽 외워댄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것과 그 높은 지성의 기억력 좋은 백치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메모리 기능만 가진 인간의 두뇌는 별로 웃돈 주면서 사갈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네 명의 이단아들이 우리의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서 정신적 씨름을 하고 서로 부딪쳐 화내고 싸움질하고 그러다가는 붙잡고 웃고 울고 또 고민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네 명이 하나가 되어 살았다. 물론 윤수진도 나머지 셋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우리 중의 하나였다. 아니, 그렇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돌이킬 수 없는 치욕적인 사건이 터진 것이다. 역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신봉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매하며 욕망에서 해방되고 정화된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가 가장 더러운 방법으로 확인하고 만 것이다.
  그 무섭게 더운 7월 어느 날, 우리는 배낭 하나씩을 짊어지고 설악산으로 떠났다. 꼭 정상에 발을 올려 놓아야 한다는 욕망도 없었고 또 남들이 말하는 설악산을 정복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자기 도취적인 신화를 만들어내야 할 이유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여유 만만하게 세월아 네월아 중간에서 기분 내키면 소주 마시고 낮잠 자면서 가고 있었다. 설악산을 정복했다고? 미친 놈들. 개미가 코끼리를 강간한다더니.
  조그만 잡화 가게를 하나 지나서 좀 더 올라가던 우리는 오후의 폭염에 못 이겨 길을 벗어나 후미진 곳에 자리 잡고 주저 앉았다.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큰 바위를 병풍처럼 끼고 뒤 돌아 앉은 그늘진 곳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감돌고 등산객들이 주로 다니는 길에서 떨어져 은밀히 숨어 있어서 그 위치가 꽤 괜찮았다. 꼭 어느 곳에 어느 시점까지 당도해야한다는 강박관념적 목표를
가지지 않고 산에 간다는 것은 실로 유쾌한 일이다. 개미가 개미라는 사실을 알고 코끼리 엉덩이 위로 기어 올라가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흐르는 시냇물을 받아서 여기저기 몸의 땀을 씻고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이고 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밥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 녀석이 시냇물을 튀기면서 물장난을 시작하자 우리는 곧 옷 입은 채로 물에 젖었고 더위가 순식간에 식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낄낄거리고 웃고 떠들며 받아 놓았던 물을 몽땅 끼얹으며 젖어 들어 갔다. 그런데 허기진 배에 마구 마셔댄 소주가 순식간에 이성을 빼앗아가면서 우리는 동물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불행스럽게도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블라우스와 바지 속에 있는 수진의 몸이 여자라는 사실을 보았다는 말이다. 터질 듯이 밀고 나오는 가슴과 잘룩한 허리, 그리고 그 밑으로 밋밋하게 뻗어 내려간 엉덩이. 우리 나머지 셋이 가진 신체구조하고 다른 것을 보면서 우리 수컷 동물들은 모두 아랫도리가 뿌듯하게 부풀어 오르고 숨이 가빠져 계면쩍은 얼굴을 서로 외면했다. 이런 경우 대개의 비겁한 남성 동물들이 그러듯이 우리도 남아 있던 소주를 모두 마시고 더 취했다. 그리고 나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청해서 아까 지나왔던 가게까지 내려가 소주를 더 사오겠다고 말하고 위태롭게 변하고 있는 현장을 떠났다.
  술기운에 어지러워 휘청거리며 내가 가게에서 소주 다섯 병을 사 들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산길을 따라 다시 올라왔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였다. 글 쓰는 최명도는 곯아떨어져 코까지 골고 있었고 김현석은 인사불성 상태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친 것처럼 뭔가 연극 대사 같은 것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불꽃이 펄럭거리는 버너 위에 올라앉은 밥솥에서는 지독스럽도록 탄내가 연기와 함께 뿜어 나왔다.
    깔리기 시작한 어둠 속에 희끄무레 흐트러진 몸을 드러낸 윤수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허벅지까지 온통 드러난 몸을 가리려 들지도 않았다.  
    “야, 이철수.”
  윤수진이 낮은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침착한 어조가 이상하게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이리 와.”
  나는 멈칫멈칫하며 수진에게 다가갔다. 나의 눈 안에 들어온 수진의 벌거벗은 몸은 눈부셨다. 탐스러웠다. 젖은 블라우스 사이로 내보이는 팽팽한 젖 무덤과 그 아래 드러난 허벅지와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음모를, 아, 나는 안 보려고, 눈을 돌리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둔다.
  수진의 눈이 나를 보았다. 놀랍게도 그 눈은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다.
  나는 수진의 눈을 똑바로 받을 수 없어서 외면했다.
  수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이 냉소였는지 경멸이었는지 아니면 동정의 미소였는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너도 하고 싶지?”
수진이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바지 혁대를 끌러내고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온 지성과 양심과 도덕과 절제력을 맹렬히 배반하면서 나의 이 저질적 동물적 경멸스러운 욕망의 덩어리는 이미 커질 대로 커져서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수진의 보드라운 손이 그것을 잡고 힘을 주자 나는 고압선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으로 쾌감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전율했다.
  “참을 필요 없어. 네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내 몸으로 너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나도 즐거워.”
  나는 온몸을 떨며 수진의 팽팽한 몸을 덮치기를 원했다. 그 쾌락의 늪 속으로 깊이 들어가 몸부림치고 부딪치고 숨 막히는 절정에서 정신을 잃고 떨고 싶었다.
  나는 수진의 손을 뿌리치고 뺨을 한 대 갈겼다. 일어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어두워진 숲속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흑, 하고 수진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에게 어떤 위대한 힘이 있어서 그 날 수진을 또 한 번 더럽히면서 나만의 쾌락을 찾기를 거부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 날 위대했다. 그리고 훗날 그 때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그 때 이미 수진을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더러운 일이 있은 후 우리 네 명 동지의 관계는 와해되어 버렸고 나는 수진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일 년이나 지난 어느 날 수진에게서 발신인 주소가 없는 한 통의 편지가 나에게 배달되어 왔다.

  “이철수, 너는 어째서 그 날 나에게 달려들지 않았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거야. 나는 내일 미국으로 떠난다. 내 깐에는 꽤 대단한 결정을 한 셈인데 아무리 해도 누구 알릴 사람이 생각나지 않아. 그래서 기껏 생각한 게 너야. 웃지 마. 도식성과 관습성을 벗어나면 이단자 취급을 하고 개성이 소멸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이 사회에 나는 타협할 수가 없어. 그 동안 같이 다니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나는 내 마음 속에 보석처럼 간직하고 있을 거야. 윤수진.”

  나는 이 안타깝도록 짧은 편지를 가슴 두근거리며 아마 수 백 번도 더 읽은 것 같다. 감정이 절제된 문장의 뒤쪽에 무슨 뜻이 숨어 있는지 알려고 애썼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내가 이 편지를 거의 십 년이나 지난 오늘 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진이와 나는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한 무리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반사회적이며 한 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떠다니는 유목민처럼 살고 싶어 했고 따라서 귀소 본능이 희박하고 가족과의 연대감이 엷었다. 타인에게 깊은 정이나 신뢰를 주는 일도 없었고 따라서 그들로 부터의 기대감 또한 가져보지 않았다. 상대방의 행동에서 섭섭하다든가 배신감 따위를 느껴보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처음부터 아예 어떤 기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 모르게 항상 나의 의식 한 구석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는 좌절감, 소외감, 열등 의식 따위를 윤수진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잘 이해하고 쓰다듬어 주곤 했다. 내가 어려운 일이 있어 괴로워하거나 무리에서 동떨어져 혼자 외롭게 있을 때면 다가와서 씨익 웃으며 남자처럼 등을 툭 쳐주던 녀석의 손끝에서 오는 느낌이, 그 정 흠뿍 담긴 눈이 나는 그 동안 살면서 못내 서러울 정도로 그리웠다. 나의 마음 속에 항상 남아 있는 이 녀석과의 추억은 아마 내가 죽을 때에도 나의 가슴 속을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불 속에 타서 같이 재가 되어 허공에 뿌려질 것이 틀림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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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계간지 "미주 문학"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많은 구독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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