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5 15:03
나는 글을 쓸 때에 독자를 의식하는가 / 민유자
나는 글을 쓸 때에 독자를 의식하는가? 그렇다. 나는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는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면 어느 만큼 어떻게 의식하는가?
독자를 전혀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무척 궁금했다. 지인에게 일독을 권하고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는 절대 독자를 의식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어서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을 토론으로 격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내게 독자의 반응을 궁금해 하지 말고 나의 생각을 가감없이 피력하라고 따끔하게 충고 했다. 더우기 내 주장을 철회하고 온전히 자기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한 독자가 감동하는 글은 절대 쓸 수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그는 독자를 의식하면 절대로 솔직할 수가 없다는 것과 독자를 의식하다보면 독자의 비위를 맞추게 되고 그러면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 글은 읽을 가치가 없이 저속한 범주에 머물게 된다는 꽤 그럴 듯 한 얘기였다.
물론 그 얘기가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고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수긍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다. 그렇게 흑백논리의 단답형으로만 끝내고 뒤돌아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난 나의 견해를 피력 하려 했지만 나는 그를 납득 시키는 데 실패했다. 조금도 물러설 여유를 두지 않고 확고 부동한 자세로 승기를 잡은 그의 의견에 그대로 동의할 수 없으면서도, 나는 내 의견을 조리있게 말하지 못한 아쉬움에 답답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었다.
물론 작가는 소신을 밝히려 할 때에 감내해야할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진실을 마주하려면 때론 고초를 감당할 용기가 필요할 국면도 생긴다. 잠시 눈 감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영역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수도 있고 그것이 작가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지극히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다. 한번 뱉었어도 곧 사라지는 말과 달리 글은 오래 남아있어서 증거를 계속 보여주니 무게감이 가볍지 않아서 주저하게도 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를 꼭 의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꽁꽁 숨겨두는 일기를 쓴다면 몰라도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고 상대와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오히려 독자를 염두에 두고도 솔직할 수 있어야 하고, 진실을 바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일정부분 사적 영역의 노출을 감당하는 공인 정신의 담대함도 어느 정도 요구된다. 그렇다고 해도 사적 영역을 보자기 펼치듯 다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오히려 식상하다. 글의 맥락에 꼭 필요한 부분만 재치있게 언급한다. 이 때에 상당한 부담을 안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지려는 마음가짐으로 용기를 내서 독자와 대면해야 한다. 그것이 모름지기 작가 정신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독자와 조우해서 이끌어낸 공감과 감동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접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독자를 의식하는 것은 필수다. 내 글을 읽을 독자층의 범위를 생각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 청소년을 위한 글, 여성층을 위한 글처럼 특정범위를 위해서라면 거기에 걸맞는 어투나 단어의 선택, 적절한 예문, 내용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해야 한다.
폭 넓은 인반인을 위한 글에서도 독자를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문성의 깊이는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허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맥락에 유용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논문이 아닌 이상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없다.
독자의 품격을 위한 존중도 생각해야 한다. 적절한 경어를 구사하고, 눈살 찌프릴 내용과 표현은 자제한다. 관습에 얽매인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관을 주장하는 지도 살핀다. 특정 종교의 편향성은 더 많은 독자에게 외면 당할 수 있음도 인지하고, 어떤 이슈는 사회적인 파급의 효과까지 있을 수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사실과 진실을 말하더라도 개인의 자랑이나 자만심의 표출은 독자에게 외면 당하기 쉽고, 의식하지 않았어도 특정층을 비하하는 바가 없는 지도 살펴야 한다.
글을 씀에 있어 독자를 의식하는 것은 글의 방향성과 주제의 명확성을 한층 높여주므로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논지를 확실히 전달하여 공감을 이끌어내게 하는 중요한 사안이 된다.
잘 닦아놓은 도로에서 수레는 거침 없이 잘 굴러간다. 글을 쓸 때에 독자를 의식하는 것은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하여 도로를 정비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독자를 초대하는 도로변에 꽃을 심고 나무를 배열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걸림돌과 장애물이 없는 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기본이고 우선이다. 글을 씀에 독자를 의식하고 심도 있게 점검하는 것은 내 글을 실은 수레가 독자에게 잘 달려가게 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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