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 딕슨

2012.06.09 09:00

김영문 조회 수:539 추천:29




                                죠 딕슨


  죠 딕슨. 남자. 고향 씬시내티 오하이오. 생년월일 1930년 2월 25일.
  경찰서에서 준 서식에 죠가 적어서 건네준 인적 사항을 읽던 형사 써전트 스미스가 눈을 들어서 앞에 듬직한 자세로 앉아 있는 죠 딕슨을 보았다.
  "죠, 1930년생이 맞습니까?"
  얼굴을 더부룩하게 덮고 있는 때 묻은 수염 속에서 죠가 희미하게 미소했다.
  "맞아."
  "그럼,...... 79세?"
  "그쯤 될 거야. 이젠 햇수 세는 것도 잊고 있어."
  "맙소사. 크라이스트. 당신은 기껏 육십 대 초반쯤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죠의 인자하게 서글거리는 파란 눈이 맑았다.
  "나이가 드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늙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지 않아.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기는 하지만 늙지 않고 사는 길을 택했지. 아무래도 젊은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힘차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죠가 살고 있는 스키드 로우의 순찰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이 지나가다가 죠의 어깨를 툭 치고 아는 척했다.
  "하이, 죠. 굿 모닝."
  죠도 경찰관을 보고 미소하며 손을 흔들었다.
  써전트 스미스는 훌쩍 큰 키에 아직도 근육질의 다부진 체격을 한 이 죠를 보면서 경외감을 느꼈다. 이런 사람이 어째서 스키드 로우에서 거지 생활을 하고 있을까?
  "어젯밤 살인 사건의 범인은 세 명이라고 했던가요?"
  "세 명. 맞아."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죠 당신의 칼에 찔려서 부상 당했다구요?"
  "내가 비명 소리를 듣고 현장으로 뛰어갔을 때는 이미 박서가 칼에 찔려서 쓰러져 있을 때였어. 한 발 늦은 거야.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자 세 놈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어. 세 명 모두 칼을 들고 있었지. 그 중 앞에 있는 한 놈을 다리를 걸어서 넘어트리면서 칼을 빼앗아 바로 뒤에 쫓아오던 놈의 배를 찔렀어. 손에 걸려온 딱딱한 느낌으로 미루어서 틀림없이 녀석 갈비뼈까지 칼이 파고 들어갔을 거야."
  "그리고요?"
  "빼앗은 칼을 들고 소리치면서 뛰어들자 짜식들 놀라서 찔린 놈을 들쳐 업고 도망 쳤지. 쫓아가고 싶었지만 박서가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어."
  "범인들은 자세히 보셨습니까?"
  "세 놈 모두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어. 백인이던가 아니면 백계 히스패닉이야. 박서를 찌르면서 깜둥이 놈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고 소리쳤어. 깜둥이가 대통령이 됐으니 미국도 망할 때가 왔다고도 했어."
  "인종 범죄군요."
  "물론이야. 대가리가 빈 놈이 백인이랍시고 자랑하는 거야. 딴 거 자랑할 게 없거든. 백인으로 태어난 것은 전연 자기 능력과 관계 없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일인데 그 것 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면 그 건 정말 한심한 녀석이야. 병원마다 수배해 놓으면 곧 잡힐 거야. 상처가 클 테니까 틀림없이 병원을 찾게 돼 있어."
  "그런데 죠, 당신은 어떻게 그런 나이에 젊은 사람을 세 명이나 상대해서 싸웠죠?"
  죠가 희미하게 미소했다.
  "미국 정부에서 봉급 받으면서 배운 기술이야. 미국 해병대 백병전 조교를 했어. 한국 전 참전 때 말이야. 옛날 얘기야."
  써전트 스미스는 죠의 탄탄한 몸을 한 번 더 감탄하는 눈으로 보았다.
  "지금 박서는 어디 있어?"
  죠가 물었다. 어젯밤 그의 품 안에서 신음하다가 죽은 박서가 궁금했다.
  "크리스천 메모리얼 병원 시체실에 있습니다. 연고자를 찾고 있는데 연락할 곳도 없고 어렵군요."
  죠의 눈이 써전트 스미스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살아 있을 때도 연고자가 없었는데 죽은 사람 앞에 나설 사람이 있겠어? 스키드 로우에 거지가 돼서 살고 있는 우리를 안다고 찾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부끄럽다는 거지. 나를 연고자로 만들어줘. 뒤치다꺼리는 내가 할 테니까."
  "죠.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 박서 녀석도 좋은 친구였어. 백치였지만 항상 선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어느 한국 교회의 봉사자들이 와서 주고 간 담요를 금 덩어리처럼 끔찍이도 아끼면서 가지고 다녔는데."
  박서는 검시 과정을 거치고 사흘 후 화장되어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죠 딕슨, 죠 딕슨.
  죠의 증언을 조서로 꾸몄던 써전트 스미스는 혼자서 아직도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죠 딕슨. 최근 어디에선가 분명히 그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에서였을까? 써전트 스미스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 이름을 틀림없이 어디서 보았거나 들었다고 생각했다.

  반나절이나 걸리면서 버스를 타고 화장장까지 가서 박서의 화장된 유골 단지를 찾아 가슴에 안고 돌아온 죠의 주위로 스키드 로우의 홈레스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더러움이 번질거리는 옷을 입고 흙먼지에 새카매진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리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몇 몇은 소리까지 내면서 서럽게 울었다. 그 울음은 박서의 죽음에서 자신의 처지를 보고 서러워 하는 울음이기도 했다. 박서처럼 이제 모두 소외된 죽음을 맞이하여 한 송이의 꽃도 없이 아무의 눈길도 받지 못하면서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 죽은 박서를 위해서 기도하자."
  죠를 둘러싼 이십 여명이 손을 앞에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하느님의 종, 선하게 살다가 죽은 박서를 하느님 앞에 다시 보냅니다. 저희들이 가서 만날 때 까지 하느님께서 따뜻하게 보호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하느님이 대신 듬뿍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죠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둘러 선 스키드 로우의 동료들이 숙연한 자세로 죠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여기 유골을 조금씩 집어서 가지고 있도록 해. 박서가 항상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한 사람씩 반 줌쯤의 유골을 소중하게 쥐고 떠날 때 죠는 박서가 남기고 간 담요가 생각났다. 박서가 그렇게 아끼던 담요.
  "누구건 이 담요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모두 멈칫 서서 죠를 보았다.
  "죠, 저기 알라메다 쪽에서 자는 여자가 있어요. 어느 못 된 자식이 강간해서 임신 된 여자예요. 내 생각에는 그 여자에게 주면 요긴하게 쓸 것 같은데요."
  "아, 그래? 그런 여자가 있었단 말이지?"
  박서의 유골 단지를 자기가 자는 매트리스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은 후 죠는 그 여자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바비와 함께 담요를 가슴에 안고 찾아갔다. 기울기 시작한 해가 서쪽 하늘에 진한 빨간색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해가 떨어지자 주위가 순식간에 식으면서 냉랭한 공기가 엄습했다.
  그래, 이 담요는 임신했다는 여자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겠군. 죠는 중얼거리며 길잡이로 앞선 바비를 따랐다.
  여자는 건물 모퉁이에서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앉아 떨고 있었다. 공허하게 초점 잃은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가 죠를 보자 갑자기 경계하며 걸치고 있던 낡은 코트 자락을 턱밑까지 끌어 올렸다. 헝클어진 머리와 더러워진 얼굴이지만 죠는 이 여자가 예쁜 동양계의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미소하며 죠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당신은..... 누구예요? 후 아 유?"
  여자가 잔뜩 경계심에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부러 더 크게 미소를 띄우며 죠는 팔을 뻗어 여자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아이 엠 유어 대디. 나는 네 아빠야."
  죠는 까맣게 먼지 속에 숨어 있는 이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하니, 홧 이스 유어 네임?"
  죠의 인자한 미소가 여자의 경계심을 조심스럽게 녹이고 있었다.
  "메리."
  "메리. 좋은 이름이야. 하우 올드 아 유?"
  "스물 여섯."
  스물 여섯. 활짝 피어서 가장 행복해야 할 좋은 나이다. 죠는 기묘하게 착잡한 느낌을 누르며 가지고 온 담요로 메리의 몸을 감쌌다.
  "아이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메리의 눈에 풀어졌던 경계심이 왈칵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표독스러운 빛 까지 띄고 있었다.
  "잇 이스 마이 베이비! 내 아이예요!"
  죠는 주춤 물러섰다.
  "알고 있어. 우리는 메리를 보호하고 싶은 거야. 절대 해를 끼치지 않아. 어때? 여기 있으면 위험할 것 같으니까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 좋지 않을까? 내가 옆에 있으면 이 근처에서는 아무도 메리에게 나쁜 짓 하지 않을 텐데."
  그 것은 맞는 말이었다. 불의를 보면 성난 사자처럼 되는 죠의 해병대 기질을 아는 스키드 로우 사람들은 아무도 죠의 비위를 상하려 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조금 지나서 몸이 더 무거워지면 먹을 것도 혼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할 텐데 옆에 나라도 있어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야."
  메리의 눈이 의아해 하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죠가 조심스럽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서 팔을 뻗자 메리의 표정이 딱딱해지며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이건 내 아이에요."
  죠는 주춤했다. 안 되겠어. 오늘은 안 되겠는 걸.
  죠는 메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버림받고 살면서 강간까지 당했는데 그 굳은 마음이 쉽게 녹을 리가 없겠지.
  "알았어, 메리. 오늘은 잘 자고 나중에 생각해 봐.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야. 알고 있어. 하지만 이따금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 메리?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누군가를 한 번쯤은 믿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말이야."
  말을 마치고 한참 메리의 눈을 들여다보던 죠가 더욱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메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메리가 가만히 있었다.
  "메리, 내일 또 올게. 그 동안 잘 생각해 봐. 나를 네 아빠라고 생각해. 아이 엠 유어 대디. 기억해 둬, 오우 케이?"
  죠는 메리의 어깨를 다둑거려 주고 일어섰다.
  "그리고, 혹시 너는 챠이니스?"
  죠가 웅크린 메리를 내려다보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경계심이 많이 풀린 메리의 눈이 죠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코리안. 엄마가 코리안이에요."
  죠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랬구나. 나도 코리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코리아에서 삼년 동안 근무했어. 우리 나중에 그런 이야기도 하자꾸나."
  아쉬움을 남기며 죠가 돌아섰다.
  "바비, 가자. 오늘은 틀렸어.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어."
  같이 온 바비를 채근해서 죠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도 모르겠지.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무섭고 불안하고 의심으로 가득차게 되는 메리의 마음을.
  한참을 걷다가 바비가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더니 흥분해서 죠에게 속삭였다.
  "죠, 메리가 지금 뒤에 따라오고 있어요."
  흠칫 섰던 죠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바비, 돌아보지 말아. 그냥 똑바로 걷자."
  "알았어요, 죠."
  둘은 메리가 임신한 몸으로 따라오는데 무리가 없도록 일부러 천천히 걸어서 거처하는 곳으로 돌아왔다. 해는 이미 떨어지고 주위에는 희멀건 가로등 불빛이 음산했다.
  죠가 바비에게 말했다.
  "저쪽 구석에 잠자리를 하나 마련해 줘. 내 자리에 있는 매트리스를 빼서 깔아주면 편하게 잘 수 있을 거야."
  "아니, 죠, 내게 더 좋은 게 있어요. 내가 그걸 빼 올게요."
  바비는 신이 나서 부리나케 뛰어갔다.
  거리를 두고 따라온 메리가 더 가까이 오지 않고 서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길 바닥에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낡은 신문지 조각들이 이따금 부는 바람에 방향을 잃고 흩날렸다.
  메리를 등지고 선 죠가 오두막하게 거리를 두고 더 가까이 오지 않으며 서서 멈칫거리는 메리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메리, 알고 있어. 아무도 믿을 수 없이 살아 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아무에게도 함부로 정을 주지 못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이 세상을 우리 오늘 같이 울자. 네가 가진 두려움을 나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 끼리 우리 한 번쯤은, 한 사람쯤은 서로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기분일 것 같은데."
  항상 강하게만 보이던 죠의 목소리가 말을 마치면서 떨고 있었다.
  갑자기 옆에 따뜻한 느낌이 있어서 죠가 돌아보자 언제인지 메리가 옆에 와서 서 있었다. 그 메리의 먼지와 때로 까맣게 찌든 얼굴에 눈물이 범벅 되어 흘러내렸다.
  죠가 격한 감정으로 왈칵 메리를 끌어안았다. 메리도 죠의 커다란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다. 메리의 가느다란 어깨가 거세게 들먹이며 죠의 가슴 속에서 그 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대디! 아빠!"

  "총상이나 자상으로 병원에 치료 받으러 오는 환자가 있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역시 죠가 말한 대로 그 부상당한 녀석이 치료 받으러 병원에 들어와서 즉시 체포했습니다. 다른 두 놈도 잡힌 놈이 불어대서 힘 안 들이고 잡아들였죠. 나중에 증인으로 죠가 나와서 도와 주셔야 합니다."
  써전트 스미스가 스키드 로우의 죠가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말했다.
  "아, 다행한 노릇이야. 물론 증인으로 서지. 인종적 편견을 가진 녀석들을 나는 참을 수가 없어. 착한 박서를 다만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인 녀석들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해."
  "죠는 아주 평등하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고 저희 경찰들도 할 일이 훨씬 줄어들 것 같은데요."
  "내가 백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인종보다 당연히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 버리겠지. 스키드 로우에서 거지가 돼서 살 수는 있지만 그런 정신적 타락은 할 수 없어."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문 죠를 보며 써전트 스미스는 또 한 번 의문했다. 이 노인은 무엇 때문에 스키드 로우의 거지가 되어서 살고 있을까?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다른 좋은 뉴스가 있어서 입니다."
  "좋은 뉴스?"
  "며칠 전 박서가 죽었을 때 말한 적이 있지요? 살아 있을 때도 연고자가 없었는데 스키드 로우에서 죽은 사람을 안다고 나설 사람이 있겠느냐구요."
  죠의 눈이 의아해 하며 써전트 스미스를 보았다.
  "그래, 기억해. 그런데 왜 그런 말을 지금......."
  스미스가 가지고 온 신문을 꺼내서 펼쳤다.
  "그런데 스키드 로우의 죠 딕슨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신문에는 사진까지 나와 있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본 죠의 얼굴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소리 질렀다.
  "오우, 마이 갓! 디스 이스 미러클! 이건 기적이야!"
  로스앤젤레스 크로니클 신문에는 죠 딕슨이 스물 세 살에 해병대원으로 한국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군복 입은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에는 그 때 네 살이던 작은 친구 강대영이 죠의 손을 잡고 같이 서 있었다. 죠가 대니 보이라고 별명을 붙여서 부르던 고아였다.
  "이런,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기사를 읽어보면 알 겁니다. 박서의 살인 사건이 나기 전에 이미 어디에선가 죠 딕슨이라는 이름을 본 것 같아서 기억해내려고 애썼는데 마침내 바로 살인 사건 전날 신문에서 보았다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사진에는 이제 노인이 된 대니 보이의 얼굴 사진도 실려 있었다. 달라진 모습이지만 죠는 대니 보이의 어릴 때 윤곽을 단번에 짚어낼 수 있었다.
  "신문을 읽어 보십시오. 한국 전쟁 때의 고아가 미국에 와서 의학 박사가 되었답니다. 최근에 새로운 심장 치료법을 개발해서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에 한국 전쟁 때 자기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었던 미국 해병대 하사 죠 딕슨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이 죠 맞지요?"
  왈칵 그 시절이 떠오르자 죠의 가슴에 뭉클하고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복무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 대니 보이를 같이 데리고 오려고 무던히 애썼는데. 절차를 밟아 많은 부대원이 서명해서 상신 해 놓고 미처 수속이 끝나기 전에 먼저 귀국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제대한 후 뒤따라온 알코올 중독의 절망적 생활 속에서 대니 보이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오직 기억하는 것은 대니 보이가 잠든 사이에 살짝 도망치 듯 빠져 나와 귀국했는데 잠에서 깨어나서 얼마나 울었을까 했던 걱정이었다. 어제처럼 기억되는 그 일이 이미 거의 60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다.
  써전트 스미스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쳐줄 때 죠는 후딱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되돌아왔다.
  "신문을 드릴 테니까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전화번호도 거기 적혀 있습니다."
  써전트 스미스가 떠난 후 죠는 신문을 들고 햇빛이 밝은 곳으로 가 앉아서 돋보기를 꺼내 쓰고 신문 기사를 읽었다. 신문을 잡은 죠의 손이 떨었다.
  나를 찾고 있다는 말이지? 대니 보이.

  빌어먹을 자식들, 떠들썩하게 만들면 그만큼 신문이 잘 팔리는 모양이지?
  로스앤젤레스 크로니클 신문사의 회의실에서 많은 카메라와 취재 기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죠 딕슨은 못마땅했지만 참아야 했다.
  로스앤젤레스 스키드 로우에 사는 거지 죠 딕슨과 의학 박사 강대영의 60년만의 해후는 당연히 대단한 기사감이었다. 강대영의 노벨상 후보 선정 건으로 취재를 위해서 강대영의 거점인 뉴욕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있던 전 세계의 취재팀이 강대영을 따라 모두 로스앤젤레스로 대거 이동해 들어와서 로스앤젤레스 크로니클의 회의실 하나를 점령하고 북새통을 치면서 취재 경쟁에 열을 올렸다.
  악수하십시오, 웃으십시오, 두 분이 끌어안고 이쪽을 볼 수 있습니까?
  사진 기자의 주문에 죠는 어색하게 몇 번 응하다가 강대영에게 말했다.
  "대니 보이, 안 되겠어. 우리 슬쩍 빠져나가지. 나는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아서 싫은데."
  강대영도 죠의 어깨를 끌어안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이거 마음에 안 드는데요."
  화장실을 거쳐서 용케 빠져 건물의 뒤쪽 골목으로 나온 죠와 강대영은 바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마침내 둘만이 되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높은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인 뒷골목은 대낮인데도 해가 들지 않아 우중충했고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정체된 공기 속에는 퀴퀴한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 속에서 죠와 강대영은 둘만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대니 보이, 이렇게 날 잊지 않고 있었군."
  둘은 지저분한 뒷골목의 쓰레기통 옆에 걸터앉았다. 그 통 안에서 변하기 시작한 음식 찌꺼기의 시큼한 냄새가 이따금 바람에 묻어 번져 나왔다. 그 냄새는 강대영에게 죠를 만나기 전 쓰레기를 뒤지며 살던 그 절망적이던 어린 시절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잊게 되지만 그 중에는 더러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잊지 못하고 머리 속에 남아 있게 되는 그런 것도 있지요."
  강대영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여운을 끌었다.
  죠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강대영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대니, 네가 잠든 사이에 떠나 버렸지. 기억나?"
  "물론, 죠. 깨어보니까 죠가 없어져 버렸어요. 부대가 다 떠나버리게 울고 뛰어다니면서 죠를 찾았지요."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 내 인생에 아직도 몇 개 남아 있는 가슴 아픈 추억이 되어 버렸지."
  "뒤늦게 입국 허가가 나와서 부대를 따라 왔어요. 대대장이 임시로 자기 집에서 살게 하다가 고아원에 넣어주었죠."
  "대대장? 제임스 소령이었던가?"
  "맞아요. 아직도 기억 나는데 그 부인이 나를 몹시 싫어했어요. 더러운 아시안 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쩌다 손이라도 닿으면 끔찍스럽게 놀라면서 뒤로 물러나곤 했거든요. 아직도 그 부인의 찡그린 얼굴이 기억나요. 그 집에서 더 살 수가 없어서 나와야 했어요."
  "고생 많이 했겠군."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마침내 강대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죠는? 어떻게 살아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왜?"
  죠가 쓸쓸하게 미소했다.
  "나에게도 몇 개의 사건이 있었지."
  강한 굴곡을 가진 죠의 옆얼굴이 높은 빌딩에 가리어 조각난 하늘을 응시했다.
  "나는 이 사회에 적응해 들어갈 수가 없었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죠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나지막이 자기만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내게는 고향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어.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딸이 하나 있었지. 입대할 때 두 살이었어. 한국에서 귀국했을 때는 다섯 살이 되어 있었지. 내가 한국에서 고향으로 돌아 와 그 여자를 찾았을 때 그 딸을 낳은 여자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었어. 내가 전쟁터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더군."
  오랫동안 죠를 보지 못하고 자란 그 딸은 죠가 제대해서 찾아갔을 때 그를 멀리하며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조용하게 이야기하는 죠의 목소리 속에는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았지만 강대영은 그가 가슴으로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본 이후 나에게는 이상한 병이 생겼어. 마음의 병이 말이야. 이 세상에는 내가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거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가식과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차서 살고 있다고 느껴졌어. 이 세상 자체가 싫어졌어. 처음 얼마 동안은 그 여자와 딸이 살고 있는 집 근처를 배회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내 딸을 찾으려고 애썼지. 그런데 그 아이는 나만 보면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도망치는 거야. 내 딸이 말이야. 그 여자도 아이가 내 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어. 결국 그 집 남자가 경찰에 신고해서 나는 체포되었지. 그 아이가 내 딸이라는 말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어. 나는 경찰서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유치장에서 며칠을 자고 풀려났지. 그 후 얼마 동안을 혼자 울며 그 집 근처를 배회하다가 단념하고 나는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또 살아왔던 내 고향을 버리고 떠났어. 그리고 나는 술주정뱅이가 되어 버렸지."
  강하게 생긴 죠의 얼굴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내 딸이 나를 피하면서 다른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참을 수 없도록 가슴 아팠어. 그렇게 만든 그 뻔뻔스러운 여자는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
  빌딩 벽에 갇혀 나갈 곳을 잃은 바람이 휘익 돌개바람이 되어 먼지와 휴지 조각을 햇빛이 미치지 않는 뿌우연 허공으로 떠 올렸다. 그 바람 속에 오래 묵은 퀴퀴한 냄새가 묻혀 돌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무디어졌지만 요새도 전쟁터에서 귀국하는 병사가 공항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환영을 받으며 눈물 흘리고 상봉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 나에게는 그런 추억이 없는 거야."
  둘이 모두 말을 잃고 감정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익스큐스 미.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십 대 후반 정도의 그 사람은 목에 걸고 있던 프레스 카드를 조심스럽게 들어 보였다.
  "저는 뉴욕의 작은 신문사 비컨지의 견습 사진 기자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뒷골목에 앉아 있는 두 분의 사진을 몇 장 찍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의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다면 저 같은 견습 기자에게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죠와 강대영은 마주 보고 끄덕했다.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죠의 말에 견습 기자는 부리나케 사진기를 꺼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둘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반세기를 넘은 인간애"
  크게 인쇄된 타이틀 밑에서 그렇게 찍은 사진들 중의 하나는 다음날 아침 견습 기자가 일하는 신문 전면을 채우며 특종 기사가 되어 실렸다. 쓰레기통이 보이는 빌딩 뒷골목에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잘 어우러져 독자의 가슴을 감동으로 젖게 만들었다.
  "뭐라고 써 있는 거야? 누가 좀 읽어봐."
  스키드 로우에서 죠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신문을 가운데 두고 앉았을 때 글을 읽지 못하는 바비가 답답해서 말했다. 그러나 모두 서로 눈치만 볼 뿐 신문 기사를 읽을 수 있다고 선득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바비는 답답한 듯 둘러보다가 저쪽에 혼자 앉아 있는 메리를 보자 신문을 낚아채 들고 다가갔다.
  "두 유 리드? 읽을 줄 알어?"
  메리가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했다. 눈치를 보던 모두가 잽싸게 메리에게 와서 둘러앉았다.
  "한국 전쟁 당시의 고아가 네 살 때 당시 한국 주둔 중이던 해병 대원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 후 헤어져 서로의 소식을 모르며 살다가 그 해병 대원을 찾아 60년이 넘어 지난 오늘 눈물의 재회를 하게 되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해병 대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전쟁의 혼란 중에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이 전쟁고아가 지금은 심장 수술의 권위자가 되어 노벨 의학상 후보로 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해병 대원의 이름은 죠 딕슨으로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스키드 로우에서 세상을 등진 걸인이 되어 쓸쓸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놀라움과 감동에 벅찬 이 재회는 우리 모두에게 두 사람이 가진 인간의 정과 깊고 넓은 휴머니즘을 같이 느끼고 같이 울게 만들고 있다."
  메리가 신문을 읽어 내려가자 모두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들었다. 기사를  읽는 메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많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와 사진 세례를 피해 뒷골목으로 빠져 나왔던 이 두 사람을 뉴욕 비컨지의 견습 기자가 용케 찾아내어 찍은 사진은 신문에 인쇄되어 나오기가 무섭게 가장 많이 본 사진의 서열 맨 위에 나열되었고 다른 여러 개의 신문사에 팔려 나갔다.
  60년이 넘도록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축하의 뜻을 전해주었다.
  신문 기사를 다 읽은 메리의 눈에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죠. 대디. 아빠. 나는 아빠를 사랑해요. 메리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숙연한 자세로 듣고 있던 모두가 격한 감정을 누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대니 보이, 나는 너에게 줄게 아무 것도 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전화번호도 없어. 주소도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야. 만약 필요하다면 이 곳 경찰서로 연락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스키드 로우의 황량한 뒷길에 같이 앉아서 쓸쓸히 웃으며 죠가 말했다.
  "죠, 알았어요. 그러나 죠는 이미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어서 더 받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내 주소와 전화번호는 여기 적혀 있으니까 내가 뉴욕으로 돌아간 후에도 아무 때나 전화하면 되요."
  죠는 강대영이 내미는 카드를 받아서 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이건 신문에 냈던 사진이에요. 제가 어제 복사본을 만들었어요. 죠에게 주려고."
  죠가 60여 년 전의 사진을 받아 들고 보다가 강대영을 끌어안았다.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나는 그 때 어린 마음에도 이 사진만 가지고 있으면 죠를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미국에 오자마자 아무에게나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죠를 아느냐고, 죠를 찾아달라고 졸라대곤 했어요."
  사진을 받아 들고 격한 감정을 누르며 보던 죠가 마침내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렸다.
  "죠. 기억나요? 그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나에게 항상 말했지요? 우리는 친구라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면서도 나는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하게 들렸어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친구예요. 위 아 후렌즈, 죠. 위 아 후렌즈."
  감정을 달래며 침묵하던 죠가 입을 열었다.
  "대니 보이. 고맙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 까지도 나를 잊지 않고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강대영이 죠를 보며 다정하게 미소했다.
  "내가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에 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요? 혹시 필요한 것이라도 있다면?"
  죠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강대영을 보며 말했다.
  "있어. 그러고 보니까 필요한 것이 있어. 나에게 돈을 좀 줘."
  죠가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까 나에게 돈이 필요한 일이 곧 생길 것 같아. 미리 좀 준비 해뒀으면 좋겠어."
  "얼마나 필요해요?"
  "그저 조금만 도와주면 돼."
  "알았어요. 뉴욕에 도착하는 대로 여기 경찰서로 송금해 드릴게요."
  "고마워.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돈이 필요할 것 같아. 고마워."

  강대영이 붙여준 수표는 오천 불짜리였다. 은행 구좌가 없는 죠는 경찰서를 통해서 수표를 전달 받고 역시 수사관 써전트 스미스를 통해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현금 오천 불을 받아 들고 나오던 날 죠는 가슴 속으로 울며 말했다. 대니 보이. 고맙다.

  뉴욕으로 돌아와 죠에게 그렇게 수표를 보낸 후 삼 개월쯤 지난 어느 날 강대영은 집으로 배달되어 온 우편물을 뒤적이다가 죠가 보낸 편지를 발견하고 서재에 앉아서 반가운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대니 보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보내 주어서 고맙다. 나는 이 곳 홈레스들이 사는 곳에서 얼마 전에 강간당하고 임신해서 울고 있는 여자 아이를 하나 만났다. 이름은 메리라고 해.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어. 나는 이 아이를 내 딸이라고 부르고 내 곁에서 살게 했지. 그저께 밤에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어제 새벽에 아이를 낳았어. 아주 튼튼하고 잘 생긴 사내 아이야. 이름은 내가 대니라고 지어줬고 별명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니 보이야. 네가 보내준 돈으로 조그만 아파트를 계약해서 들어가게 해줬어. 월세도 석 달 치나 선불로 지불했고 장난감과 애기 옷도 넉넉하게 장만할 수 있었지. 정말 고맙다. 이 아이는 우리가 겪은 고통을 절대 겪지 않게 키워나갈 생각이다. 이따금 이 아이가 커가는 소식을 전해 주겠다. 죠."

  편지를 다 읽은 강대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틀 속에서 어깨가 넓고 다부지게 생긴 젊은 해병 대원 죠 딕슨이 네 살 짜리 대니 보이의 손을 잡고 서서 이쪽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영문 (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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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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