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각본. 캪틴

2012.01.17 13:47

연규호 조회 수:583 추천:24

거문도에 핀 동백꽃을 영화로 하려고 했던 각본 굿바이, 마이 캡. 2007.02.04 > 등장인물 한 대장/한진석 (선장 / 40대 초반) 몇 년째 십 수 차례나 태평양 한 가운데로 원양어선을 이끈 믿음직한 선장이지만 그의 이름 한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궁금해 하는 선원도 없다. 뱃사람의 과거는 묻지 않는 법이니까. 지극히 평범한 전형적인 모범생 타입으로 보이기도 하고 가족도 사상도 없는 무정부주의자 같으면서도 외유내강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네이팜/조기성 (갑판장 / 40대 중반) 베트남에서의 무용담을 하루도 빠짐없이 입에 달고 다니는 ‘죽어서도 뼛속까지 해병대’. 전쟁을 겪은 군인출신이 흔히 그렇듯 극우반공주의자. “빨갱이들을 쓸어버리는 데 네이팜만한 것이 없다.”는 말을 인생 좌우명처럼 달고 다니는 통에 얻은 별명이지만 성격 또한 불같은 것이 네이팜의 파괴력을 닮았다. 괴팍하고 까다롭지만 사실은 원칙에 충실한 현실주의자이며 엄격하게 굴 뿐 전우애에서 비롯된 부하 선원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홍장군 (기관장 / 50대 중후반) 과묵하고 농담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엄한 아버지 같은 인상이면서도 어린 선원들에게조차 뭐 한 마디 간섭하지 않는 침묵 속의 인자함,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장군님’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사람.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사람도 기계처럼 정성을 기울인 만큼 제 몫을 다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한 대장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 장도마 (조리장 / 30대 초반) 도마에 칼질하는 속도만큼 말도 빠른 떠버리. 속 좋은 낙천주의자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줏대 없이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는 얌체이기도 하다. 최선생 (의료 담당 / 30대 중반) 인턴 과정 내내 외과 수술을 피해 다니다가 끝내 사람 몸에 칼을 대지 못해 레지던트에서 미끄러진 실패한 의사. 뱃일로 돈을 모아 정신상담 전문의로 다시 도전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보트피플과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골골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얻는다. 그 중에는 칼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총상환자부터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도 있다. 대학생 창수 (신참선원/ 20대 초반) 군대 가기 싫어 배를 탄 운동권 대학생 출신. 미 제국주의와 싸워야 하는 사명에 불타면서도 영어를 배우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진한 녀석. 유소위 (항해사 / 30대 초반) 세상 물정 모르는 해양대학교 출신. 조타백 (조타수 겸 통신 담당 / 30대 중반) 공돌이 (기관선원 / 20대 후반) 천수와 만수 (어획 선원들 / 각 20대 후반) . 트란 (20대 후반) 당 간부의 비호를 받으며 전자제품 밀수를 하다 일이 꼬여 살인을 저지르고 난민들의 배에 올라탄 청년. 난민들의 배가 단순한 탈출선이 아니라 무기와 마약 밀매를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안전한 배로 바꿔 타기’를 계획한다. 팜 (30대 초/女) 유서 깊은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공산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몰락, 언니 부부와 함께 베트남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만나던 주월 한국군 장교를 잊지 못해 한국으로 가고 싶어한다. 부모를 막 잃은 조카 따이의 엄마 역할을 떠맡는다. 따이 (12살/男) 팜의 조카. 또래에 비해 유난히 작은 몸집을 가진 따이는 탈출 과정에서 한꺼번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충격으로 모든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성 정신병 증상을 보인다. 그래서 이모인 팜이 엄마이며 한 대장이 자신의 아버지라 여긴다. 한 대장이 지니고 있는 단 한 장의 사진 속 아이가 바로 자신이라고 믿는다. 교수 (60대 후반) 영어, 불어, 독어까지 능통한 역사학자 출신이지만 정작 한국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모른다. 갱단지망생 3인방 - 알,벅스,럭키 (10대 후반들) 임산부 (30대 후반) 그리고 96명의 베트남 난민들 001 취조실 / 안 검은 화면 위에 자막이 뜬다. 자막 1986년 1월. 암전 속에서 딸깍, 하는 스위치 소리가 나자 폭격이 쏟아지는 것처럼 요란하게 형광등 스타터 전구들이 깜박여댄다. 그 불빛 아래 드러나는 한 대장, 1인용 소파에 앉아 비스듬히 고개를 꺾고 잠들었다가 쏟아지는 눈부신 불빛에 눈을 찡그린다. 달랑 낮은 테이블 하나에 1인용 소파뿐인 공간. 중고등학교 교실만한 크기에 집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말끔한 공간 양 끝으로 출입문이 하나 씩 붙어있을 뿐이다. 천장에는 가지런히 줄지어 붙어있는 형광등 행렬이 하나 건너 하나 씩 켜져 있다. 조용하다. 해쓱한 얼굴에 입술은 터지고 눈이 퀭하니 들어가 무척 피곤해 뵈는 한 대장은 소파에 들러붙은 듯 축 늘어진 채 눈만 굴려 넓은 취조실 공간을 둘러본다. 불현듯 벌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돌아보는 한 대장. 한 쪽 문을 열고 한 발을 안으로 들여놓고 선 채 한 대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깔끔한 양복 차림의 취조관 1. 문고리를 잡지 않은 다른 손에는 두툼한 A4용지 꾸러미가 한 권 들려 있다. 잠시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 그러다 한 대장이 계속 앉아있는 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힘겹게 일어선다. 엉거주춤 서 있다가 어설프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취조관 1 (문을 연 채 서서) 누구시죠? 한 대장 네? 아, 저는... 여기 조사 받으러... 취조관 1 (생각났다는 듯 반색하며) 아아, 그 선장님? 취조관 1, 문을 닫더니 접이식 의자를 들고 와 한 대장 맞은편에 펼쳐놓고 앉는다. 취조관 1 (쳐다보지도 않고 용지 꾸러미를 내려놓는다) 이름. 한 대장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네? 순간 용지 꾸러미 위에 볼펜을 내려놓던 취조관 1의 손이 딱 멈춘다. 표정이 없는 듯 묘하게 강압적인 눈빛의 취조관 1, 한 대장을 똑바로 쳐다본다. 한 대장 한... 진석. 취조관 1 (그제서야 볼펜을 가만히 놓고 손을 떼며) 직업. 한 대장 동양...해운 소속... 원양어선 동백호... 선장...... 취조관 1 잠입목적은? 한 대장 네? (또 취조관이 쳐다보기만 하자) 무슨... 말씀이신지... 취조관 1 당신 간첩이잖아? 한 대장 (손사레 치며) 아, 아닙니다. 저는... 취조관 1 (A4용지와 볼펜을 턱으로 가리키며) 써. 취조관 1, 일어나더니 출입문으로 나간다. 한 대장 (당황해서 보다가 조심스럽게) 저... 뭘 써야 합니까? 그러나 대답 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취조관 1. 한 대장, 다시 넓은 공간에 혼자 남아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다시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하얀 백지 꾸러미를 쳐다보는 한 대장.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한 대장이 응시하는 백지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멀리서부터 환청처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소란스러운 시장의 알아들을 수 없는 필리핀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빽빽거린다. 002 어느 항구 인접한 시장, 필리핀 / 밖|낮 자막 1985년 11월, 필리핀 **항구 시장 자막과 함께 화면 밝아지면 호루라기를 불며 좀도둑을 쫓는 필리핀 경찰이 지나가고,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는 최 선생과 대학생 창수가 보인다. 호객하는 장사꾼들과 구경하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인 시장 풍경이 펼쳐진다. [다른 곳] 조악한 포장의 포르노 비디오테이프 진열대를 기웃거리는 공돌이와 천수, 만수. 공돌이가 눈을 떼지 못하자 옆에서 담배피고 있던 장사꾼이 뭐라뭐라 떠들며 사라고 부추긴다. 천수 (어리버리한 표정 짓는 공돌이를 막아서며) 얼만데? (장사꾼이 눈치 보다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이자) 뭐? (공돌이를 끌고 가려는 시늉) 그 돈이면 실물을 사겠네. 장사꾼이 뭐라뭐라 소리치며 손가락을 두 개로 바꿔 보이자 못이기는 척 테입을 하나 골라 공돌이에게 안기는 천수. 천수 (키득거리며 공돌이에게) 싸게 산거야! 근데 너 이거 돌릴 기계는 있냐? 비디오? 공돌이 (도리도리) 아니. 만수 근데 뭐 하러 테이프를 사? 공돌이 (씩 웃으며) 돈 모으고 있지! 내년이면 살 수 있어. ‘아이구, 어느 세월에!’ 공돌이를 쥐어박으며 껄렁 껄렁 여기저기 구경하고 지나가는 천수와 만수. [식자재 좌판] 햇빛에 아직 여린 고수 잎을 비춰본다. 홍장군, 음미하듯 그 고수 잎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는 홍장군. 그 옆에서 장도마가 짜증도 나고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고 있다. 항해사 유소위가 뒤에서 나무궤짝을 지고 멀뚱하게 서 있다. 홍장군 (끄덕이며) 사도 되겠구만. 장도마 (상인에게 싸달라는 손짓하며 투덜투덜) 네네, 알아 모셔야지요. 여기 누가 동백호 조리장님이시더라! 유소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의아한 얼굴로 장도마에게) 조리장님 아니셨어요? (장도마가 흘겨보자 찔끔) 홍장군 (과일 쪽을 둘러보며) 바다 위에서 3개월이나 버티려면 야채나 과일을 많이 먹어야지. 여기까지 오는 일주일 내내 고기만 구워댔잖아. 장도마 조리장은 선원들이 원하는 음식을 해줄 의무가 있다구요. 홍장군 그러다 미치는 놈들 여럿 봤다. (유소위를 힐끗 보며) 지난 번 항해사는 배를 남극으로 몰 뻔 했지 아마. 유소위 (괜히 찔끔해서) 저, 전 사과를 좋아합니다! 장도마 (퉁명스럽게) 사과는 니네 엄마한테 사 달라 그래! (참다못해) 기관장님 똘마니는 어디 도망친 거 아녀요? 홍장군 (힐끗 쳐다보면 장도마 움찔한다) 쌀 사러 가야지? 그때 어디선가 한 대장이 나타나 친구처럼 홍장군 어깨에 손을 두른다. 한 대장 기관장님은 공구 파는 데나 둘러봐야 하지 않습니까? 내키지 않아 하는 홍장군을 끌고 가다시피 데리고 가는 한 대장. 홍장군이 사라지자 씨익 웃더니 유소위를 돌아보는 장도마 장도마 무겁고 잘 썩고 냉동시킬 수도 없는 과일 따위, 흥! 정육점으로 다시 가자! 종류별로 아주 뷔페 상을 차려줄 테다! 희희낙락 유소위를 끌고 가는 장도마. [뒷골목 어느 상점 뒷문] 타르르, 탁! 빈 리볼버 탄창을 돌리다 끼워 총구를 들어 허공에 겨눠보는 갑판장 네이팜. 옆에서 필리핀 상인이 수다스럽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네이팜 (쳐다보지도 않고) 얼마? 상인 (오른손을 다 펼치고 왼손가락 두 개를 더 펼치며) #$@%@! 네이팜 (힐끗 보더니 상인의 왼손을 잡아 손가락을 접게 한다) 이건 5백이면 충분 해. 오케? 상인 할 수 없다는 듯 손을 내민다. 네이팜, 거울을 보면서 권총을 허리춤에 꽂고 셔츠를 내려 본다. 권총자루가 삐죽 튀어나와 성가신 표정을 짓는데, 상인이 뭔가 들어 보이며 히죽 웃는다. 종아리에 감출 수 있는 권총 홀스터. 상인, 의기양양하게 손가락 하나를 치켜 보인다. [시장 어느 창고] 나무 궤짝 뚜껑을 뜯어내자 짚으로 뒤덮인 술병들이 드러난다. 그 중 한 병을 뽑아 라벨을 살피는 한 대장.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표정. 뒤에서 홍장군이 보고 있다가 기웃거린다. 홍장군 그건 뭔데 그리 비싸게 생겼어? 한 대장 싱글몰트 위스키라는 겁니다. 위스키하면 싱글몰트가 진짜죠. 홍장군 (콧방귀) 양주는 뭐 캡틴 큐면 땡이지. 사람은 싱글로 살면 안 좋은 법이여. 푸흐흐, 웃으며 궤짝을 덮는 한 대장. 옆에서 손바닥 비비고 있는 상인에게 ‘얼마?’하는 표정을 짓는다. [시장통] 주위를 살피며 뒷골목에서 나오는 네이팜 어깨를 툭 치며 반가운 척 하는 조타수 조타백. 조타백 뭐 사셨어요? (떠벌떠벌) 요즘 남지나 해 역사상 가장 많은 해적들이 들끓는다더구만요. 그게 다 베트남에서 나오는 보트피플 때문이라잖아요. (은밀하게) 바다에 나오는 거지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금붙이며 돈 될 만한 걸 의외로 많이 갖고 있다네요. (히죽) 우리도 뭐 봐서 한 탕 챙겨볼까요? 네이팜 (힐끗) 그럼 해적한테 털린 원양 어선 이야기는 못 들었냐? 조타백 (기겁) 네? 정말요? 네이팜 다 너 같은 썩어질 놈들이 봉변당하는 거 아냐. 겉으로 봐선 그게 해적인지 보트피플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게 문제인 거지. 가다보니 앞서 등장한 공돌이, 천수, 만수를 만나고 - 이어 최선생과 창수, 그리고 홍장군과 한 대장과 합류한다. 그 뒤에서 짐을 잔뜩 진 장도마와 유소위가 그들을 소리쳐 부른다. 짐을 나눠 지고 웃으며 시장통을 활기차게 걸어 나오는 동백호 선원들. 003 항구, 필리핀 / 밖|밤 불타는 노을이 내리는 항구를 뒤로 하고 출발하는 동백호. 004 동백호 주방 / 안 지글지글 볶아낸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접시에 담긴다. 과일과 된장찌개가 뒤섞인 무국적 상차림을 가운데 두고 떠들썩하게 밥을 먹는 선원들. 천수가 공돌이를 쥐어박으며 놀린다. 천수 뭐든지 실전 연습이 최고라니까! 돈 아깝게 그깟 테입은 뭐하러 사냐? 만수 형아들 따라 세계 정복에 함께 나서볼텨? 공돌이 (볼멘소리) 그러다가 형들도 거 뭐시냐. 에이아이디... 몹쓸 병 얻어 죽어. 그 사람... 록키 허드...처럼. 조타백 록 허드슨! 임마, 그 냥반은 남자 밝히다가 죽은 거지. 천수 세상에 널린 게 여잔데 왜 그랬나 몰라. 취향도 별나지. 최선생 에이즈는 전염병이야. 남자 여자 안 가린다. 그 말에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는데, 홍장군이 한 마디 한다. 홍장군 이놈들아, 그러다 에이디 걸리기 전에 뼈 삭아 뒤지겄다. 푸하하하... 다시 웃음이 터지는 식탁. 주눅이 들어 밥만 꾸역꾸역 퍼 넣고 있는 창수 머리를 휘휘 문지른다. 천수 어디, 우리 대학생 창수는 딱지나 떼고 왔나? (바지춤을 만지는 시늉) 어디 함 볼까? 네이팜이 뜬금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반사적으로 긴장하며 일제히 돌아보는 선원들. 네이팜 (한 대장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며)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한 대장이 고개 끄덕여 승낙하자 선원들을 돌아보며) 너무 무리 하지 말고 일찍 들 자도록 해. 장도마 (섭섭한 얼굴로) 아니 이제 오늘의 메인 요리가 나오는데. 네이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식량도 아껴 두도록 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선원들. 네이팜이 나갈 때까지 조용하다가 문이 닫히자 다시 떠들썩하게 웃어댄다. 005 한 대장의 선내 순찰 몽타주 - 선실 공간 소개 / 안 [선원 선실] 요란하게 코골며 자고 있는 선원들.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고 불을 꺼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한 대장이다. [기계실] 랜턴을 들고 여기저기 살펴보는 한 대장. [냉동고] 온도도 체크하고, [선실 복도] 걸어오다가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에 멈칫하는 한 대장. [갑판장실] 조업 스케줄과 지도, 날씨 리포트 등을 펼쳐놓고 점검하는 네이팜. 똑똑, 노크 소리에 돌아보면 한 대장이 문을 연다. 한 대장 (웃으며) 아직 안 자고 있었나? (네이팜 일어서자) 한 잔 할까? 006 선장실 / 안 작은 탁자 하나에 펼친 조촐한 술상. 홍장군이 치즈와 과일 안주 접시를 내려놓자 한 대장이 침대 밑에서 위스키 병을 꺼내 딴다. 홍장군 뭐 모셔두기만 하는 건 줄 알았더니 따긴 따네. (한대장이 따라주는 술을 킁킁 냄새 맡으며) 뭐가 다른가? 한 대장 연세 드실수록 좋은 술을 마셔야 된답니다. (잔을 들며) 자, 무사 항해를 위하여. 잔을 마주치는 세 사람. 그러나 마시는 건 홍장군 혼자. 한 대장과 네이팜은 잔에 입술만 댔다가 내려놓는다. 홍장군 (두 사람을 보며) 뭐야, 이 사람들이. 한 대장 (웃으며 어깨 으쓱) 좋은 술은 향기로 마시는 겁니다. 네이팜 (여전히 딱딱하게) 예년보다 늦은 태풍이 있답니다. 조업 일정을 조금 앞당기는 게 좋겠습니다. 한 대장 알겠네. 네이팜 (챙겨 온 서류 몇 장을 내밀며) 참고하실 만한 자료입니다. (시계를 보고) 늦었습니다. 조타실 들렀다가 취침하겠습니다. 네이팜, 깍듯이 인사하고 선장실을 나간다. 홍장군 (끌끌 혀를 차며) 도대체 누가 선장이고 갑판장인지 원. 한 대장 (웃으며) 갑판장이 철저하게 해주니 나야 좋지요 뭐. 홍장군 (나무라듯) 내 말이! 자네 같은 선장질이면 나도 하겠네! 하하하,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는 한 대장. 홍장군 농담으로 듣지 말아. 독하고 난폭하게 구는 게 강하다고 착각하듯 너그러운 건 약하다고 무시당할 수 있는 거야. 뱃놈들은 자기보다 약한 대장을 따르고 싶어하지 않지. 한 대장 (빙긋) 뭐, 그럼 갑판장이 대신 하면 되죠. 대장이나 선장보다 더 높은 장군님이신데 뭐가 걱정이에요? 끌끌끌, 혀를 차는 홍장군. 007 조타실 / 안|밤-아침 휘파람 불며 밤바다를 응시하며 키를 잡고 있는 조타백과 항해사. 네이팜이 들어오자 척 경례를 붙인다. 네이팜 당번이 누구야? 유소위 네, 네! 접니다! 조타백 우리 항해사님께서 초행이니까 제가... 오리엔테이숑. 네이팜 (힐끗) 술이나 그만 먹고. 네이팜이 나가자 닫힌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조타백, 책상 밑에 놓아두었던 럼주 병을 꺼내 홀짝거린다. 조타백 (럼주 병 주둥이에 쪽쪽 입 맞추며) 오 캡틴! 나의 캡틴! 캡틴 없이 긴긴 밤을 어찌 새우라구! (항해사에게 한 잔 따라주며) 자 한 잔 받으셔요, 소위님. 유소위 아, 전... 괜찮은데... 조타백 (잔을 입에 갖다 대다시피 하며) 괜찮긴 뭐가. 오늘 아님 부산항에 돌아갈 때까지 술 마실 기회 없어요. 항해사님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많잖아요? 헤헤. 더 거절하지 못하고 술을 받아 마시는 유소위. 같이 잔을 비우고 한 잔 더 따라주는 조타백. 창밖을 둘러보며 캬! 한다. 조타백 날씨 좋고! 이런 밤에 술 마시라고 자동항해 장치가 있는 거지! 전면 창밖으로 펼쳐진 검은 바다 위로는 새파랗게 칠한 듯 코발트 빛 밤하늘에 별빛이 쏟아진다. 별빛에 반짝이던 수면이 이윽고 불그스름하게 물든다 싶더니, 어느새 눈부신 햇살이 부서지며 밝아온다. 그 위로 드르렁 드르렁 코 고는 소리. 카메라가 조타실을 다시 비추면, 항해 키 옆 책상에 댓자로 뻗어 자고 있는 조타백과 엎드려 잠든 유소위. 조타백, 돌아눕다가 제풀에 놀라 버둥대면서 쿵 떨어진다. 그 바람에 항해사도 놀라 깬다. 조타백 아흐...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나 무심코 전면을 본 조타백, 눈이 휘둥그레진다. 졸린 눈으로 멍하니 보던 유소위도 놀란다. 유소위 (앞을 가리키며) 어어... 008 선장실 / 안 벌떡 일어나는 한 대장 놀란 얼굴 위로, 조타백 (마이크 목소리) 비상! 충돌한다! 009 취조실 / 안 볼펜을 쥔 채 비스듬히 기대 잠들어 있다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움찔 잠 깨는 한 대장. 첫 장면의 취조실 안이다. 탁자 위 진술서를 쓰던 A4용지를 한 쪽으로 치우고 놓인 쟁반. 국밥 한 그릇과 깍두기뿐이다. 한 대장이 돌아보면 저쪽 문으로 막 나가다가 한 대장을 돌아보는 정장 차림의 여직원 하나가 보인다. 한 대장에게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는 엉거주춤 취조실을 나가는 여직원. 멍하니 닫힌 문을 보다가 자기 손에 들린 쓰다 만 진술서를 보는 한 대장. 이미 쓴 것들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볼펜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수저를 드는데 그 볼펜이 또르르 구르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볼펜을 주으려 몸을 숙이는 한 대장. 그때 여직원이 나간 쪽 반대편에 붙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취조관 2의 하체가 보인다. 첫 장면의 취조관 1과 다른 사람이다. 역시 접이식 의자를 펼쳐 한 대장 맞은편에 앉는 취조관 2. 한 대장, 볼펜과 수저를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자 취조관 2, 웃는 얼굴로 밥을 먹으라는 손짓을 하고는 한 대장이 써 놓은 종이를 집어 후르륵 살펴 본다. 한 대장, 머뭇거리다가 수저를 든다. 탁자가 낮기 때문에 웅크린 듯한 자세가 되어 국밥을 한 수저 떠 입으로 가져가다가 문득 자기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취조관 2와 눈이 마주친다. 국밥을 입에 넣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왜 그러나 싶어 마주 보는 한 대장. 취조관2 (다시 씩 웃으며) 얼마 안 쓰셨네? (문을 향해 갑자기 큰 소리로) 미쓰 김! 갑작스런 취조관의 고함소리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한 대장. 좀 전의 여직원이 나갔던 문을 열고 빼꼼 들여다본다. 여직원 네? 취조관2 여기 종이 좀 더 갖다 드려! 여직원 (조심스레) 얼마나요? 취조관2 많이! 한 대장, 들고 있던 수저를 슬그머니 국밥에 내려놓고 등을 편다. 여직원, 다시 문을 열고 A4용지 열 권 정도를 품에 안고 들어온다. 탁자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여직원. 취조관2 (손짓하며) 다 드셨나보다. 치워라. 수저가 꽂힌 국밥 쟁반이 들려 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는 한 대장. 여직원, 쟁반을 들어 나가려다가 한 대장을 돌아보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직원 저... 차는 뭘로 하시겠어요? 커피와 녹차가 있는데... 한 대장 아, 저... 취조관2 (딱 잘라) 커피로 해. 여직원 네... 여직원이 나가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한 대장을 말없이 응시하던 취조관 2가 일어난다. 한 대장 저, 잠시만요. (돌아보는 취조관 2) 뭘 얼마나 써야 합니까? 저 여기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는데... 할 말은 다 했는데... 취조관2 한진석 씨, 올해 몇이지? 한 대장 마흔 둘... 취조관2 나이 그만큼 쳐 먹도록 한 일이 고작 다섯 장 밖에 안 돼? 할 말을 잃고 바라보는 한 대장을 남겨두고 나가는 취조관2. 여직원이 들어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내려놓고 나가려는데, 한 대장 잠깐만요. 시종일관 주눅 든 듯한 모습의 여직원, 깜짝 놀라 돌아본다. 한 대장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여직원 누구요...? 한 대장 그 사람들, 베트남 사람들 말입니다. 010 수용소 취조실 / 안 그늘 속에 앉아 있다가 백열등 불빛이 확 끼쳐오자 눈을 찡그리는 팜. 솔기가 터지고 꾀죄죄한 아오자이 차림, 해쓱한 얼굴. 팜과 테이블 하나를 놓고 안기부 요원과 통역관이 앉아있다. 안기부 이름. 통역관 (베트남 말로) 이름? 그러나 팜은 고개를 떨군 채 대답하지 않는다. 안기부 이름! (탁자를 두드리며) 이것 봐! 당신이 월남 출신이라는 걸 증명해야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이름과 출신지를 말해! 팜, 통역관이 베트남 어로 말하는데도 묵묵부답이다. 안기부 (답답하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대며 혼잣말처럼) 이거야 원... 도대체 무슨 신분증이라도 있어야지. 통역관 한진석이라는 작자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이들 모두를 간첩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안기부 지난 10년 간 월남을 탈출한 난민 수가 몇 명인지 알아? 그 중에 월남 정부가 보트피플에 관해 언급한 게 몇 번이나 될 거 같나? 테이블에 둥근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눈부신 불빛을 응시하고 있던 팜의 손끝이 가늘게 떨린다. 그 위로 안기부 요원의 목소리. 안기부 (소리) 이번이 처음이라구. 이건 단순한 난민 탈출 사건이 아니야! 팜이 응시하는 탁자 위 불빛의 중심, 가장 밝은 부분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면 그 한 가운데에서 붉은 꽃이 피어난다. 011 정원 - 팜의 꿈, 베트남 / 밖|낮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들이 정원 가득 피어난다. 그리고 푸르른 녹음 아래 천진난만한 얼굴로 정원을 거니는 10대 소녀인 팜. 정원 맞은편에서 팜의 부모와 언니가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부른다. 그들의 뒤로는 전통 베트남식의 2층 가옥이 아름답게 서 있다. 가족을 향해 뛰기 시작하는 팜. 그때 꽃이었던 것이 화르륵 저절로 불붙어 타오른다. 깜짝 놀라 주춤하는 사이, 팜을 둘러싼 모든 꽃들이 불붙는다. 이윽고 수풀과 나무까지 집어삼키는 화염. 정원 맞은 편 쪽에 서 있던 가족도 불길에 휩싸여 실루엣만 보인다. 당황과 충격에 물드는 팜. 그때 뭔가 공기를 찢으며 급강하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팜을 덮친다. 012 공동 주택 침실 / 안|아침 그 요란한 소리는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 허름한 베개 위에서 흠칫 놀라 잠에서 깨는 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면 주위엔 조카 따이를 포함한 어린 아이들 몇 명이 줄줄이 누워있는, 군대 막사 같은 공간이다. 문 밖에서 누군가 소리 낮춰 실랑이를 벌이는 기척이 들린다. 013 공동 주택 거실 / 안|아침 마치 싸구려 유스호스텔 로비 같은 모습의 거실. 무장한 군인 둘을 상대로 애원에 가까운 항의중인 남자, 팜의 형부. 팜의 언니는 프론트 같은 공간에서 불안한 얼굴로 지켜본다. 군인1 (베) 돌아오는 일요일까지 짐 싸서 이동할 준비하라구. 형부 (베) 아니 갑자기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그동안 돈 냈잖아요. 군인1 (베 / 군인2를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늉) 지금 이 사람이 누구한테 뭘 냈다고 그러는 거지? 군인2 (베 / 고개 저으며) 우린 그저 사정이 딱해서 편의를 봐준 거지. 우리도 그동안 꽤 무리했어. 이젠 어떻게 더 안 돼. 군인1 (베 / 형부의 뺨을 툭툭 때리며) 이제 남들처럼 조금 불편하게 사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할 때가 된 거지. (의미심장하게) 안 그러면 불편이 아니라 고달파질 테니까. 군인들, 제 할 말만 끝내고 나가 버린다. 황망하게 현관문을 바라보는 형부와 언니. 형부 전 재산을 다 바치다시피 했는데... 벌집 같은 그 농장 주택으로 갈 수는 없어...! 언니 (얼굴을 감싸 안으며) 우리 이제 어쩌지? 형부 (결심한 듯 언니를 보며) 짐을 싸자! 의아하게 남편을 보는 언니. 014 공동 주택 침실 / 안 귀 기울여 듣다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팜.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작은 액자를 가슴에 품는다. 부모님과 언니, 형부, 조카 따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따이, 새근새근 잠자면서도 손에 쥔 작그마한 금불상 모형을 놓지 않는다. 015 어느 군부대 일각 / 밖|밤 삼엄한 경비 아래 어둠에 잠긴 군부대 전경. 016 장교 사무실 / 안|밤 어두운 군 간부 사무실.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닫고 숨을 죽이는 그림자 하나. 사무실 내부의 구조에 익숙한 듯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써치 라이트를 피해 캐비닛으로 다가간다. 끼리릭, 끼릭... 번호를 알고 있는 듯 캐비닛을 열고 손을 집어넣어 뭔가 더듬어 찾는 남자. 트란이다. 017 어느 항구, 베트남 / 밖|밤 투박한 뱃사람의 손에 고무줄로 돌돌 말은 작은 돈뭉치가 건네진다. 형부 뒤에 불안하게 떨고 서 있는 팜의 가족을 힐끗 본 뱃사람, 선착장에 정박한 낡은 어선을 가리킨다. 뱃사람 (베) 타슈. 곧 출발할 거요. 형부, 짐을 들고 가족들을 재촉하는데 모자를 깊이 눌러쓴 트란이 뱃사람에게 돈을 건네고 배로 향하는 것을 본다. 형부, 의아한 얼굴로 뱃사람에게 다가간다. 형부 (베) 저 배에 우리만 타는 거 아니었습니까? 뱃사람 (베 /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돈뭉치를 흔들며) 설마 이 돈으로 배 한 척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형부 (베) 소개받은 사람한테 5천 동이나 냈단 말입니다. 뱃사람 (베 / 짜증스럽게) 그래서 탈거야, 따지러 돌아갈 거야? (황망하게 바라보는 형부에게) 서두르지 않으면 앉을 자리도 못 건져. 저 배는 지정좌석제가 아니거든. 참담하게 일그러지는 형부. 영문을 모르는 따이가 불안하게 바라보자 팜이 안심시켜주려는 듯 어깨를 보듬어 준다. 018 난민선 창고선실 / 안 껄렁한 선원에게 안내받아 도착한 선실 입구에서 팜의 가족은 더욱 아연실색한다. 창고로 쓰던 것 같은 좁은 공간 가득 남녀노소 난민들이 바글바글하다. 형부 (베 / 화가 치미는 듯) 이런...... 언니 (베 / 남편 팔을 잡으며) 어서 앉을 자리나 마련해요. 따이가 처음 타 보는 배 안 풍경이 신기한 듯 복도로 쪼르르 달려가 기웃거린다. 형부 따이! 이리 와! 복도 끝 살짝 열려있는 선장실 문 안을 기웃거리는 따이. 문이 벌컥 열리며 험악한 표정의 선장이 나온다. 따이와 팜 가족을 슥 훑어보더니 따이를 툭 친다. 난민선장 (베) 애들 간수 잘 하쇼. 배는 손바닥만 해도 뭐가 잘 없어져. 한 번 잃어버린 건 찾을 수가 없지. (선실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 자자, 곧 출발할 거요. 팜의 가족, 선실 입구 옆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는다. 선장, 입구에서 선실 안 사람들을 둘러보며 짝짝 박수를 친다. 선원들이 그 뒤에 와서 뭔가 준비하듯 늘어선다. 난민선장 (베) 자, 주의 사항을 알려줄 테니 잘 들으쇼! 우선 여러 가지 불미스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분이 가진 금품을 모두 수거하겠소! 맡기지 않은 물건에 대해선 절대 책임지지 않을 거고, 이유를 막론하고 다투는 것들은 무조건 바다에 던져버릴 거요! 후회하지 말고 지금 선원들에게 맡기는 게 좋을 거요! 선원들, 난민들 사이를 돌며 이것저것 거두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이 묵직한 가방을 건네자, 선원1 (베 / 퉁명스럽게) 이런 건 알아서 챙기쇼. 난민선장 (베)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갑판 위로 나오지 말 것! 어떤 질문도 하지 말 것! 미국까지는 한 달 넘게 걸리고 식량도 부족하니 하루 한 끼 식사와 끊임없이 잠자는 일에 익숙해질 것! 똥도 아낄 것! 형부 (베) 이 배에 탄 사람이 모두 몇 명입니까? 난민선장 (베 / 대수롭지 않은 듯) 100명밖에 안 돼. 선원까지 다 하면 (생각하다가 발견한 듯) 모두 108명인가? 오호... (히죽거리며) 배 이름을 백팔번뇌라고 바꿔야겠군. 선장, 문득 따이 주머니에 든 작은 금불상 모형을 발견하더니 대뜸 빼 간다. 따이, 화들짝 놀라 되찾으려고 손을 뻗는다. 난민선장 (베 / 살피며) 이거 진짜 금이요? 형부 (베) 아닙니다. 도금한 거죠. 난민선장 (베 /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제 주머니에 쏙 넣는다) 이런 거 갖고 꼭 싸움이 나더라구. 맡아 두겠소. 따이 (베 / 떼쓰듯) 싫어! 줘! 팜 (베 / 타이르듯) 따이, 아저씨가 맡아주는 거야. 나중에 꼭 찾아줄게, 응? 그때 한 쪽에서 비좁은 자리에 발 뻗다가 실랑이가 벌어진다. 난민선장 (베 / 손가락질 하며) 말했지! 어떤 이유로든 싸우면 누구라도 바다에 던져버린다고! 두 번 말하지 않아! (나가며) 10분 후에 소등하고 출발할 테니 준비하쇼! 선장, 선원들과 함께 선실을 나간다. 형부와 언니, 선실 안을 둘러보며 긴 한숨을 내쉰다. 그들 눈에 비친 각양각색의 난민들 모습. 환기도 안 되는데 아랑곳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3인방 녀석들,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 칭얼대며 울어대는 아이들, 그 와중에도 연신 거울을 보며 머릿결을 쓸어 넘기는 여자아이 등등. 3인방 녀석들, 옆에 앉은 트란이 힐끗 보자 ‘뭐?’하는 눈빛으로 본다. 지그시 쏘아보는 트란의 눈빛이 매섭다. 은근히 주눅들어 담배를 끄려고 하는 3인방. 트란 (베) 한 대 줘. 그러자 낄낄거리며 한 대 건네고는 더욱 신나게 담배를 피워대는 3인방. 트란, 자기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녀석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트란 (베) 환기 안 되니까 한 명씩 돌아가면서 피워! 씨... 눈을 흘기며 담배를 끄는 3인방 녀석들. 019 항구 / 밖|밤 어둠을 틈 타 털털거리며 선착장을 떠나는 어선. 부두 가장자리에 선 군인 둘이 담배 불을 붙이다 배를 바라본다. 조타실에 불이 켜지고 선장과 조타수가 선명하게 보인다. 선장, 히죽 웃으며 군인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군인들, 답례하듯 손을 들어 보인다. 시커먼 바다를 향해 멀어지는 배. 020 난민선 선실 / 안|밤 어두운 선실 안, 가끔 끙끙대는 소리와 코 고는 소리.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서로 기대고 겹쳐져서 대부분 잠든 사람들 모습이다. 021 난민선 선장실 앞 복도 / 안 어두운 복도에서 문틈으로 들여다보이는 선장실 안. 스탠드 불빛 아래 선장이 맡아주겠다고 수거한 금품들을 뒤적이는 모습이 보인다. 따이의 금불상 모형 발가락을 조심스럽게 깨물어보더니 실망한 표정을 짓는 선장, 검은 비닐 봉투에 그것들을 쓸어 넣고는 둘둘 만다. 벽에 붙은 작은 앉은뱅이 책장을 약간 치우고 그 틈에 비닐봉투를 밀어 넣는 선장. 선장, 불을 끄고 복도로 나온다. 어두컴컴한 복도 문 뒤에 웅크리고 있는 따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갑판 위로 올라가는 선장. 따이, 선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022 난민선 선장실 / 안 끙끙대며 책장을 밀어놓고 벽 틈 공간을 들여다보는 따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안쪽엔 배관라인이 지나가고 있다.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가 보는 따이. 의외로 꽤 넓다. 비닐봉투에서 금불상 모형을 찾아내고는 좋아하는 따이. 그것을 품에 안고 웅크려 눕는다. 스르르 잠이 드는 따이. 023 난민선 갑판 / 밖|아침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 뿌뿌- 하는 소리를 내며 비슷한 크기의 낡은 어선 한 척이 난민선에 접근한다. 선장, 선원들과 함께 갑판에 나와 어선을 맞는다. 천천히 선체를 맞댄 상대 편 어선 갑판에 지저분한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완전히 해가 뜨기 전의 미명 속에 얼굴을 잘 알아볼 수가 없다. 여-!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하려던 선장이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선장 (베) 토니? (미간을 찌푸리며 보다가) 아닌데...? 상대 편 어선 갑판의 사내들, 히죽 웃는 얼굴들. 024 난민선 창고선실 / 안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선실 안. 잠들었다가 문득 깨어 주위를 둘러보는 팜. 팜 따이...? 언니 (베 / 부스스 일어나) 응? 왜 그래? 팜 (베 / 일어나며) 따이가 보이지 않아. 찾아볼게. 더 자. 언니 (베) 엄마인 나보다 네가 더 낫구나. 팜, 조심스럽게 난민들 사이를 지나며 두리번거리다 복도로 나간다. 025 난민선 선실복도 / 안 선장실 문 앞까지 가며 작은 소리로 따이를 부르는 팜. 그때 갑자기 총성이 울린다. 흠칫 놀라 돌아보는 팜. 026 난민선 창고선실 / 안 갑자기 터지는 총성에 부스럭거리던 기척이 조용해진다. 바깥에서 나는 것이지만 선명한 총 소리다. 잠시 숨죽이던 난민들, 웅성이기 시작한다. 난민1 (베) 무슨 일이야?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난민2 (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밖에 나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난민1 (베) 그래도... 왜 아무도 안 내려오는 거지? 불안해하는 난민들. 이윽고 갑판 쪽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기척이 들린다. 027 난민선 선실복도 / 안 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가 선실 쪽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손목을 잡는다. 놀라 돌아보면 따이. 갑판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따이 (베) 우리 혼난다! 일루 숨어! 이모! 팜을 이끌고 선장실로 들어가는 따이. 028 난민선 창고 선실 / 안 선실 입구에 선원들인 듯한 사내들의 실루엣이 보인다 싶은 순간, 그들 중 하나가 스위치를 올려 선실 안이 갑자기 밝아진다. 어리둥절한 난민들 앞에 나타난 건 어선에 타고 있던 사내들. 칼자국 따위의 흉터 따위로 해적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해적들 뒤 복도로 선장이 질질 끌려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본 난민들이 웅성이기 시작하자, 해적들 중 한 명이 필리핀 말로 뭐라 소리치며 권총을 들어 천장을 향해 한 발을 쏜다. 여자들이 꺅, 비명을 지르지만 곧 움츠리며 조용해진다. 해적대장 (어설픈 베트남 말로) 여러분의 협조가 따르면 빨리 끝난다! 대여섯 명의 해적들이 난민들 사이로 들이닥쳐 짐을 뒤지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저항하거나 거추장스럽게 굴기만 해도 닥치는 대로 밀치고 때리며 가방이며 보따리를 빼앗아 풀어 헤친다. 형부 (베 / 긴장해서 해적들을 바라보며 혼잣말) 선장한테 돈을 맡긴 게 다행이로군. 해적들, 대장을 바라보며 뭐 마땅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는 듯 뭐라 소리친다. 해적대장, 짜증을 내며 손가락질로 뭐라 지시하고는 선장실 쪽으로 향한다. 해적들, 난민들 중에 예닐곱 쯤 되는 비교적 젊은 여자들을 골라 일으켜 세우더니 선실 밖으로 나가라고 밀친다. 잠시 영문을 몰라 하던 난민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챈다. 연신 거울을 보던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첫 번째다. 그녀의 아버지인 듯한 사내가 ‘안 돼!’ 외치며 매달리자 가차 없이 권총 손잡이로 내리찍는 해적. 임산부는 일으켜 세웠다가 배가 남산 만 하자 그냥 주저앉힌다. 얻어맞고 쓰러진 여자의 아버지, 주위의 젊은 녀석들에게 소리친다. 여자아버지 (베) 이놈들아! 보고만 있을 거야? 망설이는 녀석들. 해적 하나가 힐끗 돌아보자 3인방을 비롯한 녀석들은 눈치 보며 외면한다. 트란도 잠시 망설이지만 곧 짜증난다는 얼굴로 티셔츠 자락으로 얼굴을 덮고 머리를 벽에 기댄다. 형부, 황급히 아내에게 모포를 덮어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짐인 것처럼 자기 몸으로 가린다. 해적1, 여자들을 끌고 나가다가 팜 언니 발에 발이 걸린다. 힐끗 내려다보니 상체는 가렸지만 웅크린 자세의 발목이 드러난 모습. 홱, 모포를 젖히는 해적1. 공포에 질린 팜 언니, 자기를 일으켜 세우려는 해적1의 손목을 깨문다. 비명을 지르며 팜 언니 뺨을 후려치고는 머리채를 휘어잡는 해적1. 형부가 머리로 들이받는다. 029 난민선 선장실 ‘보물창고’ / 안 좁고 어두운 공간에 따이와 함께 몸을 숨긴 팜. 덜덜 떠는 따이를 꼭 안아준다. 책장 틈으로 불이 켜지는 선장실 상황이 언뜻언뜻 보인다. 해적대장이 선장 머리통을 책상 위에 내리찍고는 뭐라 고함을 친다. 난민선장 (베) 그게 다야! 더 없다구! 다음 순간 탕탕탕, 하는 총성이 터진다. 소스라쳐 자기 입과 따이 입을 막는 팜. 쿵 하며 미밀 공간을 막고 있는 책장이 울린다. 작은 틈으로 쓰러져 죽은 선장의 초점 잃은 눈이 보인다. 공포에 떨며 자기 입을 막았던 손으로 천천히 따이 눈을 가리는 팜. 030 난민선 선실 복도 / 안 선실 천장의 백열등이 뭔가에 맞아 박살난다. 컴컴한 복도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는 비명과 울음소리. 갑판 쪽에서는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한껏 크게 들려오다가 이내 사라진다. 031 난민선 갑판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 밖|밤 흐린 날씨의 바다, 파도 높이가 꽤 높다. 자신들의 배에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을 옮겨 싣는 해적들. 끌고 나간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해적대장, 부하들에게 뭔가 묻는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할 일 다 했다는 듯 대답하는 부하들. 이내 난민선으로부터 멀어지는 해적선. 032 난민선 선장실 / 안 끙끙거리며 책장과 선장의 시체를 힘겹게 밀어내고 벽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팜과 따이. 공포에 질린 따이 눈을 가린 채 선장실을 빠져 나간다. 033 난민선 복도 / 안 열어놓은 선장실 불빛에 어슴푸레 드러나는 복도. 선실 입구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는 팜과 따이. 팜, 입구에 쓰러진 사람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따이 (베) 아빠...! 그 말에 흠칫 아래를 내려다보는 팜, 쓰러진 사람을 부축해 뒤집는다. 형부다. 가슴에 칼로 여러 번 찔린 상처에서 흐른 피가 바닥에 흥건하다. 팜 (베 / 울부짖으며 흔든다) 형부! 형부 정신 차려요!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형부. 따이는 충격으로 멍한 얼굴이다. 형부를 부둥켜안고 흐느끼다가 문득 생각이 미친듯 선실 안을 돌아보는 팜. 팜 (베) 언니? 언니는? (선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언니! 아비규환으로 신음과 울음소리로 가득한 선실 안, 너무 어두워 마치 악몽에서 보는 듯한 광경이다. 사람들 사이를 더듬더듬 나가며 언니를 부르는 팜. 트란이 라이터를 켜고 창고 구석에서 먼지 쌓인 램프를 찾아내 불을 붙인다. 언니를 찾아 난민들 사이를 헤치고 있는 팜이 보인다. 울부짖는 사람들, 나머지 가족이 없는 ‘홀몸’들은 침통하게 구석에 앉아 있을 뿐. 그런 녀석들을 향해 원망을 퍼붓는 사람들. 할머니 (베) 제 목숨 지키겠다고 반항 한 번 못하고! 나쁜 녀석들! 트란 (베 / 버럭) 이봐, 녀석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때 딸을 빼앗긴 아버지가 팜의 손목을 낚아챈다. 여자아버지 (베) 이년이 우릴 팔아먹은 거야! 그러지 않고 이년만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어. 그렇지? 팜 (베 / 패닉상태로) 우리 언니! 우리 언니 못 봤어요? 트란 (베 / 여자아버지 손목을 잡으며) 이봐! 이 여자 언니도 끌려갔잖아! 이럴 시간에 나가서 찾아보는 게 낫지 않아? 팜 (베) 끌려 갔다고요? 언니가? 여자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뛰어나가는 팜. 따이는 아빠 시체 옆에서 멍하니 넋을 잃고 앉아있다. 034 난민선 갑판 위 / 밖|낮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 을씨년스러운 하늘 아래 갑판 위로 뛰어올라오는 팜. 올라오자마자 얼어붙는다. 갑판 위 여기저기 널브러진 선원들의 시체, 그리고 역시 축 늘어진 여자들의 모습. 옷이 모두 찢긴 채 피를 흘리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강간당한 후 죽임을 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팜의 시야에 들어오는 그녀의 언니. 피투성이로 축 늘어져 있다. 팜 (베) 언니! (부둥켜안으며) 언니! 언니 (베 / 힘겹게 눈을 뜬다) 팜...... 팜 (베) 언니! 괜찮아? 언니 (베) 형부는... 따이는... 괜찮니? (울먹이는 팜 뺨을 만지며) 미국 가면... 공부를 계속해야지... 따이도...... 푹, 힘없이 고개 떨구는 언니. 팜, 비명을 지르며 꽉 안는다. 여자아이 아버지를 비롯한 여자들의 가족들이 갑판위로 올라와 넋을 잃는다. 울음바다가 되는 갑판. 그 모습을 지켜보는 트란. 트란 (베 / 이를 악물며) 제기랄...! 그때 갑판 입구에서 3인 방 중에 하나가 고개를 내밀며 고함친다. 알 (베) 물이 찬다! 놈들이 구멍을 냈어! 흠칫 돌아보는 트란. 035 수용소 취조실 / 안 확 끼쳐오는 불빛에 눈이 부셔 미간을 찌푸리는 트란. 취조실 안이다. 사진 한 장을 트란 얼굴 앞에 내미는 안기부 요원의 손. 안기부 (소리) 이 사람을 그 전에도 본 적이 있나? 트란 (베 / 통역을 통해 듣고는 피식 웃으며) 선장 아뇨? 안기부 (소리) 베트남에서도 본 적이 있지? (트란, 고개를 젓는다) 몇 번이나 접선했나? 트란 (베 / 짜증스레) 이보슈! 난 아직 이 사람 이름도 몰라! 안기부 (소리) 트란 안! (제 이름이 불리자 멈칫하는 트란) 당신 직업은 전자제품 밀수로 먹고 살았지? 중국까지 거래선을 갖고 있다고 들었어! 공산당의 비호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 (트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 댓가로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정보를 제공한 것 아닌가? 말해 봐! 당신이 다룬 정보는 어떤 종류였나! 긴장된 얼굴로 정면을 쏘아보는 트란. 그의 얼굴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카메라가 접근하면 멀리서부터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소리 (베 / 급박하지만 억누르는) 젠장! 이러다 충돌하겠어 트란 (베 / 소리) 어차피 배를 운전할 줄 아는 사람도 없잖아! 036 난민선 갑판 아래 / 안|아침 갑판으로 통하는 문 아래 계단에 달라붙어 밖을 내다보는 트란과 3인방 녀석들. 그들 어깨 너머로 점차 다가오는 동백호가 보인다. 트란 (베)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들이받을 리가 없잖아! 알 (베) 어느 나라 배 같아? 트란 (베) 한국인 것 같은데... 럭키 (베) 그럼 구조요청을 해야지! (나가려 한다) 사람 살... 트란 (베 / 럭키 덜미를 잡으며) 기다려, 멍청아! 남한 배라면 다행이지만 북한 배라면 우린 끝장이야! 모두 베트남으로 돌려보낼 거라구! 그 말에 모두 서늘해져서 입을 다물고 서로 쳐다보는 3인방. 그때 계단 아래서 나이 지긋한 교수가 불쑥 말한다. 교수 (베) 북한 배가 남지나 해 까지 조업을 나오지는 못할텐데? 그 말에 뭔가 생각하며 망설이는 듯한 트란. 벅스 (베 / 밖을 가리키며) 충돌한다! 놀란 얼굴로 밖을 보는 트란과 3인방 녀석들. 037 동백호 조타실 / 밖|아침 조타백, ‘으아아아--!’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키를 돌려댄다. 조타실 창에서 내다보이는 갑판 너머 전면으로 거의 충돌 직전의 난민선이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비껴나는 난민선. 서로 스치며 마주쳤다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기 시작한다. 038 동백호 갑판 위 / 밖|아침 모두 갑판 위로 나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고 있는 난민선을 내려다보는 선원들과 한 대장. 충돌에서 벗어나자 안도하는 선원들. 네이팜, 조타실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홍장군 (조타실 유리창 너머 사색이 되어있는 조타백을 보며) 저 에미나이, 뭐하다가 박치기할 뻔했누? 네이팜에게 혼줄 나는 조타백이 보인다. 그 옆에 유소위는 자기가 혼나는 것처럼 쩔쩔매고 있다. 한 대장 (나지막하게) 앞으로 귀항 때까지 일절 음주를 금지한다. (시선은 난민선을 향한 채) 저 배엔 사람이 없나? 동백호가 지나가면서 만드는 파도에 흔들흔들, 유령선처럼 기우뚱거리는 난민선이 동백호 옆을 지나 뒤쪽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때 난민선 갑판 아래에서 뛰어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교수를 비롯한 나이 많은 남자들 서너 명이다. 교수 (베) 사람 살려요! 구해 주세요! 그러나 선원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멀뚱멀뚱 보기만 한다. 공돌이 어느 나라 말이야? 한 대장 베트남이야. 보트피플이군. 네이팜 (어느새 갑판에 나와 한 대장 뒤에 서서) 난민을 위장한 해적일 수도 있습니다. 한 대장 그럴까? (미간을 좁히며) 꽤 급박해 보이는데... 네이팜 (강조하듯) 잊으셨습니까? 보트피플에 관한 지침 말입니다. 한 대장 알고 있어. (힐끗 조타수에게) 부근을 지나는 미군 배들이 있나 통신을 시도해 봐. 구조요청을 보내주도록 하지. 네이팜 (선원들을 향해) 자자, 위치로 돌아가! 네이팜, 선원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유소위, 조타백와 함께 조타실로 향한다. 난민선은 이제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다. 난민선 갑판 위의 노인들 뒤로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는 3인방과 트란의 모습이 아른거릴 정도로 멀리 보인다. 한 대장 (혼잣말처럼) 네 명에다 네 명이 더 보이네. 저런 배라면 몇 명이나 타고 있을까? 홍장군 (나란히 서서 바라보며) 글쎄요... 기껏해야 열 명 정도? 한 대장 아무래도... 난민들 같죠? 홍장군 알게 뭡니까? (힐끗) 뭐... 신경 끄십시오. 한 대장 불쌍하잖아요? 홍장군 서울역이나 남대문 지하도의 거지들도 불쌍하지만 불쌍하다고 다 집에 데려갈 순 없는 일 아닙니까. 한 대장 ...그렇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한 대장과 홍장군. 난민선과 반대쪽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동백호. 취조관1 (보이스 오버) 자넨 1호선 타는 게 더 빠르지 않아? 취조관2 (보이스 오버) 빠르지. 하지만 2호선이 더 쌔거잖아. 좀 돌아가지만 출퇴근 때마다 일부러 2호선을 타고 있지. 며칠 전에 시청역을 지나는데 어떤 여자가 날 붙잡더라구. 039 취조실 / 안 소파 등받이에 기대지도 못하고 잔뜩 위축된 자세로 웅크린 듯 앉아있는 한 대장. 멍한 눈빛이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 얼굴로부터 서서히 카메라 빠지면 한 대장 맞은편에 나란히 접이식 의자를 펼쳐놓고 앉아 잡담하는 취조관 1,2의 뒷모습. 취조관2 집이 인천인데 갈 차비가 없어서 그러니 좀 빌려달라는 거야. 나이도 나랑 비슷한 것 같고, 멀쩡하게 생겼길래 5백 원짜리 동전 하나 줬지. 취조관1 그것도 새 거네? 그래서? 취조관2 아 그리고 며칠 있다 일이 있어서 신촌 역을 지나는데 거기 그 여자를 또 만난 거야. 취조관1 집에 가야하는데 차비가 없대? 취조관2 응. 취조관1 정말? 그래서 줬어? 취조관2 아니, 내가 좀 바빠서 엉겁결에 뿌리치고 그냥 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시청역에서 봤을 때와 같은 옷이었던 거야. 취조관1 뭐야, 그년. 거지야 앵벌이야? 하여간 요즘 지하철역이 따뜻하고 하니까 웬 거지 년놈들만 잔뜩 늘어가지고.... 우리도 중국처럼 싹 쓸어다 사막에다 갖다 버려야 하는데. 취조관2 우린 사막이 없잖아? 취조관1 그럼 북한에 갖다 버리지 뭐. 한 대장 ...서울역 가는 길에 남대문 지하도를 걷고 있었어요. 갑자기 한 대장이 입을 열자 멈칫 말을 멈추고 동시에 돌아보는 취조관들. 한 대장, 멍한 눈길 그대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잠꼬대하듯 횡설수설, 한 대장 옆에 어떤 아줌마가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모퉁이쯤 가자 갑자기 벽 가까이에 신발을 벗더니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내미는 거에요. (거지가 손을 내미는 시늉 해 보이며) 이렇게... 갑자기 그래서... 놀라기도 하고 그냥 얼른 지나쳤는데, 날 보던 그 눈빛... 그 뒤로도 한참 생각이 났어요. 멀쩡하게 생겼었는데... 하긴 거지라고 뭐 다르게 생길라구. 그 아줌만 거지일까 아닐까.... 한 대장, 취조관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한대장 그 여자도 정말 차비가 없어서 집에 못 갔으면 어쩌죠? 040 난민선 갑판 / 밖|아침 손 흔드는 것도 잊은 채 멀어져가는 동백호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난민들. 알 (베 / 트란을 향해 원망스럽게) 그러게 일찌감치 구조요청을 하자 그랬잖아! 트란 (베) 제기랄... 뻔히 보면서 그냥 지나가다니...! 교수 (베) 우릴 해적이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지. 갑판 아래에서 여자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며 소리친다. 여자아버지 (베) 물이 더 빨리 차오르고 있어! 돌아보는 사람들. 041 난민선 하부 기계실 / 안 어두운 불빛 아래 양동이는 물론 밥그릇 컵까지 동원해 차오르는 물을 퍼 나르기에 정신없는 난민들. 서로 아우성치고 난리도 아니다. 042 난민선 복도 / 안 아래층에서 나른 물을 릴레이 식으로 갑판 계단까지 나르는 3인방 녀석들. 선실 입구에 넋을 잃고 앉아있는 따이가 걸구친다. 알 (베 / 짜증스럽게) 이 자식은 뭐야! 야! 저리 안 비켜! 형부 시체는 수습하지도 못하고 선실 입구에 뉘인 채로 따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삼키는 팜. 지나가던 트란이 한 마디 한다. 트란 (베) 어이! 좀 도와야지! 팜 (베 / 원망스레) 언니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다니... 그런 법이 어딨어요? 트란 (베 / 다가와 어깨를 움켜잡으며) 이봐! 우리도 지금 바닷물에 잠겨 죽을 처지인 거 안 보여? 슬퍼하는 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팜, 흐느끼며 뿌리친다. 트란, 할 수 없다는 듯 물 양동이를 계단 위로 올리는데 아무도 안 받는다. 트란 (베 / 신경질) 위에 뭐 하는 거야! 경치 감상 중이냐! (그래도 아무 반응 없자 양동이를 들고 계단을 기어오른다) 이런 젠장! 도대체 제 정신들이야! 갑판 위로 고개를 내밀다가 멈칫하는 트란. 다시 계단 아래 복도로 양동이를 들고 낑낑 달려오는 알을 향해 쉿!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트란 (베 / 낮고 빠르게) 모두 조용하라 그래. (물을 퍼 나르다가 엉거주춤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 누구 한국 말 할 줄 아는 사람 없어? 영어라도! 043 난민선 갑판 / 밖|아침 천천히 갑판 위로 올라오는 트란. 믿기지 않는 듯 앞을 바라보면, 난민선 옆에 어느새 다시 돌아와 있는 동백호의 거대한 위용. 사다리 밧줄을 내려 만수와 천수, 공돌이가 내려와 있다. 트란의 뒤로 3인방과 교수가 올라온다. 만수 모두 몇 명입니까? 서로 마주보는 난민들. 교수가 앞으로 나선다. 교수 (영) 영어 할 줄 압니까? 이번에는 동백호 선원들이 서로 마주본다. 만수 (머리 긁적) 영어로 어떻게 물어봐야 되지? (동백호 갑판을 향해) 야! 대학생! 너 영어 할 줄 아냐? (손짓발짓) 하우... 매니... 유... 교수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트란이 툭 친다. 트란 (베) 뭐라는 거지? 교수 (베) 몇 명이냐고 묻는 것 같은데... 트란, 재빨리 동백호 갑판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가늠해본다. 트란 (베) 10명이라고 말 해. 교수 (의아하지만 시키는 대로) 텐. (열 손가락을 펴 보인다) 텐. 만수 (동백호를 향해) 10명이라는 거 같습니다! 동백호 갑판 위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한 대장이 보인다. 태우라는 손짓. 그 광경에 얼굴이 환해지는 트란 일행. 만수 (손짓발짓) 헤이! 타쇼! (혀 굴려) 타~ 쇼~우~! 트란, 재빨리 계단 아래 복도로 머리를 들이밀고 숨죽이며 쳐다보는 난민들을 향해 선실에 들어가 있으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고 젊은 남자들을 가리키면서 나오라는 제스처. 트란 (베) 너, 너, 너! 어서 올라와! (다른 사람들에게) 나머지는 나오랄 때까지 조용히 있어! 044 동백호 갑판 / 밖|아침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트란 일행이 보인다. 내려다보는 한 대장 뒤로 서는 네이팜. 네이팜 (낮게 힘주어) 선장님, 지침을 잊으셨습니까?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난민과는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서 그러십니까? 한 대장 (아무렇지 않게) 규정이 어떻든 바다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도와줘야지. (갑판 위에 올라와 엉거주춤 눈치 보는 트란 일행) 주방으로 데려가 일단 밥부터 먹여. (공돌이에게) 자넨 저 사람들 배를 좀 살펴봐. 물이 차고 있는 거 같던데. 공돌이가 다시 배로 내려가는 걸 보더니 긴장하는 트란 일행. 모두 어떻게 할까 묻듯 트란을 본다. 트란 (베 / 알에게) 넌 다시 내려가서 사람들 못 나오게 해. 우린 우선 이 사람들 숫자부터 확인하고. 조용히 따라 가. 알, 공돌이를 따라 다시 난민선으로 내려간다. 나머지 트란 일행은 창수를 따라 선실 문으로 들어간다. 045 동백호 주방 / 안 테이블 위에 이것저것 음식을 내놓는 장도마. 밥과 남은 반찬들이다. 차려지는 음식을 보더니 마치 꿈속인 것처럼 몽롱한 표정이 되는 난민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겁지겁 음식을 해치우기 시작한다. 장도마 이거 뭐 갑작스럽게 준비한 거라 변변치 않네. 홍장군 (장도마 뒤통수를 때리며) 고기도 좀 구워! 장도마, 궁시렁대며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 볶기 시작한다. 한 대장, 네이팜과 함께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본다. 홍장군과 웃음을 주고받는 한 대장. 한 대장 (난민들에게) 베트남 사람들 맞습니까? 교수가 뭐라 말하려 하자 입 다물라는 눈치를 주는 트란. 힐끗 자신들을 감시하듯 못마땅한 눈초리로 보는 네이팜을 경계한다. 한 대장 (긴장하는 난민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안심해도 좋아요. 미 군함을 만나면 망명이 보장될 테니까. (네이팜에게 생각난 듯) 지금쯤 베티호가 근처를 지날 텐데... 갑판장, 한 번 수배해 보게. 네이팜 하지만 이건... 한 대장 갑판장. 네이팜 (마지못해)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듯 힐끔거리며 주방을 나가는 네이팜. 트란, 교수에게 뭐라 귓속말한다. 교수 (영) 이 배에는 모두 몇 명이나 타고 있나요? 한 대장 (얼른 못 알아듣고) 응, 우리? (뭐라 말할지 더듬거리다) 아... 우린. (손가락을 펼치며) 일레븐. (머쓱하게 홍장군을 보며) 듣기는 듣는데 영어는 영 입이 안 떨어져. 그쵸? 홍장군 나이도 지긋한 양반이 영어도 잘 하고, 보통이 아니네. 트란, 다소 안도의 표정이 되며 뭔가 생각하더니 난민들과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난민들, 트란이 뭘 생각하는지 잘 몰라 의아해 하는 모습들. 046 난민선 선실 복도 / 안 알, 공돌이를 안내하듯 계단을 내려온다. 기계실 쪽으로 앞장서는데, 선실 문 앞을 지나던 공돌이가 기척을 느끼고 돌아본다. 문가에 뜬금없이 따이가 멀뚱하게 서 있다. 공돌이, 짐작하지 못했던 상황에 놀라 멍하니 본다. 팜이 황급히 나와 따이를 데리고 들어간다. 발버둥 치며 떼쓰는 따이 소리에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앞장서던 알이 돌아본다. 공돌이가 선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눈이 커지는 알. 어슴푸레 드러나는 선실 안, 웅크리고 숨죽인 난민들의 실루엣이 희미하다. 들고 있던 랜턴을 켜서 비추는 공돌이. 그 불빛에 부분부분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나는 난민들의 모습. 어안이 벙벙한 공돌이. 공돌이 어...... 그때 기계실 쪽에서 흠뻑 젖어 올라오며 뭐라 소리치는 난민 하나. 그 와중에 도망쳐 선장실로 들어가는 따이. 팜, 따이를 부르며 선장실로 뒤따라 들어간다. 공돌이,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엉거주춤 하는데, 문득 복도 바닥에 흥건한 물을 본다. 철벅거리는 발. 공돌이 뭐야 이거... 잠기고 있잖아. 곧 물이 선실 안으로도 들어간다. 물이 차는 걸 발견한 난민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맹꽁이 밭에 던져진 것처럼 시끄러운 선실의 아우성에 더욱 멍해지는 공돌이. 047 선장실 / 안 선장실 벽 비밀 공간 안으로 들어가 웅크리는 따이. 팜이 끌어내려 하지만 파이프를 붙들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알, 선장실로 들어와 짜증을 낸다. 알 (베) 뭐야, 니네들 때문에 산통 다 깨지게 생겼잖아! (팜과 실랑이 벌이는 따이가 숨은 곳을 들여다본다) 뭐야 여긴! 들여다보다가 그 공간 안에 든 물건들을 보고 멈칫하는 알. 비닐 봉투 하나를 꺼내 풀어본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알. 복도 쪽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더 커진다. 048 조타실 / 안 조타실, 조타백이 텔렉스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 유소위는 항해키를 잡은 채 멀뚱멀뚱. 네이팜이 조타백 옆에 서서 미간을 찌푸리고 서 있다가 명령한다. 네이팜 신원 불명. 베트남 난민으로 추정. 인원은 열 명. 조타백 (걱정스럽게) 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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