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 할 걸

2020.04.03 21:16

한일신 조회 수:2

있을 때 잘할 걸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한일신 

 

 

 

  집에 몇 개의 난 화분이 있다. 벌써 10여 년이 넘도록 가꾸고 있는데 고맙게도 잘 자란다. 동양란이라 꽃은 작고 수수하지만 은은한 향이 해마다 나를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줬다. 이러다 보니 난 기르기 쉽다는 생각에 올해는 베란다에서 겨울나기를 해보려고 일명 비닐하우스를 두 겹으로 치고 그 안에 들여놓았다.

 

  혹여 냉해를 입을까 봐 수시로 살피다가 베란다 수도가 얼던 날, 부랴부랴 거실로 들여놓았다. 처음엔 잘 모르겠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녹색을 잃어갔다. 온갖 정성을 들이며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려보았지만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넘어지고 나서 돌아보듯, 갈색으로 변해버린 난을 보고서야 경솔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어찌나 후회되는지.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고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줄 것 같던 그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말 한마디 없이 멀리 떠나가 버렸다.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소리 없는 메아리만 허공에 퍼질 뿐 그이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안 갈 것 같던 추위도 물러가고 그 틈을 놓칠세라 언 땅을 헤집고 나온 새싹과 하얗고 노란 꽃이 피고 지는 것도 잠깐이다. 이렇듯 세상사 만나고 헤어지는 것 또한 뜻대로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얼마 전 일이다. 살면서 신세를 진 분이 있다. 가끔 시간 나면 그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배터리를 충전하듯 지친 삶에 힘과 용기를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좀 뵙고 싶다고 했더니 건강이 안 좋다며 좋아지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다가 마침 그분이 사는 아파트에 갈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한 달 전쯤 세상을 뜨셨단다. 아뿔싸, 한 발 늦었구나! 순간 그분의 인자하고 평온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진작 한 번 찾아뵙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또 한 분은 대학병원에서 실습하다가 우연히 만났다. 직장에 다닐 때 뭐든지 물어보면 척척 알려줘서 살아가기가 수월했다. 퇴직 후에도 이런 인연으로 가끔 안부 전화를 하고 지냈다. 한데 그런 분이 이렇게 큰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퇴원하여 두어 번 집에 찾아간 일이 있는데 그분은 느닷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집이 어디냐는 둥, 몇 층이냐는 둥 하면서 궁금해했다. 아마도 우리 집에 오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서 물었더니 그렇단다. 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사모님과 함께 집으로 한 번 모시겠다고 했더니 고맙다며 아주 좋아하셨다. 그때 바로 모셨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전화를 했더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사모님이 받았는데 2주 전에 세상을 뜨셨단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얼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멍해서 끊긴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더니 뚜- - 신호음이 귓전을 울렸다. 그날의 허망함과 아쉬움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시지 않고 생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는 말이 있다. 일이 다 끝나 내가 얻은 깨달음이 그 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때야 비로소 알게 되니 어쩌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

 

  3월도 가고 4월이 왔다. 개나리, 목련, 벚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도 바이러스가 우리네 삶을 무섭게 옥죈 탓에 봄을 마음껏 즐길 수도 없다. 내 소중한 사람들도 멀리 떠나고 나서야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니 이를 어쩌랴! 사는 동안 후회 없이 살 수야 없겠지만 자주 찾아본다거나 안부 전화라도 하면서 지낸다면 후회가 좀 덜 될까? 오늘따라 오승근의 히트곡 있을 때 잘해가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2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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