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신발

2020.02.19 22:43

윤근택 조회 수:9

‘간디’의 신발

윤근택

가죽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나. 103동 필로티(pilotis) 벤치 옆에 놓인 담뱃재떨이와 보도블록 틈새에 낀 담배꽁초를, 청소하다가 깜박 빠뜨렸다기에, 도로 가서 줍다가 생긴 일이다. 마침 집게와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지 않고, 그야말로 비무장으로(?) 나섰다가 일이 생겼다. 털 내피(內皮)가 된 가죽장갑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낀 채 담배꽁초를 줍자니 우둔해서 오른짝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해서, 왔던 길을 수차례 되돌아가서 찾아보았건만, 바람에 데굴데굴 굴러갔는지, 끝끝내 가죽장갑 한 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

그 가죽장갑의 내력이다. 어느 낯모르는 애독자가 몇 종류의 월동의복과 함께 택배로 선물로 부쳐준 것이다. 그는 자기 친정부친도 예전에 어느 회사 경비원으로 지내셨다며, 경비원의 애환을 알아 겨우내 손 얼세라, 부쳤다고 나중에 e메일을 보내온 바 있다. 그러니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선물인가? 남의 고마운 선물을 그처럼 소홀히 다뤘으니... . 이제 제 짝을 잃은 왼짝 가죽장갑은 빛을 잃고 말았다.

이 일을 당하고 보니, 문득 인도의 간디가 떠오를 게 뭐람? 너무도 유명한 ‘간디의 신발 한짝’ 일화(逸話).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급히 올라탔다. 그 순간 그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기차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에 그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잃어버린그 신발 옆에 던졌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놀라 묻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 짝만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발 한 켤레를 제대로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당시에는 인도에서 신발은 고가품(高價品)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순간적 판단을 한 간디. 그의 그릇이 얼마나 컸던지 이 한 사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하더라도, 나는 외톨박이가 된 가죽장갑을, 간디처럼 아파트 화단에 마저 던져버릴 수도 없다. 부득이 농사나 허드렛일을 할 적에 재활용할밖에. 그 애독자한테는 두고두고 미안해하겠지만.

내 생각은 어느새 ‘짝짝이’가 얼마나 불편하며 얼마나 보기에도 아니 좋은지에까지 닿고말았다. 농사꾼이기도 한 나는, 여러 켤레의 장화(長靴)도 지녔는데, 더러는 치수와 ‘뒤축 닳음’이 다른 걸 억지로 짝을 삼아 신을 적도 있다. 한 짝이 ‘펑크’나거나 할 적에 주로 그리한다. 한마디로 걸음이 불편하다. 우리네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발만이 아니다. 담배도 늘 즐겨 태우는 ‘Simple classic’이 아니면, 혀가 금세 알게 된다. 짝짝이 신발을 신고 걸을 적마다 소아마비 등으로 불편한 이들의 고충을 생각해왔던 것도 사실. 우리가 즐겨 쓰는 말, “ 아픈 다리는 들수록 낫다.”도 겹쳐지고... .

내 생각은, 외톨이가 된 가죽장갑으로 말미암아 한층 비약(飛躍)하여,‘비익조(比翼鳥)’에까지 닿고 만다. 왼 날개 하나, 오른 날개 하나 각각 지녔다는 전설상의 새. 둘은 상하(上下) 겹쳐한 몸체를 이뤄 날아야 정상적으로 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왼 날개든 오른 날개든 한 쪽만 지닌 새나 비행기를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선풍기의 경우도 날개 하나가 부러지면, 균형을 잃어 소리만 요란했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지낸다.

요컨대, 짝짝이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보수니 진보니, 좌익이니 우익이니 내 편 네 편 하며 편 갈라서 아옹다옹 할 일이 없다. 가죽장갑 한 짝을 잃은 나는, 각종 운동회에 ‘짝짝이 신발 신고 달리기’를 넣어보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이르렀다. 한 발에는 고무신을 신고 한 발에는 장화를 신고 달리기를 해보든가, 한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 한 발에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해보든가. 그러면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될 터이고, ‘온전한 짝’의 소중함도 알게 될 터이고, 운동경기에 참여한 이들과 관중들에게도 함께 웃음을 선사할 것도 같고.

이참에 국회법도 확 뜯어고치면 어떨까도 싶다. 그들로 하여금 양복저고리에 ‘금배지’를 달게 하는 대신, 등원(登院) 때에는 반드시 짝짝이 신발을 신도록 한다면? 그러면 여야가 서로 더는 트집 잡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일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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