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매

2020.02.23 18:05

전용창 조회 수:3

중매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잘 되면 술이 석 잔이요, 못 되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게 중매다. 그런 중매를 6번이나 성사시켰으니 자화자찬할 만하다. 친구가 셋이고, 직장 후배가 둘, 그리고 올해 2월 초에 결혼식을 올린 친구 아들이 여섯 번째다. 전체가 7명이었는데 한 명은 마지막에 안 됐다. 나는 양쪽이 다 조건이 좋아서 성사될 줄 알았는데 1년 남짓 교제를 하고도 틀어졌다. 여자는 서울에 직장이 있고, 남자는 대전에 있으니 중간 지점인 대전에 여러 번 다녀왔다.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 낯선 상대를 맺어준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중매가 들어오면 반신반의로 듣지만 뒤돌아서면 서로가 잘 살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생각하며 배필을 찾아본다. 물론 성사되면 기쁘지만 잘 안되면 양쪽에 다 민망하다. 그런데도 나는 정에 약한가 보다. 이번에도 대학 친구가 통 사정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2란성 쌍둥이를 두고 있다. 동갑내기 남매는 작년에 서른일곱 살이었는데 하나도 결혼을 하지 못하여 걱정이 크다고 했다. 아들은 공직에 있고 딸은 프리랜서 번역사다. 처음에는 딸을 먼저 출가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지난해부터는 되는대로 보내려고 생각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 뒤에 친구는 아들 연주회를 동영상으로 보내주었다. 현악 4중주 연주였는데 남자는 친구 아들 혼자였다. 그날 아들은 솔로 연주도 했는데 감정을 넣으며 썩 잘했다. 공직생활로 바쁠 텐데 시간을 쪼개어 취미활동까지 하니 남달라 보였다. 아들 ‘우진’이는 교회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한 사람 추천받아 운을 띄웠으나 서로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만두었고, 두 번째로 동생에게 부탁하니 얼마 뒤에 소식이 왔다. 동생이 다니는 교회에 믿음이 좋은 참한 규수가 있다며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선화학교(장애인 전문대학 과정)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전액 국비인 영국 유학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하면 선을 못 보고 떨어지면 선을 본다며 조금 뒤에 답을 준다고 했다. 내 평생 아무런 이유 없이 떨어지기를 빌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의 바람은 현실로 나타나, 둘은 만났고 서로 교감이 통하여 결혼까지 골인했다. 결혼식날에는 날씨도 포근하여 하객들이 많았고, 멀리서 친구들도 많이 와서 축하해주었다. 신랑 신부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오랜 나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참 추웠지. 신부를 평생 함께 하겠냐는 목사님의 물음에 교회가 떠나라고 “예‘라고 대답했었지.

 

  결혼이 성사된다 해도 마음이 꼭 편한 것만도 아니다. 중신한 한 친구는 술에 취해 집에 가면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막내인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누나들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니 사는 게 힘들었다. 혹여 싸움이 격해져서 집기라도 던지면 부인은 중매한 나를 호출하곤 했다. 그러면 그 친구를 달래며 정신을 차리게 하고 집에 오면 그날 밤은 잠을 설쳤다. 또 다른 친구는 어린이날 결혼을 했는데 매년 어린이날 점심은 꼭 함께 식사하자 하니 고맙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된다. 후배들은 잘 살고 있는지 연락이 없다. 아내도 한 사람 중매했는데 막내 매형의 큰아들이다. 명절 때마다, 기일 때마다 다녀가련만 지척에 사는 외숙모한테 한 번도 문안을 오지 않는다. 인사를 시키지 않은 매형과 누나에게도 서운한 마음은 있지만, 나이가 50이 넘은 조카가 더 밉다. 아내도 내심 서운하지 싶다.

 

 이 분야에 나보다 훌륭하신 분이 계신다. 한때 수필 공부를 같이한 연로하신 K 문우님이신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지난 달 명절 무렵에 찾아가서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문우님께 여쭤보았다.

  “작년에 주례 1,000쌍을 채우셨어요?

 “아니, 몇 쌍 못했어.

 “지금까지 총 967쌍이야. 1,000쌍을 채우고 그만두어야겠는데 그게 잘 안 되네.

하시며 비망록을 꺼내 놓으셨다. 비망록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순번, 결혼 일자, 장소, 주례사 내용 요약, 신랑 신부 이름, 비고란에는 그날 특이사항을 기록해 놓으셨다.

 “이것만 보면 그날 상황을 다 알 수 있지.

하셧다. 아마도 특이사항을 보시면 그날의 추억이 떠오르나보다.

 “요즈음에는 결혼식도 주례 없이 장난같이 하고, 서로가 토라지면 장난같이 헤어지나 봐.

 문우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문우님 집에 가면 느끼는 게 있다. 팔순이 지난 노부부가 지금까지 서로 존칭을 쓰신다.

 “여보, 전 선생 오셨어요. 무슨 차를 드실지 물어봐요.

 “네, 잘 알았어요. 전 선생님 무슨 차 드시겠어요?

 “사모님 편안하셨어요? 커피 말고 다 좋아요.

 문우님께서 주례를 선 신랑 신부는 모두 다 잘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서로 존경을 하며 살아가는 비결을 주례사로 남겼으리라 생각하니 믿음직했다. 28일 결혼식을 올린 친구 아들 부부도 존경하는 선배님처럼 아들딸도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빈다.

                                                        (202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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