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아오소라-제 6
2012.01.22 07:41
아오소라 제 6
제. 13장 제임스 이시카와(James Ishikawa from Takayama)와 한국 전쟁,
(빚인가, 우정인가?)
콜로라도 덴버로 되돌아가 의학공부를 하던 제임스도 아버지가 이사를 하고 개명을 한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아버지의 한 많던 마음을 알고 나니 오히려 위로를 하여 주었다.
그리고 그도 제임스 다카야마를 버리고 제임스 이시카와(James Ishikawa)가 됐다.
이시카와!
-새 사람이 된 마음이었으며 새로운 시작이었다.
못잊을 것 만 같았던 백인 연인 루시존스를 완전히 마음속에서 잊어 버리고 아마체에서 같이 고생했던 일본 사람의 딸을 소개 받았다.
샐리. 마스오까(Sally Masuoka, 松岡)라고 하는 콜로라도 주립대학 대학생으로 생물학을 전공하여 후일 간호사나 치과 의사가 되고자 하는 전형적인 일본 여성이었다. 같은 동족인것도 좋았지만 아마체에서 고생하며 그곳에서 지난 옛 기억을 서로 끄집어 내어 얘기 할수 있는 끈끈한 연결이 더 좋았다. 그 외로웠던 시절을 통해 더 위로하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
비를 같이 맞으며 3년을 지낸 그 가난과 비천함의 기억이 그들에게는 칙 넝쿨처럼 견고하게 서로를 얽어 주고 있었다.
*
그와 반비례해서 2차 대전의 참전에 대한 기억은 점점 그리고 서서히 머리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두고 온 황동균 대위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황동균 대위는 정말 좋은 군인이었다. 일본의 식민지 조선 출신으로 미국시민이 되어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전투부대에 참전한 장교였으니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일본인들은 말도 듣지 않고 '픽픽' 거리며 비꼬았었는데 그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눈으로 본 일본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이태리 전투에서 살아 남을 수가 있었다.
그가 지금쯤은 제대를 했든지 아니면 미국 본토 어디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했듯이 어느듯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1947년 5월, 제임스 이시카와가 콜로라도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을 때 그의 부모들이 반가워하는 모습은 마치 천국으로 올라간 듯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체를 방문했는데 아마체는 폐허가 되었으며 마치 유령의 집처럼 으시시한 느낌 마저 돌고 있었다.
내친 김에 그는 콜로라도 의과대학 병원에서 외과 수련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고되고 긴 여정이지만 그는 아마체에서 겪었던 그 수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이태리 전선에서 겪은 죽음을 삶으로 바꾸고 싶었다.
1948년 2월, 그는 29세의 나이로 수련의사 과정중에 샐리 마스오카와 콜로라도 덴버에서 결혼을 했다. 결혼 하기 며칠전 그는 아마체 수용소로 가서 옛 애인 루시 존스와의 쓰라린 배신을 샐리에게 들려 주었는대, 샐리는 남편이 될 제임스를 깊이 위로했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신뢰 말이요. 유키오 미스마(三島由紀夫)가 쓴 'Patriotism(優國)처럼 나도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주렵니다. 모든 것을... "
"고맙소. 샐리. 마음속의 아픔을위로해 주어서.....나도 당신에게 약속하오. 나의 모든 것을 그대에게 주리다. 그리고 당신 가슴에 나의 둥지를 트리다."
제임스는 진정 사랑하는 눈물을 흘리며 샐리를 포옹했다.
"제임스. 고마워요. 나도 당신의가슴에 나의 둥지를 트렵니다."
비록 바쁘고 힘든 수련의사의 과정이지만 그들의 신혼 생활은 즐겁기만 했다. 병원 응급실로 수술실로 그리고 외래 환자 실로 뛰어 다니는 몸이지만 결코 피곤하지 않음은 그날 저녁 그는 미소짖는 샐리의 품에서 안식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다음해, 1949년, 샐리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알렉스(Alex Ishikawa)라고 지었다.
알렉스는 제임스와 그의 할아버지 다카야마의 기쁨이 됐다. 고된 외과 수련도 2년이 끝나고 3년차로 들어갔다. 알렉스는 일어나 서기도 하며 재롱을 부리기에 다카야마의 집은 평화와 즐거움이 가득한 가정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며 탄탄대로였다. 더 이상의 폭풍도 없는 평화로운 바다와도 같았기에 돗단배는 아무런 이상 없이 앞으로 앞으로 전진만 하고 있었다.
*
1950년 6월 25일.............
제임스 이시카와는 뜻밖의 뉴스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KOREAN WAR(한국전쟁. 韓國戰爭)! KOREAN WAR(6.25 전쟁)!" 이라는 긴박한 뉴스였다.
-일본의 식민지로 36년간 고통속에서 살다가 2년전(1948년)에 총선을 통해 독립한 대한 민국이 소련의 조종을 받는 북한(朝鮮 人民 共和國. DPRK)이 무방비 상태의 남한을 일방적으로 침공하여 파죽 지세로 서울을 함락하더니 여세를 몰아 대구 근교까지 공격을 하여 남한은 멸망 일보전. 풍전등화의 상황이라고 하는 뉴스였다.
"뭐라고? 한국이 공산군의 침공을 받아? 안되지! 안돼!"
제임스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마치 일본이 북한의 공격을 받은 기분이었다.
다행이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이 위기의 상황에서 잽싸게 참전하여 도와주었기에 가까스레 멸망에서 벗어 났지만 추운 겨울이 오기 시작했으며 전쟁은 오리무중으로 앞을 바라 보기가 힘들었다.
'신생 민주주의 한국을 도웁시다!'라는 포스터가 미국 라디오 그리고 여러 신문을 통해 미국의 젊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젊은이들이 미군에 입대를 하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칼리포니아에서, 텍사스에서 그리고 오하이오에서......
콜로라도에 사는 제임스의 집에도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따듯한 봄날의 새싻처럼 움이 트고 있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도우려고 나도 자진 입대합니다.>
제임스는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아내에게도 상의하지도 않고 자진 입대를 결정했다.
"안된다." 아버지는 조용히 반대를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그래, 조선 사람, 김상환을 생각해서라도 입대하거라."라는 마음도 있었다.
"안돼요, 여보." 아내 샐리는 진정으로 반대하였다.
"아니? 수련의사는 포기하고? 지금 입대하면 언제와서 다시 외과 수련을 마친담...일년 남았는데...." 병원에서의 반대는 더 더욱 강력했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이것봐! 닥터.이시카와? 당신은 이차대전때 사병으로 3년간 이미 복부를 했는데 또 군에 입대한다면 당신은 목숨이 두 개가 있는거요? 왜? 남들은 안가겠다고 슬슬 빼는데 당신은 자원 입대를 한단 말야?"
"나는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에게서 큰 은혜를 받았기에 꼭 갚아야 합니다."
"그래? 수련과정을 중단하고 갈 만큼...."
"예."
제임스의 확고한 결심을 도저히 꺽을 수가 없었다.
*
입대하기 며칠전, 아내가 제임스의 허리를 꼭 껴 안으면서 물었다.
"제임스(여보)? 꼭 입대해야해? 우린 신혼인데, 그리고 아들도 있는데, 혹시라도..."
"혹시라도 죽을 지도 모른다. 샐리?"
"제임스, 그래요. 죽을 지도 모른다. 아! 불길하게..."
"나, 죽지 않아. 가미사마(神)가 나를 이태리 전선에서도 살려 주었는데.... "
"걱정 말라고요?, 가미사마가 있으니까? 나를 여기 혼자두고, 나보다 한국사람에게서 받은 은혜가 더 크니까 나같은 것은 혼자돼도 된다는 말이군요?"
"아냐, 샐리.그런게 아냐, 당신 알잖소!"
"나도 알아. 당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당신? 한가지만 다짐하려오."
"한 가지? 무엇인데?"
"당신, 나를 믿지? 그리고 당신의 마음 진실이지요?"
"믿음과 진실?"
"그래요. 제임스."
"그래, 믿음과 진실...."
"당신의 마음이 진실하고 우리가 서로 믿을 수가 있다면 일년이 아니라 한평생이라도 기다릴 수가 있어요. 제임스."
제임스는 아내, 샐리의 얼굴에서 확고하고 신념에 찬 믿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고마워, 당신, 기다려줘요. 살아서 돌아 올테니..."
*
1950년 12월, 몹시도 추운 겨울, 제임스 이시카와는 켄터키주에 있는 훠트.녹스(Fort Knox) 사단에 배속되었다. 훠트 녹스 사단이란 1942년 8월, 사병으로 입대해 일본 사람들을 구분하는 군견 식별 병으로 근무했던 그 부대였다. 백인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동물과 같은 대접을 받으며 보냈던 같은 사단에 군의관 대위로 임관하고 보니 감개 무량했다. 군의관 대위의 신분과 사병의 신분은 하늘과 땅의 차이였기에 모든 것이 달랐다. 대접도 달랐으며 행동하응 것도 달랐다. 군의관 대위라는 존재는 참모요, 지휘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사병들을 보호하자! 그리고 그들을 돕는 장교가 되자.' 그는 굳게 맹세를 했으나 그가 군에 재 입대한 목적은 켄터키가 아니고 한국이었다.
"가능한 빨리 저를 한국 전쟁으로 보내 주십시오. 한국을 돕고 싶습니다." 그는 의무감실에 재촉하였다.
"닥터. 이시카와? 지금 한국 전쟁에 가면 살아 오기가 힘들텐데...그래도?"
"압니다. 하루속히 한국으로 보내 주십시오."
1951년 1월 2일, 제임스는 군용기 편으로 하와이, 동경을 거쳐 한국의 부산에 도착했을 때, 한국전쟁의 상황은 역전이 되고 있었다.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한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인해 전술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더니 마침내 서울을 내주고 평택 근처에서 다시 반격을 하기 시작하는 일진 일퇴의 피비릿내나는 전쟁이었다.
부산에 있는 미 육군 병원에서 근무를 하던중, 2월 초, 제임스는 미 육군 제 7사단 31연대로 배속 명령을 받게 되었다.
31연대는 멀리 강원도 철원 근처에 있었으며 제임스가 근무할 곳은 이동 외과병원이었다. 평택까지 밀렸던 유엔군이 어느새 북상하여 철원(鐵原)까지 진군했으나 철원, 금화(金華), 평강(平剛)이라고 하는 철의 삼각지에서 교착 상태로 밀리고 미는 전투를 벌리고 있었다. 사상자도 많았으며 쓸모 없는 소모전 같았으나 여기에서 누가 고지를 점령하는 가에 따라 전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총력전을 다하고 있었다.
*
죽고 사는 전쟁터에서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이동외과(移動外科) 병원으로 제임스 이시카와 군의관 대위를 만나러 온 미군 장교가 있었다.
얼굴은 전쟁터에서 얻은 상처로 닥지닥지 굳어 있었으며 체격이 딱 부러진 동양사람이었다. "제임스! 날세. 나, 황동균이오."
"아니, 대대장님? 어떻게 여기에?"
이시카와 대위도 그리고 황동균 소령도 놀랐으며 반가웠다. 이렇게 죽음의 전쟁터에서 또 다시 만나다니..... 442연대에서 생사를 같이 했던 전우였는데, 2차대전이 끝나고 그들은 각자 자기의 길로 갔었는데, 이렇게 여기 한국 전쟁에서 다시 만나다니 우연치고는 너무나 심한 운명적인 만남이었기에 그 감격이 더 컸다.
"나의 조국, 한국을 도우려고 재 입대 했다네. 제임스는?"
"저도 한국을 도우려고 재 입대 했습니다. 한국에 진 빚을 갚으려고요."
"진 빚을 갚는다구?"
"예. 빚을 갚으려고 재 입대했습니다. 수련도 중단하고...."
"일본 사람인 자네가, 왜?"
황동균 소령은 감격하여 이시카와 대위의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감았다.
"그런데, 무슨 빚을 지었는가?"
"한국 사람, 김상환씨와 황동균 대대장님께 지은 빚입니다."
"나한테도?"
"대대장님? 아니 황소령님? 수용소에 강제 수용됐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3년 후에 수용소에서 풀려 나와 다시 살리나스로 가보니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대로 있었으며 오히려 두배로 더 성장이 되어 있든군요. 3년동안의 수입도 그대로 통장에 입금이 되어 있었구요."
"그게 무슨 말인가? 다 잃었는데 더 많이 얻었다니?"
-제임스는 차분하게 수용소 생활 3년동안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멀정한 일본 사람을 강제로 수용한 미국 정부와 비인격적으로 무시당한 3년이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강제 수용당하게 됐을 때, 살리나스에 있던 꽃 농장을 평소에 멸시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조선 사람, 김상환에게 억지로 부탁을 하였는데 3년후 돌아 와 보니 농장은 두배로 더 커졌으며 그간의 수입은 꼬박꼬박 저금통장에 입금을 시켜놓았을 때, 제임스의 아버지 다카야마는 조선사람을 평소에 무시하고 더럽다고 깔 본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가책이 되었기에 그는 남가주 토렌스로 이사를 갔으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다카야마라는 성을 버리고 이시카와로 개명을 했다고 설명을 하였다.-
"와! 성씨까지 바꿨다고? 얼마나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으면 성씨까지 바꾸다니. 미국 정부가 일본 계 시민들에게 정말 못된 짓을 했군. 미국정부의 큰 실수였어. 실수. 일본사람들을 못 믿다니.....일본 사람은 세계에서 일등국민인데, "
황소령은 혀를 차며 위로를 하다보니 어느새 그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다 못해 작은 눈물 방울이 눈 가장 자리에서 흘러나리고 있었다.
"김상환씨 가족뿐만 아니라 황동균 소령님에게도 큰 빚을 졌기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빚을 갚고자 합니다."
"나에도 진 빚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저의 목숨을 살려 주셨으며, 저를 사람되게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제임스? 그걸 제발 빚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정이라고 불러주게. 그리고 이웃의 정이라고 불러주게나."
마침내 황동균 소령의 눈가에 스며들던 눈물이 이번에는 주루룩 흘러 내렸다.
"우정이라고 하셨나요?"
"그렇다네. 제임스! 아-그리고, 의과대학을 어떻게 졸업했나? 이시카와 대위?"
"이태리 전선에서 돌아와 제대를 하고 보니, 뜻밖에도 정부로부터 콜로라도 의대에 복학을 해도 좋다는 권유를 받았으며, 게다가 장학금까지 받았지요. 졸업후 외과 전문의사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제임스, 듣기만 해도 속이 후련하네. 장하다. 장해."
"아-참! 학장님이 언젠가 내게 묻든 군요? 황대위가 누구냐고요. 그분이 보낸 추천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대대장님이 또 한번 나를 구해 주셨다고요."
"그랬던가?" 황소령은 말 꼬리를 감추려고 했으나 제임스는 거듭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후 찾아 뵙지 못하고, 정말 배은 망덕이었습니다."
"아닐세. 자넨 훌륭하게 의사가되어 이렇게 한국전쟁에 나와 그 은혜를 갚고 있잖는가? 자랑스럽게도...."
"황소령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루시라고 했던가? 그 백인의 연인? 다시 만났던가요?"
"아? 루시? 기억을 하시는군요?"
"물론이지, 자네가 낙담했었으니까....."
"그 후 만난적이 없습니다. 사랑도없었으며 장래에 대한 약속도 없었으니까요....."
"그랬었구먼.... 그렇다면 다 잊어 버리게."
"황소령님? 그후, 저는 수용소에서 같이 고생했던 여성을 알게 됐지요. 그리고 2년전에 결혼을 했지요. 샐리 마스오카라고 하고요."
"샐리 마스오카? 아주 좋은 만남이군. 축하해. 그렇다면 신혼인데, 이것봐 제임스, 자네 신혼의 아내를 두고 한국전에 참전했구먼? 자네, 정신이 있나, 없나?"
"정신있습니다. 그래서 재 입대한 거지요. 빚을 갚으려고...."
"알겠네. 제임스. 어쨌든 우린 인연이 깊군. 나는 31연대(聯隊) 작전 참모로 여기에 와 있어. 자네보다 불과 일주일전에. 그러니까 나와 자네는 같은 7사단(師團), 31연대에서 또 다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네...."
"같은 연대에서? 와! 반갑군요."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우린친구라고."
"어쨌든 황소령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제임스. 우린 친구야, 친구."
"........................"
제임스의 눈에서도 마침내 황소령의 눈에서 흐르던 그 따듯한 액체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
결국 이시카와 대위와 황동균 소령은 의무참모와 작전 참모로 31연대에서 생사를 같이 해야 했다. 이들의 만남은 이태리 전투 이후 또 한번의 목숨을 건 철의 삼각지에서였다.
철원, 금화 그리고 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에서 였다.
전투는 정말로 치열하여 오늘 가까스레 백마 고지(白馬高地)를 점령했는가 하면 다음날은 많은 사상자를 두고 후퇴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또 올랐다. 매서운 추위에 많은 장병들이 부상과 동상으로 죽어 갔다. 한국군은 용맹했으나 미군 7사단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한국군의 야전 병원의 시설은 참으로 빈약했으나 그래도 미군 병원 덕분에 환자 치료가 가능했다.
백마고지에서 부상당한 여러명의 미군들이 의무실로 급히 후송돼 왔다.
그들중에 팔과 다리에 파편을 맞고 쓰러진 백인의 사병이 있었다.
-오하이오 톨레도 주립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21세의 학생, 마이크 맥. 마혼(Michael McMahon)이었다. 7사단으로 드래프트 되어 여기 철의 삼각지에서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오늘 그는 불행하게도 적의 파편에 맞아 쓸어져 들어 왔다. 파편이 뚫고 들어간 종다리에서 제법 많은 피가 흘렀으며 머리에 파편을 맞은 것이 큰 부담이 되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더니 이내 혼수에 빠졌다.수술은 불가능했다. 겨우 의무실에 있는 수액을 혈관에 공급해 혈압을 올려 줄 뿐이었다. 산소통을 코에 연결시켜 숨을 조금더 쉬게 해줄 뿐 여기 7사단 의무실에서 뇌 수술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세 시간 후에 그는 눈을 감고 말았다.
"아! 죽다니...마이크 맥.마혼"
이시카와 군의관 대위는 마이크 상병의 가슴을 문지르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서는 피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이크! 마이크! 네가 죽다니, 의과대학에 간다고 했었는데..."
-며칠전, 이시카와 대위는 우연히 맥.마혼 상병을 전투가 없는 점심 때 만난 적이 있었다.
마이크가 의무실로 찾아와 이시카와 대위를 만나자고 했었다.
"군의관님? 곧 전쟁이 끝날 것입니다." 그는 뜻밖의 예언과도 같은 말을 했다.
"전쟁이 끝나다니, 오늘도 포성이들리는데.....마이크?"
"제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리니까요."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들려? 어디서?"
"예. 늙으신 어머니의 기도가 들립니다."
"마이크? 자넨 기독교 신자인가?"
"그렇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죽어도 무섭지 않다고 늙은 어머니가 말했지요. 그래도 살아서 오하이오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전쟁이 무섭나?
"무섭습니다. 군의관님."
"그렇겠지. 나도 무서운데. 오하이오에서 왔다고 했던가?"
"예. 톨레도(Toledo)에서. 저도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오하이오 콜럼브스(Columbus) 의과대학에서?"
"예."
"하나님을 믿는 의사가 되겠네?"
"예. 선교사가 되렵니다."
"선교사?"
"어디로 가서 선교를 하려나?"
"일본이요. 일본(日本)은 기독교(基督敎)가 전무(全無)하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예."
이시카와 대위는 감짝 놀랐다. 비록 사병이라고는 하나 믿음이 강하면 이토록 튼튼한 마음을 갖는구나.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니.....
더구나 선교지를 그의 조국 일본을 생각하다니, 그도 생각 못해본 생각인데...어쩌면 이다지도 일본을 가엾게 생각을 하다니...
이시카와 대위는 삶과 죽음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이크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단지 의학이라는 학문과 기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신념이랄까? 아니면 종교랄까? 그런 신념과 더불어 의학은 존재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하는 의사....'
그런데 이런 신념을 갖고 의사가 되겠다고 하던 마이크 맥.마혼 상병은 적의 파편을 맞고 죽었다. 멀리 그가 믿는 하나님의 곁으로...
"마이크. 맥.마혼 상병. 부디 천국에 임하소서.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 가면 반드시 톨레도 대학에 가서 자네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생생하게 알려 주려네."
이시카와 대위는 두손을 모으고 마이크가 하던 그대로 가미사마(神.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기도였다.
*
7사단 32연대 작전 참모, 황동균 소령은 용맹하며 지략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가 제안한 작전으로 인해 철원 북쪽 35마일까지 북상하게 만들었으니까.
- 이 전투에 이시카와 대위도 참전했다. 의무참모로서 당연한 참전이었다. 부상병이 예상되는 전투에서 군의관이 해야 할 일들은 산적했으며 위험이 많았다. 비록 총을 쏘지는 않지만 적군의 총알이 날라 오더라도 남겨진 부상 당한 아군을 치료하는 임무가 상상보다 어려웠으며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눈이 오는 저녁이었다. 불의의 습격이 있었는데 예상은 했으나 허를 찔린 상황이어서 지휘관들도 당혹했다.다행이 얼마후 적을 격퇴했지만 이 와중에 제법 큰 손실이 발생했다. 연대 참모 황동균 소령이 뜻박의 부상을 당한 후 응급차에 실려 의무실로 후송 되어 왔다. 가슴팍에 유탄이 밖혔는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으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이시카와 대위는 즉시 횡격막과 늑막이 파열된 것을 진단하고 가슴에 '네가티브 흉부 튜브(Negative ChestTube)'를 박은 후 산소를 연결하니 다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즉시 헬리콥터 편으로 철원에 있는 7사단 본부 병원으로 후송하면서 잠시 주고 받은 말이 있었다.
"황소령님? 연대 본부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곧 회복 될 것입니다."
"고마워, 제임스. 당신이 흉곽 절개를 하여 튜브를 삽입했기에 나는 살수가 있었네. 나의 은인이네."
"아닙니다. 황소령님은 총알을 무서워 하지 않는 용맹한 군인임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곧 돌아 올께. 제임스."
"예. 가미사마가 소령님을 보호 하리이다."
"가미사마가?"
"예."
황동균 소령은 연대 병원으로 후송되면서 이시카와 대위가 한 말, "가마사마가 보호 하리다"라는 말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일본 사람의 입에서 가미사마라는 말이 나오다니 이시카와가 언제부터 기독교 신자가 되었나라는 질문이 생겼다.
'가미사마가?'
황동균 소령도 두 손을 꼭 잡고 기도를 드렸는데 난생 처음 해보는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
황동균 소령의 지략이 이토록 훌륭한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은 그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사단장과 다른 참모들이 작전 회의를 하면서 였다.
황동균 소령이 있을 때는 그의 의견이 곧 결론이었는데 그가 없고 보니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었다.
1951년의 긴 여름이 엿가락 처럼길게 늘어지는가 했는대, 어느새 밤이 점점 길어 지고 있었다. 전쟁 전의 강원도(江原道) 일대의 산들은 푸르른 신록이었으나 마구 퍼붓던 포탄에 의해서 쥐 파 먹은 듯이 여기 저기에 대머리 같은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초가을이 되면서 황동균 소령은 완전히 회복되어 부대로 다시 돌아 왔을 때 이시카와 대위는 마치 잃었던 친구를 만난 듯 했다. 친구란 옹달샘 처럼 비록 크기는 작으나 맑은 물이 끊임없이 솟아 나는 작은 샘의 근원지가 되기 때문이었다.
*
한국 전쟁은 점점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들어 가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수 많은 고아와 미망인이 여기저기에서 생겨 났다. 온 나라가 슬픔 속에서 그리고 가난속에서 하루하루를 가까스레 이어가야 했다.
그래도 포탄이 비오듯이 쏫아지는 백마 고지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와 여기 저기에 단풍이 들고 있음은 수 억년동안 반복되어 온 정해진 자연의 이치였다. 인간의 포화가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신비요 조물주의 계획이었다.
단풍, 그것도 잠시, 어느새 백마고지에는 흰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아주 평화스러워 보였으며 깨끗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에 의해 희생된 피의 흔적이 없었다.
오늘도 제임스 이시카와 대위는 토렌스와 콜로라도를 오고가고 있을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늙으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건강도 걱정스러웠다.
지난번 편지에서 아내 샐리는 시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근자에 시아버지는 파킨손(Parkinson's Disease)씨 병으로 몹시 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도 오락가락하여 가끔 아들 제임스를 찾는다고 했다. 대소변도 이따금씩 실례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심한 관절염으로 기동이 힘들어 자리에 누어 있는 날이 꽤 많다고 했다. 그래도 한가지 즐거운 것은 알렉스가 두살이 넘으면서부터 말도 시작했으며 온 집안에 웃음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 제임스가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아들 알렉스가 온 집안의 웃음이요 희망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어서 돌아 오세요. 여보 보고 싶어요."라고 덧붙쳤다.-
*
마침내 이시카와 대위는 훌륭하게 전방 근무를 마치고 다시 부산에 있는 미군 육군 후송병원으로 전속되었다.전속가기 전날, 그는 황동균 소령을 만나 작별을 고했다.
최전방, 하늘을 울리는 포성 소리가 들리는 위험한 철의 삼각지에 남아 계속 전투를 해야 할 황동균 소령과 포성소리가 없는 항도 부산으로 떠나가는 이 둘은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제임스? 나는 당신으로 인해 생명을 보존할 수가 있었소. 이번에는 내가 큰 신세를 졌습니다."
"아닙니다 황소령님!"
"자, 이제부터는 친구라고 부릅시다. 친구."
"그래도 되겠습니까? 황소령님."
"제임스? 자네와 나는 친구여.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나는 믿네. 당신은 의사로서 좋은 일을 하리라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제대하면 콜로라도에서 살렵니다. 남아 있는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생각이군요. 잘가소! 제임스. 그리고 서로 연락합시다."
"그러죠. 황소령님, 아니 친구!"
"좋아요. 친구. 그래, 친구....."
"목숨을 보존 하소, 친구."
"고맙소. 친구."
그리고 둘은 굳은 악수를 한 후 헤어졌다. 포성이 울리는 죽음의 백마고지에서 포성소리 없는 향락의 도시 부산, 그리고 미 육군 병원으로....
1952년 3월이었다.
*
매일같이 포성 소리가 들리는 백마고지에는 눈이 나리고 있었으나 뱃고동 소리가 은은한 항도 부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있었다. 수많은 부상자들이 미. 육군 병원으로 후송되어 왔으며 비례해서 한국 땅에는 눈물 젖은 한을 품은 미망인들이 늘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누더기를 입은 고아들이 여기저기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전쟁도 점점 소강 상태로 접어 들자 피난민들은 하나둘, 보따리를 싸가지고 서울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서울 가는 12열차에 기대 앉은 사나이가 많았으며 영도와 초량에서 눈물 짖는 아가씨도 많았다. 마찬가지로 백마고지와 철의 삼각지대에도 포성 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한국 전쟁은 이제 간헐적인 전쟁이 됐으며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썩은 물에서 자라는 독버섯같은 악이 싻트고 있었다.
이젠 전쟁이 아니라 가난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머지 않아 이시카와 대위는 한국에서의 근무를 완전히 마치고 미국 본토로 되돌아 가게 됐다.
'귀국하면 아들 놈이 알아 볼까?'
이시카와 대위는 지갑속에 간직하고 있던 아들의 사진을 보면서 귀국할 날을 기다렸다. 미국을 떠나 올 때 가까스레 일어나 한발짝 디디다 털썩 주저 앉던 아들 녀석이 이젠 뛰어 다니며 말도 한다고 하니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포화 속에서 몸 다치지 않고 살아서 귀국을 하다니, 우주를 창조했다는 가미사마(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 우주를 조종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 가미사마를 생각해 보았으며 가마사마의 존재를 믿게 됐다. 그리고 두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콜로라도에 가면 덴버에 있는 일본인 교회에 가서 기독교 신자들과 같이 어울려 기도를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으며 가마사마는 분명 존재한다라는 믿음이 더 생기고 있었다.
마침내 이시카와 대위는 1952년 5월, 켄터키에 있는 포트 녹스 부대로 귀환을 하라는 마지막 전속 명령을 받고 보니 한국 전쟁에 참전해 한국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 자 한 1년 3개월간의 복무가 마무리 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시카와 대위는 미국으로 돌아 가기전 한국을 그의 머리속에 모두 집어 넣고 싶어 부산의 영도와 태종대에 가서 멀리 부산 앞바다를 바라다 보았다.
맑은 하늘아래 보이는 오륙도(五六島)가 오늘은 여섯 개의 작은 섬으로 보이고 있었다. 물론 흐린 날에는 다섯 개로 보이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한국이란 나라도 오륙도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바라다 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인데,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그리고 귀국을 하면 이시카와 대위는 그의 아들, 알렉스 이시카와라는 이름에 김(Kim)을 넣기로 했다.
'김(金)'이란 한국을 상징하는 성씨라고 생각을 했기에 '알렉스 킴 이시카와(Alex Kim Ishikawa)'로 명명하기로 했다.
그는 멀리 태종대(太宗臺)에서 큰 소리로 오륙도를 바라다 보며 크게 외쳤다.
"나, 제임스 이시카와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인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한국 사람에게 진 빚을 갚았다. 그리고 나는 미국으로 돌아 간다. 내 아들의 이름은 알렉스 킴 이시카와라고 부르기로 했다!"
*
다음날, 제임스 이시카와 대위는 초록 색깔로 페인트 칠한 군용기 편으로 동경을 거쳐 하와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조금 남쪽에 있는 그의 고향 살리나스를 바라다 보았다. 그곳에 있는 장미농원을 포기하고 콜로라도 수용소로 끌려 가던 그날이 떠 올랐다.
그 때, 조선 사람 김상환으로부터 받은 큰 은혜를 갚기 위해 멀리 이태리 전선으로 그리고 한국 전선으로 가서 목숨을 다해 전투에 임했는대 천지신명, 아니 가미사마의 은총으로 목숨을 건졌으며 마침내 한국(조선)을 사랑하는 일본인으로 남게 됐다.
먼 거리였다. 태평양을 넘어 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한국에 두고 온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아- 내가 이토록 한국을 사랑한단 말인가? 왜?'
제임스 이시카와 미 육군 대위는 그가 왜 이토록 한국을 사랑하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을.....'
제임스 이시카와 대위는 살리나스를 뚫어지게 바라다 보았다.
다음날, 켄터키 포트 훠스 기지에 도착하여 기지 사령관에게 귀대 보고를 했을 때, 그는 비로서 진정 그의 참고국의 품으로 돌아 왔음을 실감했다.
모든 빚을 갚고 주어진 임무를 다 마치고 나니 이젠 참 조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 조국은 일본이 아니고 미국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과 한국을 다 사랑한다."
이것이 이시카와 대위가 내린 그의 국가관이었다.
-낳고 자란 땅, 그곳에서 숨쉰 과거만이 그의 참된 조국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내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는 바로 여기가 내 조국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받아 토렌스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를 반가히 맞아 준 것은 아내 샐리였으나, 정작 보고 싶었던 아들 알렉스는 낮선 얼굴을 보고 쭈삣 거리다 못해 어머니 뒷 꽁무니에서 아버지 제임스를 바라다만 보았다. 눈 앞에 안보이던 아버지가 마치 태평양과 같이 먼 거리에 있던 존재로 생각 됐나보다.
그래도 제임스는 아들 알렉스를 번쩍 안아 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알렉스 킴 이시카와! 아버지 제임스 이시카와 군의관 대위는 조선 사람에게 진 빚을 갚고 왔노라!"라고.
제임스의 목소리가 너무 컷는지 아니면 알렉스가 겁에 질렸는지 마침내 "으앙!"하는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다.
"울긴? 빚을 갚고 왔는데....왜 울어...."
제임스는 아들을 꼭 안아 주었으나 아들은 더 크게 울었다.
*
제임스 이시카와 대위는 6월초에 명예제대를 했으며 7월부터 콜로라도 대학병원에서 남은 일년의 외과 전문의사 과정을 이수하게 됐다. 군에 입대했을 때 같이 수련했던 친구들은 이미 전문의사가 되어 각기 제 갈길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수용소 3년 한국전쟁 2년, 결국 5년이나 늦은 제임스를 바라다 보는 의과 대학과 동료의사들의 눈은 존경심 바로 그것이었다.
"닥터.이시카와? 당신은 진정 열정(熱情)과 긍휼( 矜恤.Compassion& Passion)이 가득한 의사로군요. 당신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바라다 보고 있군요. 당신은 우리 콜로라도 의과대학이 배출한 긍휼(矜恤)의 의사입니다. 존경합니다."
다시 돌아온 그의 생활은 눈코 뜰새 없는 바쁜 하루의 연속이었으며 전문의사 과정을 마치고 덴버에 남아 갈 곳 없는 일본 사람들의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
1954년 봄, 제임스의 아버지 노부사가 다카야마(이시카와)는 토렌스에서 지병으로 숨져 돌아 갔으며 제임스는 외과 전문의사가 되어 덴버에 <이시카와 외과(石川 外科)>를 개원하여 아마체에서 고생했던 일본 사람들을 돕는 친구가 됐다.
제임스 이시카와는 아버지 노부사가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알렉스와 손녀 제니퍼에게도 "한국 사람의 은혜를 잊지말라"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아버지 노부사가는 이름을 바꾼 후 그를 도와준 김상환의 가족에게 일절 소식을 전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한 것이 뜻밖에도 조선 사람, 김상환을 노엽게 해 그로하여금 일본을 저주하게 만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조선 사람의 은혜를 그토록 기억하며 살았는대......
오해(誤解)였다!!!
분명 오해였으며 잘못된 표현으로 인한 오해였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하던 그의 증손자 리차드 이시카와를 통해 조선 사람에 대한 은혜를 갚았으며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 사람의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 천만 다행이었음을 알게 됐다.
제 14장: 결혼
(적과의 영원한 동거)
"와! 와! 와!
정말 훌륭했군요!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런 분들이셨다니....
김상환 할아버지, 그리고 제임스 할아버지!...."
나(William)와 연인 제니퍼(Jennifer)는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갖고 탄성을 질렀다.
패망한 조선을 등지고 하와이로 끌려와 노동을 한 굶주린 조선인 청년과 동경에서 더 많은 지식을 배우고자 미국으로 온 부유하고 당당했던 일본 청년의 파란 많았던 아픔을 통해 우리들은 이렇게 미국 제일의 의과대학인 스탠포드에서 당당하게 외과수련을 하고 있으니, 훌륭한 조상의 피나는 눈물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
이민 1세인 김상환과 다카야마의 옛 얘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사람은 우리들의 결혼을 그토록 심하게 반대해 온 나의 어머니였다.
-"일본 사람과는 안돼! 죽어도 안돼, 너 죽고 나죽자"라고 막 가던 나의 어머니의 충격은 눈물겨웠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앉아 있을 뿐 도무지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다카야마를 오해 하고 있었음을 절실히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애인 제니퍼에게 심한 모욕적인 행동을 한 것도 후회가 됐는지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의 아버지는 보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으쓱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다 보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의 결혼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어머니가 태도를 180도 바꿔 우리들의 결혼을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나는 물론 가엾게도 벌벌 떨고 있던 제니퍼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떠오르면서 마침내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로 변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이번에는 나의 어머니가 손수 제니퍼의 손을 잡고 사과를 했다.
"제니퍼. 내가 오해 했었군. 그동안 제니퍼를 힘들게 했던 것을 용서해 주게.
그리고 기꺼히 너희들의 결혼을 허락하마... "
"어머니? 고맙습니다. 오늘 저는청공(靑空)의 웃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청공의 웃음을?"
"예! 청공의 웃음을... "
-후리시키루 아오소라노 나미다, 언젠가는 웃는 얼굴로 바뀔거야.-
청공의 눈물이 마침내 오늘 청공의 웃음으로 바뀌었다.
제니퍼는 나의 어머니의 품에 와락 안기면서 울고 있었다.
'후루시키루 아오소라노, 언젠가는 웃는 얼굴로 바뀔거야.'
"결혼을 허락하마! 결혼을. 그리고 너는 나의 딸이니라. 나의 딸......"
*
"혼자서 어둠속에서 너의 눈물의의미를 깨달았어.
후리시키루 아오소라노 나미다.
언젠가 웃는 얼굴로 바뀔거야."
"그래 오늘 웃는 얼굴로 바뀌었어.오늘.......그리고 우리는 결혼을 허락받았지오."
*
2007년 5월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스타인백 기념회관에서 빌 킴과 제니퍼 이시카와의 조촐하나 화기애애한 결혼식이 거행됐다. 아주 특별한 것은 초대된 손님들이 스탠포드병원 동료들뿐만 아니라 토렌스의 꽃가계 직원들, 살리나스 농장에서 일하는 멕시코, 과테말라등에서 온 단순 노동자들과 멀리 콜로라도 덴버에 사는 몇 명의 일본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아마체 수용소에서 동고동락을 했던 끈끈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결혼은 단순히 일본과 한국사람의 결혼이 아닌 일세기에 걸친 우정의 결실이었다.
-우리는 신혼 여행을 제니퍼의 고국, 일본을 방문하기로 계획했는데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 마치 등나무가 서로 얼키듯이, 칙나무 뿌리가 서로 꼬이듯이, 아니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손을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 듯이 우리의 핏줄에는 생각하지 못한 1000년의 역사가 농축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아니, 우리는 먼바다를 여행하고 모천(母川)으로 되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 연어(漁. Salmon)의 일생을 생각해 볼 기회가 됐다. 일본과 한국을 오고간 연어의 긴 여정을 일본으로 간 신혼여행에서 알게 됐다.
제2부:일본에서 이럴 수가 있을까?
15장: 일본으로 간 신혼 여행(新婚 旅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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