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2 18:38
트로나 피나클에서 / 민유자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도 생명의 봄기운은 가득했다. 멀리 보이는 11,043 피트의 텔레스콥 정상은 흰 눈으로 덮여있어도 때를 만난 들꽃은 화들짝 깨어나 흠뻑 쟁여두었던 대지의 기운을 활짝 뿜어내며 한들거렸다.
데쓰벨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트로나 피나클을 보기 위해 샛길로 들어섰다. 표지판도 없는 비포장 도로를 삼십분 쯤 들어갔다. 비포장 도로는 흔들림이 만만치 않았다. 저멀리 앞에도 뒤에도 차가 하나도 없다. 피나클을 향하여 꺾여진 샛길을 놓친 것을 깨달았을 때에 출렁이는 노랑 물결의 들꽃 바다를 만났다. 꽃 모양이 코스모스 같기도 하고 아네모네 같기도 하다. 올해는 늦은 비가 많이 와서 사막의 풀 답지않게 키가 훌쩍 자랐다.
모두가 눈이 부시다. 사막의 투명한 하늘에 몇점 떠있는 흰 조각 구름. 웃음 띤 얼굴을 반짝 치켜들고 눈산에서 내려오는 청량한 바람의 리듬을 타고 흔들리는 꽃들의 군무. 노랑 꽃물결의 출렁임 속에 사방으로 눈이 닿는 시야가 환희의 음악으로 그득 차있다. 우리 일행 넷을 위한 이런 준비된 독무대를 만나다니! 일행의 얼굴들도 어느새 꽃이 되어 절로 웃음을 띄고 밝게 빛나고 있다.
트로나 피나클은 우주의 행성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지형이다. 먼저 유투브에서 ‘트로나 피나클’의 영상을 한 두편 보시기를 권한다. 둔한 필치로 그려본들 우주의 한 점 어느 혹성에 순간이동을 한 그 적막함과 황량함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일 듯 하다. ‘혹성탈출’, ‘스타트랙’외의 십여편의 영화 촬영지였기도 하고 SF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트로나 피나클은 예전에는 바다밑이었다는 14마일에 걸친 석회암 재질의 투파라 불리는 키 큰 뾰족 석탑이다. 사진 작가들에게는 남가주에서 별을 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우주의 어느 혹성에 여행을 왔어!” 신비함과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런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피나클을 거의 다 돌아보고 나오는 중이다. 자동차의 오른쪽 앞 바퀴가 모래에 빠졌다. 일행이 모두 차에서 내리고 삽으로 모래를 파내고 다시 시도해도 차는 헛바퀴만 돌면서 점점 더 모래를 파헤치고 내려박힌다. 수차례 모래를 파내고 마른 나뭇가지를 깔고 시도해보지만 어림없다. AAA에 전화를 해서 견인차를 부르려 하나 와이파이도 전화도 깜깜이다. “어쩌면 좋지?” “누구 한 사람이 걸어나가서 구조를 요청해야 하나?”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이고 방향도 길도 모르는 오지가 아닌가! 불현듯 이 곳의 이름이 죽음의 계곡이란 의미가 다가왔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속수무책 낙담의 늪에 빠진 우리에게 눈부신 천사가 나타났다. 검은 지프를 타고 금발의 날씬한 백인 미녀다. 씩씩하게 삽을 들고 와서 우리와 함께 모래를 파내고 그녀 지프의 지붕에 올라가 트래킹 보드를 풀어내어 바퀴 밑에 대고 시동을 걸어 움직이려 하나 역시 빠져나오지 못한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차에서는 연기가 나면서 차의 부품이 떨어져나온다. 해도 해도 안되니까 그녀의 차로 우리 차를 밀어보자는 의견을 낸다. 그녀는 반대한다. 그래도 다른 수는 없으니 일단 해보자고 해서 그녀를 설득하고 조심스레 시도해본다.
“와장창” 우리차의 뒷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지프는 바퀴가 커서 자동차가 높고 우리의 밴은 모래구덩이에 빠진 상태로 높이가 맞지 않아 생긴 일이다.
우리의 인솔자와 미녀 천사는 그녀의 차를 타고 구조를 요청하러 밖으로 나가고 우리 셋은 하릴없이 모래밭에 주저앉아 기다렸다. 오리무중 지루한 기다림 속에 담소가 끊기고 조그만 돌을 주워 공기놀이를 시작한다. 반세기만에 해보는 놀이다.
즈음에, 구조 요청을 하러 나갔던 일행이 검은 지프와 흰 지프의 또 다른 미남 천사 둘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와! 얼마나 든든한가!” 세 천사가 협력하여 차를 모래구덩이에서 힘겹게 끌어내었다. 그들은 뙤약볕 아래서 몸을 사리지 않고 모래를 퍼내고,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여러모양으로 의견을 짜내고 조율하면서 마치 자신들의 부모를 돕듯 애를 썼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러나 꺼내놓고 보니 차는 가동이 불가능하게 고장이 났다. 한숨이 절로 났다.
그러는 동안 해가 저물어 사방은 어둠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천사 2와 천사 3는 캠퍼를 가지고 와서 정박하고 있었다. 천사2가 자기 캠퍼로 가면 와이파이도 되고 전화도 되니 그곳으로 가자고 하여 모두 그들의 차를 나누어 타고 갔다. 커다란 집차에 들어가니 삼면의 대형 화면과 컴퓨터가 설비된 사무실이 꾸며져 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놀기도 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멋진 젊은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여행 스케쥴이 있음에도 한나절을 할애하고 늦게까지 저녁식사도 거르면서 끝까지 우리를 도왔다. 그들은 인근 도시에다 우리의 숙소를 정하여 데려다주고, 차를 깜깜한 곳에서 견인하여 정비소에 끌어다 놓기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했다.
미녀 천사는 그날로 란초 쿠카몽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집에는 고양이가 여섯마리가 있는데 절룸발이도 있고 애꾸눈이도 있고 온전치 못한 고양이가 대부분이라 한다. 그 고양이들 밥을 주기 위해서 돌아간다며 밤길을 떠났다.
우리는 이 큰 고마움을 어찌 표해야 할 지 몰라 저녁대접이라도 하는 마음으로 금일봉을 주려 했으나 그러면 자기들이 한 일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모두 정색을 하고 사양했다. 그들도 조난의 위기를 맞고 누구의 도움을 받은 경험있다며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 말한다.
감동의 감동이 감사를 넘어서 큰 뉘우침과 자책으로 다가왔다. 예수가 진정한 이웃의 예로 선한 사마리아인을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난 남을 위해서 내일처럼 그렇게 몸 바쳐 댓가 없는 도움을 준 일이 없다. 끝까지 마치 자신의 책임인양 우리를 위로까지 해가면서 끝까지 일을 마무리 해주었다.
세상에 악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이렇게 성실하고 좋은 젊은이들이 곳곳에 많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카운터 위에 놓아둔 트로나 피나클에서 주워온 공기돌을 바라보며 “하나님 저들을 축복하소서!”
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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