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멋과 필체

2020.02.21 13:07

한성덕 조회 수:1

한글의 멋과 필체

                                                                                   한성덕

 

 

 

 나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왕의 역사를 논할만한 자질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세종대왕을 말할 때는 ‘어질고 인자한 임금’이라고 한마디 한다. 오로지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셨으니, 이보다 더 백성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임금이 어디 있겠는가? 5백여 년 전의 글자지만, 첨단과학시대에도 언어학에 손색이 없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로버트 램지’ 교수의 '한글예찬론'은 한국인을 뺨친다. ‘세계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글자는 없다’며 3가지를 극찬했다.  

  첫째, 한글의 과학성이다. 로버트 램지 교수는, ‘한글은 소리와 글이 서로 체계적인 연계성을 지닌 과학적인 문자요, 어느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성취이자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했다. 한글은, 상형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문자다. 이를테면, 자음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고, 모음은 자연의 실체,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의 모습을 담아냈다. 세종대왕의 재치와 창의력이 돋보이는데, 현대과학이 컴퓨터를 만들 거라고 예상하셨나? 자판기에서 왼손으로는 자음 14자를, 오른손으로는 모음 10자를 치도록 구분해 놓았으니 말이다.

  둘째, 새로운 계통의 독창적인 문자다. 세계글자의 뿌리는 크게 세 갈래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수메르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의 갑골문자가 그것이다. 허나 한글은, 그런 갈래와도 전혀 다른 문자로 독립적 특성을 지녔다. 대부분의 글자들은 구체적인 그림으로부터 출발해 단순화, 상징화, 추상화, 양식화, 개념화 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글은, 처음부터 소리글자의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면서도 의미까지 아우르는 아주 독특한 체계를 이룬다.

  셋째, 최소주의의 경제적인 글자다. 한글이 단순한 요소의 생성과 조합으로 만들어졌지만, 끝없는 말과 글의 전개가 가능한 기하학적 체계로 이어진다. 이 단순한 방식은 꽤 편리하고, 무한에 가까운 형태를 만들어감으로써 한글의 절대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거야말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기술적 합리성과 함께 경제원칙에 직결된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시대에도 12개의 자판만으로 무한에 가까운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했다. 램지 교수는, ‘세계 어느 글에서도 한글처럼 만든 사람, 목적, 제작원리가 뚜렷한 글자는 없다’는 글을 남겼다.

  램지 교수의 한글찬사는 끝없이 쏟아졌지만 간략하게 적어보았다. 그의 글을 접하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와, 그 경이로움에 탄복했다.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과 글이 있다. 글자 하나하나를 엮으면 문장이 된다. 이말저말을 하다보면 소통하고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게 참으로 묘하고 신기했다. 한글을 가졌다는 자긍심만으로도 우쭐할 수 있지 않은가?

  더욱이, 한글에서 사람의 성향에 따라 필체가 나온다니 흥미롭다. 필적 전문가(구본진)의 말이다. 살인범과 조직폭력배 글씨는 규칙성이 떨어지고, 필체가 충동적이다. 독립운동가는 선이 곧고 각지며 행간이 넓다. 친일파는 글씨가 둥글고 행간이 거의 없어 배려심이 부족한 느낌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글씨는 과시적인 성향이 강하다.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들의 글씨에선 왜 돈을 모으는지 알 수 있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의 글씨에서 ‘ㅁ’자 밑 부분이 닫혀있다. 절약, 완성, 빈틈이 없다는 것이요, 모음의 세로획이 유난히 길어 인내심이 강하다는 걸 보여준다. 성공한 연예인 대부분은, 첫 글자가 매우 크고 마지막 부분을 죽 내리 긋는다. 우리나라 배우로는 송강호 정우영 김혜수가 대표적이고, 외국인 배우로는 메린린 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그렇다.

 

  내 필체는 어떨까? 예식장 하객들의 이름에서 다양한 성향의 글씨체를 보게 된다. 그 많은 이름들 중 유독 내 이름이 크고 글씨체가 돋보인다. 사람이 작으니까 글씨라도 크게 써서 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나? 아니면 톡톡 튀는 성향을 가졌다는 건가? 오늘 따라 세종임금이 더 위대하게 보이고, 순 한글의 멋진 이름 송이와 샛별, 두 딸의 이름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2020. 2.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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