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슬콘 소나무 /  민유자

  세상에서 높고도 높은 어르신을 뵙고 왔다.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캘리포니아 Inyo National Forest에 White Mt(14,245 ft)에는  Bristlecone Pine 군락지가 있다. 그곳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최장수 인물로 969살을 살았다는 무드셀라의 이름이 붙여진 브리슬콘 소나무가 있다. 그러나 이 나무의 실제 나이는 무드셀라의 다섯배가 넘는 4,850살이다. 긴 시간 살아낸 생애를 생각하면 단순히 시간이라는 길이만 놓고 볼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 나무의 출생은 단군 신화의 시절부터이니 나는 그에 비하면, 아니 애시당초 그에 비견할 수 조차 없겠다.  

  해발 일만 피트가 되는 곳부터는 수목 한계선이다. 나무가 살지 못하는 악조건이다. 길도 포장이 되어있지 않다. 길에는 뽀족한 돌들이 널려있어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기 십상이다. 친절하게도  이 지점을 넘어서부터는 토잉비가 최소 1,000불이라는 경고의 사인판이 붙어있다. 구월 중순부터는  이곳은 벌써 눈이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입산이 금지 된다. 

  수목 한계선을 지나 덜커덩거리는 돌밭길을 자동차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올라간다. 나무가 살지 못하는 능선과 계곡은 경이로운 삭막함이 몸서리 치게 엄습한다. 맑은 공기로 인해 거침없이 내려쪼이는, 눈이 부시게 따가운 햇살의 건조함이 살갗의 습기를 날려버리고 바삭거리게 굽는 듯 하다.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이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푸른색과 흰색의 선명한 대비로 아름답다. 서향 산자락에는 빛바랜 죽은 나무들이 흰 뼈를 드러내고 민둥산에 누워 널브러진 채  풍장을 하고 있다.

일만 일천 피트 지점에 올라가니 브리슬콘 소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안내소가 있어 주차를 하고  트레일을 걷기로 한다. 막상 무드셀라 나무는 보호하기 위하여 명시해놓지 않는다고 한다. 허나 그에 준하는 수천년 수령의 나무가 많아서 굳이 찾지 않아도 그냥 본바나 다름이 없다.

트레일의 오름길에서 숨이 턱에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조이기 시작하더니 땅에서 자석이 당기는 듯 발이 떨어지지 않고 무겁다. 어느새 일행에서 저만치 처졌다. 고산증이다. 생각해보니 백두산에다 한라산의 반을 얹어놓은 것 같은 높이다. 고산증을 처음 경험해 본다. 일행 중 내가 제일 고령이기는 하나 브리슬콘 소나무 앞에서는 너무 나약한 모습이다. 이 높이가 지금의 내게는 한계인가 보다.

  참고 강행을 하려다가 오르기를 포기하고 옆으로 서서히 둘러본다. 나무들은 악조건 속에서 자라느라  쭉쭉 벋은 나무는 하나도 없다. 지독하게 건조하고, 춥고, 산소가 부족한데다 번개와 강풍에 시달리면서 어렵사리 생명을 이어가느라 수형이 모두 뒤틀리고 변색되었다. 수천년을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나무의 키도 그리 크지 않다.  강풍에 시달리다 못 견디고 쓰러진 나무도 많다. 아름드리 둥치를 보면 수백년 또는 천여년을 살았을 나무다. 사방으로 벋은 구불구불한 뿌리를 드러내고 지금은 오히려 평안하다고 조용히 누워있다. 뽑혀서 드러난 뿌리 모양이 마치 빼어난 예술가의 조각 작품 같다.

  수령이 상당히 높아보이는 나무 옆으로 가서 거친 숨결도 진정시키고 잠시 쉬기도 할 겸 기대며 인사를 드려본다. “높은 어르신을 이리 뵙게 되어 심히 영광입니다. 이렇게 머리 조아려 인사를 드리며 감히 여쭙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그 심한 악천후를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어찌 견디셨을까요?”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데 조용한 음성이 들려온다. “사랑스런 그대여 내게 말을 걸어주니 고맙네!  척박한 땅과 악천후는 오히려 우리가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물론 악조건을 이기지 못하면 살 수 없어요! 그러나 조상의 은덕으로 우리의 유전자에는 선천적으로 욕심을 버리는 능력이 있거든. 최소한의 물과 극소량의 영양으로 성장을 억제하고 자신의 몸을 단단하게 극단련하는 기질이 있다오. 그러지 않고서는 수년씩 이어지는 가뭄에 견디지 못하지.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극성스런 병충해에도 무방비로 허약해지고, 무서운 혹한의 칼바람 강풍에는 쓰러질 수 밖에 없다오.” “아! 그렇군요! 절제와 인내로 악조건을 이겨내다보면 스스로 강하게 단련되고 그 힘이 장구한 세월을 이어가게 했다는 말씀이군요!”

어린 나무는 둥치가 둥글지만 수령이 많은 나무는 허리둘레의 굴곡이 심했다. 속이 갈라지고 텅 빈 모양에다 마치 한 나무임에도 여러 나무가 붙은 것 같이 여러색을 띠고 있다. “어르신들의 몸은 세로로 칼집을 넣은 듯 갈라져 있고 속이 비인 것은 어쩐 이유인가요?” “바로 그것이 성숙을 일별하는 가늠이 되기도 한다오! 젊은 날의 잊힐 수 없는 뼈아픈 경험의 값진 교훈이라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간절히 기다려 질 때쯤, 며칠 날이 풀리고 햇볕이 제법 따스한 날이 있을 때가 있어요. 그 때에 젊은 나무는 봄인 줄 착각을 하고 양지바른 쪽으로  성급히 물올림을 시작해요. 그러다 급작스런 추위가 도로 닥치면 얼어붙고 수액으로 불었던 몸피가 터지는 아픔을 겪게 되요. 그런 날은 대개 달도 없는 그믐밤, 쩡!~ 골짜기를 울리는 생살 찢기는 비명 소리가 여기 저기서 간간히 들린다오.” “에고! 그러면 그 나무는 죽나요?” “죽지는 않지만 송진을 만들어 치유하는 동안 상당한 고충을 감당해야 하지요.” “어르신들은 미리 가르침을 주지 않으시나요?” “가르침은 어디에나 늘 있지만 젊은이들의 발 빠른 앞서감을 다 막을 수는 없다오. 나부터도 예전에 그랬으니까! 몸소 경험하는 것 만한 확실한 교훈은 없는 법이라오!” 

“속이 텅 비인 나무도 더러 있던데요?” “나무는 가지 끝에 성장점이 있어 자라고 표피 바로 안쪽에서 생장하며 굵어져요. 그러니까 나무의 중심부 제일 아래쪽은 나무가 태어날 때의 년수를 갖고 있거든. 그러다보니 그 세포가 뿌리서부터 죽기도 하고 썩기도 한다오. 그렇게 속을 비우면 오히려 큰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오,”

  반만년 인류 역사 속에 성현들도 많고 동서고금의 현인들도 많지만 이렇게 몸소 세월을 이기고 살아내며 산 증거를 눈에 보여주는 증거는 참 귀하다. 고산증의 위험 부담을 안고 헐떡거리며 억지로 오르기보다 안전하게 포기하고 조용히 어르신을 만나 천년의 지혜를 전수 받았음에  오히려 감사한 산행이었다. 

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