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톡에 피는 사랑

2019.04.14 03:00

최인혜 조회 수:1

보이스톡에 피는 사랑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최인혜

 

                                                                           

 

  황금색 금비가 우수수 쏟아진다. 노란 은행잎이 부는 바람에 휘리릭, 휘리릭 꽃처럼 휘날리는 가을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황금 융단을 깔아놓은 듯 찬란한 길이 끝나는 곳에는 겨울이 있다. 벚나무 잎은 남김없이 다 지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건 단풍잎과 떨켜가 없는 참나무, 대왕참나무뿐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가 떨고 있는 듯한 창밖의 풍경이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가을이 가고 스산한 겨울이 오면 어딘지 마음 쓰이는 데가 많아진다. 다가오는 추위에 떨고 있을 이들, 주변에 내 마음을 기다릴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도 마음이 쓰인다. 내 집과 아이들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때도 이 계절이다. 하지만, 나는 이 스산한 계절이 되면 문득 내가 외톨이라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를 아껴주는 남편이 있고 내 자식들이 있는데 무슨 외로움이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향수같은 마음이랄까. 어릴 적에 같이 자라고 다투기도 하면서 살았던 내 형제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내 가슴을 불쑥 열고 들어와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낸다. 모두 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내 형제들이다. 그리운 여자 형제들은 한 사람도 이 나라에 살지 않으니, 불현듯이 일어나는 내 그리움은 전화로 목소리를 듣거나 영상전화로 풀 수밖에 없다.

 

  언니 둘과 여동생 두 명이 모두 미국 LA에 살고 있다. 큰언니는 S대 치대 졸업 후 서울 외국인이 경영하는 W병원에서 치과의사로 재직하다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민가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언니가 미국에 살면서 동생들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데려가는 바람에 우리 자매 넷이 차근차근 미국으로 갔다.

  사실은 나도 일찍이 미국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으로 결혼 후 남편까지 이민 여권을 교부받고 미국에 가서 살려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미국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으면서 마지못해 여권을 받기까지 했지만, 맘이 내키지 않는지 미루다가 두 번이나 여권 연장까지 했다. 그러는 도중에 나의 학교 근무경력이 늘고 평가를 잘 받아 교감으로 승진할 기회가 왔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 일이 미국 이민을 포기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결국은 이민 여권을 반납하고 다섯 자매 중 나 혼자만 한국에 남아 외톨이가 되었다.

  우리 집 딸 다섯 중 유일하게 남아서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내가 남았기에 아버지노후에 외롭지 않게 변산반도 해안도로 일주 및 정읍 내장산과 백양사 구경 등 전북도 일원을 주말이면 모시고 다니면서 다섯 딸을 대표하여 보살펴드렸다. 그 뒤에 교직의 꽃을 품에 안는 승진도 하고 퇴직을 한 것도 미국에 갔더라면 경험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미국 부럽지 않게 잘 사는데, 남의 나라에 가서 눈치를 보아가며 살지 않은 일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더구나 요즘에는 남북대화가 잘 되어 평화로운 한반도가 되는 듯하니 더욱 다행스럽다.

 

   오늘처럼 날이 흐리고 일기가 좋지 않을 때면 문득 미국서 혼자 사는 동생이 생각난다. 그럴라치면 LA와 시간 차가 우리나라보다 16시간 늦다는 것을 참작하여 내 바로 밑의 동생과 보이스톡을 한다.

  “정혜냐?

  “응”

  “지금 뭐하냐?

  “TV 보고 있어”

  “저녁은 먹었냐? 네가 먹고 쓴 만큼만 네 것이 된다. 부디 굶지 말고 잘 먹고 잘 지내.

 항상 동생과 오가는 카톡 내용은 거의 변함이 없다. 동생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기에 마음이 걸린다. 지병이 있어 각별히 주의를 요해야 하기에 마음이 쓰이는 동생이다.

 

  혈육이라는 관계, 형제라는 사이는 유전자를 나눈 사이여서인지 정이 끌리고 문득문득 그리움이 솟으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무친다. 그 정은 뭐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어떤 아련하고 깊은 무엇이 있다. 미국에 사는 언니와 동생들이 몇 차례 고향을 찾아왔을 때, 한결같이 내게 말했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남아 있어서 퍽 다행이라고. 문득 고향이 그리워도 아무도 없었다면 찾아올 마음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산다는 일은 어디서 살든 애환이 있기 마련이다. 남의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자매들을 보며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열린사회에서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정겨운 이웃과 사랑하며 사는 내 평생이 자매들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훨씬 보람있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문득 그 오래된 자매의 정과 사랑이 그리울 때면 마음이 조금 허전하고 외롭기도 하다. 정혜가 잘 있는지 또 보이스톡으로 목소리라도 들어야겠다.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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