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수리 중 (4)

2007.11.25 13:06

김영문 조회 수:891 추천:133

                            내부 수리 중 (4)

    내부 수리에 이렇게 오래 걸리니 문 열기만 기다리던 단골손님들 다 떨어져 나가겠네요. 따분하게 앉아서 기다리느니 지나간 이야기라도 좀 하면 어떨까요? 재미없어도 제발 아무데도 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제가 모시는 제 카페의 단골손님이십니다. 한 번 단골이면 영원한 단골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게 언제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지금처럼 세상사에 때 묻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빈대떡 두어 점 놓고 막걸리 마셔가면서 밤새도록 지칠 줄 모르고 온갖 잡소리 떠들어대던 시절입니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집에 가지 못해서 헤매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하고 돈 좀 있는 밤에는 사창가를 찾아가기도 하면서 매일 매일을 마치 그 날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불 지르고 다니던 그런 때입니다. 그 시절, 구차스럽게 다음 날을 위해서 어떤 것이라도 남겨놓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의기투합하여 하루에 하루치의 생명을 모두 소모하면서 살기로 결의했던 친구들이 네 명 있었습니다. 모두 장발에 검정색 홀대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교수 따위가 나부랑 대는 소리는 기성인의 구태의연하고 창의력 없는 앵무새 소리 정도로 여기고 철저히 무시해버리던 그런 그룹입니다. 요새 같으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보통의 무리밖에 안될 터인데도 그 때는 몹시 눈총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인이나 역적모의를 한 사실도 없고 남의 것을 훔치거나 선량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 사실도 없는데 그들은 우리를 망종 취급했습니다. 더구나 한문 선생이라는 작자는 나를 얼마나 이를 갈며 싫어했는지 지금도 그 작자를 생각만 해도 나는 머리 꼭대기로 피가 모두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키가 도토리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자는 나중에 한문 교재를 지정된 책방에서 구입하도록 유도해 놓고는 뒷전에서 구전 챙기다가 들통 나서 해고당했습니다. 개인 사물을 꾸려들고 풀죽어서 나가던 날 그 작자가 그렇게도 증오하고 폐물 취급하던 나를 비롯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그 등 뒤에 대고 박수를 쳤습니다. 뒤돌아보면서 최후의 발악이라도 한 번 해서 사그러진 위엄을 살려보려는 시도를 해 볼만도 할 텐데 이 작자는 그저 서둘러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우리 네 명의 이단아 중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장발에 홀대바지가 나머지 세 명의 승냥이와 조금도 다르게 보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 녀석이 우리와 신체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전연 의식하지 못하고 같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특수한 경우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떼 지어 몰려다니다가 공중변소를 가게 된 다던가 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언제인가 통금에 걸려서 네 명이 모두 유치장에 갔는데 이 녀석이 우리 세 명과 분리되어 여자용 유치장으로 들어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 때 우리는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아, 쟤가 우리하고 다르구나, 하고 느끼게 됐었습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윤수진이었습니다. 그림을 전공하는 친구였는데 말이 없고 항상 뒤쪽에 처져 있다가도 이따금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재능이 번쩍이는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술이 반쯤 취하면 침묵에서 깨어나 광기를 부리며 다루기 힘든 야생마처럼 되어버립니다. 그 단계가 지나서 더 취하면 이번에는 그늘진 바위 밑에 독을 품고 꼬리를 치켜든 전갈처럼 위험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수진을 저 혼자 가만있게 내버려둡니다. 이런 때에 잘못 건드리면 맹독에 찔려 절명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의리와 신의로 똘똘 뭉쳐서 남녀의 생물학적 분류에는 개의치 않고 오직 정신적 맹방으로 서로의 지적 세계를 넘나들며 상대가 가진 것을 즐겼습니다. 우리 네 명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창의력에 대한 광적인 존경이었습니다. 우리도 물론 우리 또래의 꽤 티 부리는 다른 녀석들처럼 온갖 대가들의 작품을 찬미하고 비평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결말은 그런 작품들을 참고로 우리는 우리 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귀결하곤 했다는 점이 틀린 부분입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대가들의 위대한 작품을 다만 ‘거론하고 비판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거론하고 비판하는’ 백치들을 우리는 경멸했습니다. 더 우스꽝스런 광대들은 자기의 광범위한 지식을 전시하고 자랑하기 위하여 그런 작품을 나열해대는 가련한 백치중의 백치들입니다. 메모리 기능이 꽤 잘 발달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노릇이긴 하겠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크게 자랑할 건수라고 볼 수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요새 같으면 컴퓨터가 발달하여 손톱 크기밖에 안 되는 하드 디스크에 옥스퍼드 백과사전이 통째로 입력되는 시대인데 메모리 기능만 가진 인간의 두뇌는 별로 웃돈 주면서 사갈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네 명의 이단아들이 우리의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서 정신적 씨름을 하고 서로 부딪쳐 화내고 싸움질하고 그러다가는 붙잡고 웃고 울고 또 고민했다는 사실은 대단한 가치를 가진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네 명이 하나가 되어 살았습니다. 물론 수진도 나머지 셋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우리중의 하나였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돌이킬 수 없는 치욕적인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우리가 믿고자하는 고매하며 욕망에서 석방되고 정화된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만 것입니다.
    그 무섭게 더운 7월 어느 날, 우리는 배낭 하나씩을 짊어지고 설악산으로 떠났습니다. 꼭 정상에 발을 올려놓아야한다는 욕망도 없었고 또 남들이 말하는 설악산을 정복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자기도취적인 신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여유 만만하게 세월아 네월아 중간에서 기분 내키면 소주 마시고 낮잠 자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설악산을 정복했다구요? 미친놈들. 개미가 코끼리를 강간한다더니.
    조그만 잡화 가게를 하나 지나서 좀 더 올라가던 우리는 오후의 폭염에 못 이겨 길을 벗어나 후미진 곳에 자리 잡고 주저앉았습니다.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서 좋았고 큰 바위를 병풍처럼 끼고 은밀히 숨어 앉아 그 위치가 꽤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꼭 어느 곳에 어느 시점까지 당도해야한다는 강박관념적 목표를 가지지 않고 산에 간다는 것은 실로 유쾌한 일입니다. 개미가 개미라는 사실을 알고 코끼리 엉덩이 위로 기어 올라가는 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흐르는 시냇물을 받아서 여기저기 몸의 땀을 씻고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이고 밥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밥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한 녀석이 시냇물을 튀기면서 물장난을 시작하고 온몸이 물에 젖으니까 더위가 순식간에 식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낄낄거리고 웃고 떠들며 받아놓았던 물을 몽땅 끼얹으며 젖어들어 갔습니다. 허기진 배에 마구 마셔댄 소주가 순식간에 이성을 빼앗아가면서 우리는 동물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블라우스와 바지 속에 있는 수진의 몸이 여자라는 사실을 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터질 듯이 밀고 나오는 가슴과 잘룩한 허리, 그리고 그 밑으로 밋밋하게 뻗어 내려간 엉덩이. 우리 셋은 모두 아랫도리가 뿌듯하게 부풀어 오르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끼고 계면쩍어서 서로 외면했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의 비겁한 남성 동물들이 그러듯이 우리도 남아 있던 소주를 모두 마시고 더 취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청해서 아까 지나왔던 가게까지 내려가 소주를 사오겠다고 말하고 위태롭게 변하고 있는 현장을 떠났습니다. 술기운에 어지러워 휘청거리며 가게까지 내려가서 소주 다섯 병을 사들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산길을 따라 서둘러 올라왔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였습니다. 한 녀석은 곯아떨어져 코까지 골고 있었고 나머지 한 녀석은 인사불성 상태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친 것처럼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버너 위에 올려놓은 밥솥에서는 지독스럽도록 탄내가 뿜어나왔습니다.
    깔리기 시작한 어둠 속에 히끄무레 흐트러진 몸을 드러낸 윤수진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허벅지까지 온통 드러난 몸을 가리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야, 영문이.”
    수진이 낮은 소리로 나를 불렀습니다. 그 침착한 어조가 이상하게 나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리 와.”
    나는 멈칫멈칫하며 수진에게 다가갔습니다. 수진의 벌거벗은 몸은 눈부셨습니다. 탐스러웠습니다. 젖은 블라우스 사이로 내보이는 팽팽한 젓 무덤과 그 아래 드러난 허벅지와 음모를, 아, 저는 안 보려고 애썼다는 사실을 맹세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둡니다. 내가 옆으로 가자 수진이 눈을 뜨고 나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눈은 조용했습니다. 나는 수진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어서 외면했습니다.
    수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냉소였는지 경멸이었는지 아니면 동정의 미소였는지 저는 지금도 알 길이 없습니다.
    “너도 하고 싶지?”
    수진이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내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온 지성과 양심과 도덕과 절제력을 맹렬히 배반하면서 나의 이 저질적 동물적 경멸스러운 욕망의 덩어리는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수진의 보드라운 손이 그것을 잡고 힘을 주자 나는 온몸으로 쾌감이 전기처럼 흐르는 것을 느끼고 전율했습니다.
    “참을 필요 없어. 네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내 몸으로 너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나도 즐거워.”
    나는 온몸을 떨며 수진의 팽팽한 몸을 덮치기를 원했습니다. 그 쾌락의 늪 속으로 깊이 들어가 몸부림치고 부딪치고 숨 막히는 절정에서 정신을 잃고 떨고 싶었습니다.
    나는 수진의 손을 뿌리치고 뺨을 한 대 갈겼습니다. 일어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어두워진 숲속으로 걸어갔습니다. 등 뒤에서 흑, 하고 수진의 흐느낌이 들려왔습니다. 나에게 어떤 위대한 힘이 있어서 그 날 수진을 또 한 번 더럽히면서 나만의 쾌락을 찾기를 거부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날 위대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돌이켜보니 나는 그 때 이미 수진을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우리 네 명 동지의 관계는 와해되어 버렸고 나는 수진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나는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잠시 무직자가 되어 있다가 그 알량한 영어 좀 하는 덕에 미국계 유태인 합작 회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고루하고 도식적인 한국 사회와는 전연 다른 개방되고 능력 위주로 운영되는 이 합작 회사의 분위기에 나는 잘 맞아 들어가 눈부신 성장을 했고 마침내 본사의 초청을 받아서 뉴욕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까? 수진과의 그런 일이 있은 후 무려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로부터 뉴욕에 있는 제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온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번에는 이렇게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온 수진과의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김영문 / Youngmoon Kim
young@esila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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