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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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2019.11.22 22:32

라만섭 조회 수:3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시장에 가서 당나귀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아버지는 당나귀 등에 올라타고 아들은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다. “애를 걷게 하고 혼자서 나귀등에 타고 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건강해 보이시는데...” 이 말은 들은 아버지는 나귀등에서 내리고 대신 아들을 태운 채 한참을 걸어갔다.

 

그런데 늙은 아버지를 걷게 하고 혼자 편히 타고 가서야 되겠나? 젊은 사람이........”하고 어떤 노인이 나타나서 아들을 나무랐다. 아들은 얼른 나귀등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귀등에 함께 올라타기로 하였다. 얼마를 그렇게 가는데, 세 번째 사람이 앞으로 다가서더니 당신들은 지금 힘없는 동물을 학대하는 것입니다하고 항의 하는 바람에 그들은 다시 나귀등에서 내려왔다. 아버지는 왼쪽에, 아들은 오른쪽에, 당나귀는 가운데에 서서 같이 걸었다. 이번에는 네 번째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소리가 당신네들 부자는 걸어가고 나귀는 쉬게 하는 것이 어떻소?” 그들은 나귀등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귀의 앞다리를 아들은 뒷다리를 밧줄로 동여맨 다음, 긴 몽둥이를 다리사이에 끼여 어깨에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솝(Aesop)우화에 나오는 위의 이야기는, 모두의 마음에 들게 하려다가 결국에는 아무도 만족 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늘의 햇빛은 원래 만물에 공평하게 비추게 마련이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원하는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분배 과정에서 공평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유로, 부의 편재와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라는 현실적 변수로 말미암아, 정의 실현 이라는 이상 목표도 왕왕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인다. 불평등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부자가 만들어지고 낙오자도 생겨나며 사회 기생충은 창궐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기한다는 경제원칙은, 어느새 불공정을 낳는 산파로 탈바꿈하는 역전극을 맞는다.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서 가장 큰 효과를 얻는다는 경제 원칙을 사회 전체에 대입할 경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조우하게 된다.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이나 이익 집단을 동시에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묘안은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행복을 위한 절대 다수의 희생이 오로지 독재 체재유지를 위한 악의 선택이라면, 절대 다수(99%)의 행복을 위한 극소수(1%부자)의 희생은 자유 민주주의 체재 하 에서의 불가피한 선의의 선택(고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정의 공정함이다.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공정한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결과라면,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사회 전체의 공동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선진 시민의 사회적 의무가 아닐까 생각 한다. 설령 개인적인 다소의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20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