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누룽지

2018.11.04 20:04

김순길 조회 수:1

보리누룽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순 길

 

 

 

 

 

 탁 트인 들판의 청보리밭에 봄의 향기가 가득하다. 푸르름이 넘실대는 초록의 대향연이다. 전국 최초로 보리를 주제로한 경관농업으로 우리나라 대표축제가 된 「고창청보리밭축제한마당이다. 각종 공연, 판매 등에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주민주도형 축제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득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나는 아내, 지인부부와 함께 포토존에서 사진도 찍으며, 봄바람에 부드럽게 일렁이는 청보리밭 사잇길을 걸었다. 대지와 하늘이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하니 나와 주위 사람들도 모두 푸르러 한껏 젊어진 듯하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감탄하며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으면 이런 길이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시간이 이렇게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축제의 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거리이다우리 일행은 아쉬움 속에 청보리밭을 뒤로하고 추억의 먹거리 장터로 발길을 돌렸다. 즐비한 먹거리 중에서 특히 오늘의 주인공인 보리로 만든 먹거리가 풍성했다. 꽁보리밥과 비빔밥, 보리죽, 보리개떡 등 종류도 다양했다. 아내와 지인부부는 보리비빔밥을 주문하고 나는 보리누룽지를 주문했으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함께 보리비빔밥을 먹게 되었다.

 

 보리누룽지에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깊게 서려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제 36년의 수탈로 인한 헐벗음과 굶주림, 뒤이어진 6.25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과 황폐해진 아름다운 강산, 우리민족에게는 이렇게 가장 가깝다는 이웃나라에게 송두리째 유린당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처절하고도 쓰라린 역사가 있다. 이로 인하여 1950년대 우리민족의 뼈속까지 스며든 가난은 당연시 되었으며, 그것을「보릿고개」가 대변해주고 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꽁보리밥, 무밥, 시래기밥 등으로 연명하고, 점심은 고구마나 감자 등으로 때웠는데, 이것마저도 없을 때는 물 한 바가지로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물만 마시는 나를 보고 새까맣게 타버린 보리누룽지를 먹으라고 주셨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래도 냉수보다는 나을 것 같아 단숨에 먹어치웠다. 밥 지을 때 밑바닥에 있는 보리가 탄 숭늉은 감칠맛이 조금 있었지만, 보리누룽지는 퉁퉁 불어터져서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내가 맛있게 먹는 줄 아시고 보리누룽지를 매일 먹을 수 있도록 부엌에 준비해놓고 논밭 일터로 나가셨다. 늦은 저녁시간 일터에서 지칠 대로 지쳐 집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항상 물 한 바가지를 달라고 하시고 그걸 단숨에 들이키셨다. 어머니는 평소 일터에 나가시기 전에 드시던 보리누룽지를 나에게 주시고 저녁이 다 되서야 물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셨던 것이다.

 

  요즘 보리누룽지의 효능에 대하여 좋은 말이 많다. 쌀은 산성식품인데 반해 보리누룽지는 약알칼리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리누룽지는 쌀누룽지보다는 백 배, 보리밥보다는 열 배 더 몸에 좋다고 한다. 또한, 보리누룽지는 몸속에 있는 온갖 종류의 유독물질과 기름때, 콜레스테롤 같은 것들을 분해시켜 몸 밖으로 모두 빼내 혈액을 깨끗하게 해준다고 한다. 특히, 보리누룽지는 이미 반쯤 숯이 된 상태이고, 숯은 유기영양물질이 다 타서 탄소 성분이 경화되어 몸속에 흡수되지는 않고 해로운 물질은 배출하기 때문에 고혈압, 당뇨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살이를 보면 때로는 시간이 아름다움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시간이 해답을 안겨줄 거라고도 한다. 진정, 그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시커멓게 타버린 보리누룽지」는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그 속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눈물’이 들어 있었다. 청보리밭 내음이 가득한 오늘, 먼 곳에 계신 어머니가 더욱 생각난다.

 “어머니, 그립고 그립습니다!

 

 

                                                       (2018. 11. 5.)

댓글 0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MB (허용 확장자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75 프라하에 내 발자국을 이진숙 2018.11.07 3
274 하루가 열리면 김학 2018.11.05 3
273 '언어유희'에 관해 윤근택 2018.11.05 5
» 보리누룽지 김순길 2018.11.04 1
271 낭만과 스릴의 출렁다리 양희선 2018.11.04 3
270 새벽을 기다리는 경비원 P씨 홍성조 2018.11.03 3
269 감집게를 고치다가 윤근택 2018.11.02 2
268 사랑과 이별의 경계에서 최인혜 2018.11.02 2
267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두루미 2018.11.01 5
266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 오창록 2018.11.01 4
265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으며 김학 2018.10.31 4
264 부채꼴의 향연 홍성조 2018.10.31 0
263 멀어져가는 나의 너 장지나 2018.10.31 2
262 농담과 진담 사이 한성덕 2018.10.31 0
261 선운사 꽃무릇 신효선 2018.10.30 2
260 꽃을 꽂으며 오현정 2018.10.29 5
259 뇌졸중의 날에 해야 할 일들 두루미 2018.10.29 6
258 전북수필가들의 '나의 등단작품' 출간을 기뻐하며 김학 2018.10.28 2
257 백호 임제 선생을 기리며 김길남 2018.10.28 0
256 '노인'이라 쓰고 '청춘'이라 읽는다 정남숙 2018.10.2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