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2 18:34
피스모비치의 추억 / 민유자
아침 신문의 기사가 나를 아득한 반세기 전으로 데려갔다.
abc뉴스는 ‘지난해 11월 프레즈노에 거주하는 샬럿 루스가 자녀 5명과 함께 피스모비치를 찾았다가 88,993 달러의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 고 전했다. 피스모비치는 엘에이 북쪽 150마일 거리에 있는 태평양 연안의 해변이다. 광활한 백사장에 조개가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민 초기에 초등생 아이 둘을 데리고 우리 가족은 피스포비치로 주말 휴가를 갔다. 그때는 조개가 나기로 유명한 곳인지도 몰랐다. 그냥 지도를 보고 점 찍고 갔다. 한국의 여름은 잦은 비로 익숙했다. 엘에이에 오니 날이면 날마다 쨍 하고 맑은 하늘이 반기는 것이 신기하던 때다. 피스모비치에 당도하고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흰 모래사장이 푸른 바다와 동무하며 내달리고, 투명한 푸른 하늘빛은 마음의 둑을 툭 터지게 했다.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에 움츠러든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텐트를 설비하고 자리를 깔고 비치 파라솔을 꼽는데 해변에 나갔던 두 아이가 조개를 하나식 들고 와서 내민다.
‘가던 날이 바로 대박 장날’이었다. 어디랄 것도 없이 바로 선 자리에서 한 발로 발뒤꿈치를 비틀어 젖은 모래를 파면 쉽사리 탐스런 조개가 나왔다. 신기했다. 막 흥분도 되었다.
보물찾기 하듯 신나게 조개를 줍다가 눈여겨 보니 사람들이 삽을 들고 있다. 물어보니 인근 마켙에서 삽을 판다고 한다. 삽에는 조개의 크기를 재는 잣대가 붙어있다. 조개의 크기가 4.5 인치를 넘어야 채집이 가능하다. 손바닥 만하게 큰 것을 발견하고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재보면 사분의 일인치가 모자란다. 다른 모든 놀이가 무색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얼마나 열심히 캐내었는지 해거름엔 합격품 스무개를 채집했다. 조개가 크니 살집도 커서 푸짐하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터에 난 데 없는 횡재를 만났던 경험은 두고 두고 즐거운 얘기꺼리가 되었다. 수년 후에 언니네가 이민을 왔다. 내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던 언니가 여름이 되자 조카 가족과 함께 피스모 비치를 찾아갔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지금 피스모 비치에 왔는데 네가 말하던 곳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는 조개가 하나도 없어!”
자세히 물어서 확인한 바 분명히 피스모비치다. 어찌된 일일까? 난 조개가 하나도 없다는 언니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 넓은 벌에 가득했던 조개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언니는 내가 떠벌였던 얘기를 그 당시에는 믿기 어려웠을 게다.
달도 차면 기운다. 자연의 이치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조개들을 수달피 떼가 먹어치웠다는 얘기다. 조개는 십수년 정도를 주기로 많았다가 사라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수달피도 그렇다는 얘기가 되겠다. 먹이 사슬의 쌍곡선이 서로 교차 하면서 개체수가 차고 기우는 거다. 놀라운 자연의 이치다.
캘리포니아 어류 야생동물국 DFW는 조개류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루스의 자녀들은 들뜬 마음으로 조개 72개를 모았고 단속반으로부터 티켓을 받았다. 나중에 우편으로 어마어마한 벌금 고지서를 받고 황당한 루스네 가족은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샌루이스포 카운티 법원은 나중에 루스 가족의 진정서를 받아들여 벌금을 500달러로 줄여주었다 한다.
아마도 인간은 선천적으로 제어하기 힘든 무한의 욕심이 내재해 있는 것 같다. 그것 또한 자연스런 현상이기는 하다. 만일 인류가 자연을 지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몰지각하게 지구를 망가뜨린다면 결국 인간은 자멸하는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을 테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로 현명하게 다스리는 노력을 기꺼이 받아드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범위 안에서 자연을 누릴 자격도 생긴다고 봐야 할 것이다.
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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