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할머니의 싸인
2007.11.19 12:00
정씨 할머니의 싸인 / 강학희
사무일을 보는 나는 늘 사인을 요청해야 한다. 영한 사전 찾아보니 싸인 sign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명하는 일, 또는 그 서명, a printed symbol이다. 설명 후 X표 있는 곳에 싸인해주셔요 서류를 내민다.
남 할머니 꼬불꼬불 알파벳으로 미국 할머니가 된다
신 할머니 삐뚤삐뚤 국문으로 떳떳한 한국 할머니다
김 할머니 간단하게 金씨 가문의 여인으로 나타난다
박 할머니 투표처럼 X 가위표 기호로 왔음 표시한다
민 할머니 수전증에 반듯하던 민씨가 인씨로 바뀐다.
정씨 할머니 위 아래 땡. 땡. 점만 두 개 찍어놓으시며 싸인이 뭐여, 기냥 손도장치라면 좀 좋아, 손도장이
제일인겨. 암만, 수수천천 세상 열손 다 찍어봐 하나 같은 감? 암만, 천하없어도 못 바꾸는 게 손도장이여!
국문한문영문 전부 깜깜한 점. 땡.땡이 할머니 20년 미국살이에 점만 치시다 세상 이치까지 훤해지셨다.
아무리 봐도 골 골이 제각각 돌고 오라하신 세상 길 같은 저 지문도형 다 꿰뚫으시고 하늘 가는 지름 길,
하나 남은 육신마저 병원에 기부하는 싸인을 하셨다 점. 땡.땡이 마침표에 손도장 콱 찍어 마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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