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2 18:41
엇박자 / 민유자
리듬에 쉼 없는 온박자만 계속 흐르면 힘차기는 하나 금새 맥이 빠지고 재미는 영 없을 게다. 쉼표도 있고 긴 박자와 반박자도 있어야 멜로디는 탄력을 받아 흥겹게 흐르고 변화의 묘미도 생긴다.
요즘 맨발 걷기가 한국에서부터 유행을 타고, 맨발걷기로 지병을 고쳤다는 놀라운 효능을 전하는 소식이 이곳까지 들려온다.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둘레길에 황토를 깔아주고, 고운 모래를 깔아주기도 하며, 신발장과 발을 씼을 수 있도록 수도 시설까지 구비해 준다고 했다.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요즘이다. 바다가 멀지 않으니 이른 아침 서늘한 때에 모래밭을 걷기로 남편과 합의하고 일주일에 두 번 날을 정해 걷기로 했다.
이른 아침 바다는 아직 인적이 드물다. 밤잠이 덜 깬 안개는 선듯 날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를 부옇게 지우고 있다.
썰물이 쓸고 내려간 자리의 젖은 모래는 곱고 반반하게 다져져 있고 밀고 들어왔던 물이 내려놓고 간 수초 무더기가 여기 저기 널려있다. 다리 긴 물새들이 파도의 들고 나는 리듬을 따라 잔걸음으로 쫑쫑쫑 쫑쫑 흰 물거품과 술레잡기를 하듯 쫓고 쫓기며 리드미컬하게 군무를 춘다.
남편은 들고 나는 물길을 따라 발목을 적시며 저만치 걷고 난 좀 떨어져 윗쪽 모래밭을 걷는다. 젖은 모래 위를 걷는 맨발의 감촉이 좋다. 파도소리 들으며 시선을 멀리 두고 맞는 바람도 시원하다.
지나치다가 눈길을 확 당기는 색갈에 돌아보니 빨간 장미 두 송이가 모래밭에 떨어져있다. 누운 자리가 영 생뚱맞다. “아니 장미야 네가 웬일로 여기에?!”
“누구일까? 바닷가에 오면서 일부러 맘 먹고 장미를 가져왔다면 필경 연인이겠지? 연인들이 꼭두 새벽에 여기에 오지는 않았겠지?”
“장미가 아직 시들지 않고 싱싱한 것을 보면 아마도 어제 노을이 지는 늦은 저녁이나 이른 밤 쯤일수도 있겠다. 물론 젊은 커플이였겠지? 장년이나 노년은 이런 곳에 와서 구애를 하지는 않을테지!. 장미를 건네면서 떨었을까? 표정은 어땠을까? 맘 졸이던 상대의 호응을 흔쾌히 얻었을까? 그랬다면 뛸듯이 기뻤겠지? 두 사람의 눈빛에선 별들이 와르르 쏟아졌겠지? 기쁨으로 와락 끌어안았을 지도 모르지!. 키스도 했을까?”
“가만!, 고백을 듣고 꽃을 받으면서 기쁘게 호응을 했다면 왜 장미를 가져가지 않고 여기에 떨구고 갔을까? 실패였나?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날 텐데! 엇박이었나? 아마 그래서 장미는 모래사장에서 밤을 지샜는지도 모르지!.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만 낙심했겠다!”
“하지만 엇박은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는걸! 고난도의 테크닉이지! 누군지 모르지만 만일 실망했다면 너무 괴로워하지 말기를! 적절히 쉼표를 끼워 넣어봐요! 그러면 인생의 멜로디가 오히려 생동감 있게 살아날 테니까!”
“육십년 전, 엇박을 놓았던 키다리 봉래야! ㅎㅎㅎ, 넌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니?” 소리쳐 불러본다. 성큼성큼 걷던 그의 발걸음처럼 구르는 내 웃음소리는 돌돌 말리는 파도를 넘어 넘실 남실 스러져간다.
아련한 상상에 이끌리던 내 발걸음은 느닷없이 뒷덜미를 잡는 굵은 목소리에 선뜻 멈추어 돌아섰다. “여보! 이제 그만 우리 발 씼고 크레마 카페*에 가서 아침 먹읍시다.”
240720
크레마 카페 - 실비치에 있는 불란서 풍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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