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二人)
2008.09.07 17:04
이인(二人)
 이 월란
등짝 가득 태양 문신을 새긴 구리빛 사내의 눈두덩이 벌겋다 푸른 별빛이 쏟아지는 사각의 링, 골리앗의 황금벨트가 어깨 위에 걸쳐지고 관중들은 티켓을 버리고 일어난다 채널이 바뀌면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거울 앞에서 웃고 있다 또 채널이 바뀌면 금발의 흑인여자가 머루빛 눈동자에서 눈물을 떨구고 있다
나의 남자는 늘 내 안에서 리모트컨트롤을 자판처럼 두들긴다 서로의 유압장치로 원격조정 해온 세월은 어느새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뀌었다 또 채널이 바뀌기 전에 난 모니터로 돌아온다 나의 온몸엔 이어폰이 꽂혀 있고 그제서야 나의 화면이 움직인다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 액정 스크린 속에서 난 물컹댄다 가끔 눈이 젖어 오는 것은 평생의 묵비권으로 나의 생명이 안도하고 있다는 사실
방음장치가 잘 되어 있는 나의 집을 사랑한다 방음장치를 타고난 인간의 몸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사랑한다 차음벽 속에서 유난을 떨고 있는 오늘의 자유를 바람도 지쳐 쓰러진 멀뚱한 날 저민 고요가 늑골 아래 차오른다 블라인드 사이로 하늘가에 빗금친 은익 자국은 페이퍼 컷처럼 가슴을 또 비지직 긁었고 묵비의 전파로 채널이 또 바뀌었다
 200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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