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는 말
2008.09.09 06:11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니’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살까? 또한 그 ‘아니’라는 말을 얼마나 정당한 자리에서, 꼭 해야 할 상황에서 하고 있을까.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 ‘아빠’이다. 그 다음 배우는 말이 ‘아니’가 아닐는지. 아무 말도 못하는 아기들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며 ‘아니’를 연발한다. 그 모습을 보고 어른들은 귀여워서 웃음꽃을 피운다. 만약 큰 아이가 어른들의 말에 ‘아니’라고 말 하면 왜 순종하지 않느냐고 나무라고 야단칠 것이지만 어린 아기들의 모습에서는 사랑이 가득히 담긴 모습으로 예뻐하며 그 모습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조금 자라면 아이들은 부모들로부터 ‘예’라고 말해야 함을 배우기 시작한다. 웃어른들의 말에 다소곳이 ‘예’를 잘 하는 것이 곧 예절바르고 착한 모습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잘못된 어른들 때문에 ‘유아 성추행’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유치원에서 어떻게 성추행을 피할 것인가 교육하면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말이 ‘아니’, ‘싫어요’이다. 어른들이 나쁜 마음을 품고 가까이 다가오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간에, 분명한 어조로 ‘싫어요’, 또는 ‘그건 아니에요’에서부터 잘못된 사람들의 접근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라는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는 교육과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용기를 가르치는 모순을 우리 어린이들은 잘 구분할 수 있을까?
‘예’라는 말이 참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를 잘 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칭하고 그를 칭찬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이다. 부드럽고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의견에 ‘예’라고 부드럽게 응하고, 좀 바르지 않아도 좋은 관계를 위하여 아름다운 말로 ‘예’로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모두가 좋아한다.
직장에서도 상사의 조금은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을 들었을 때에라도 그저 웃음으로 ‘예’하고 넘어가는 사람은 직장생활이 순조롭고 평안하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많이 잘못된 일이 아니면 그저 ‘그래, 그러자’라고 넘어가는 친구를 누구나 좋아한다. 사사건건 따지고 걸고넘어지는 사람보다 훨씬 쉽고 대하기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아니’라는 말은 부정적인 사람, 성격이 삐뚤어진 사람이 하는 말로 생각하기 쉽다.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은 힘들게 생활해야 하고, 사회에서도 조금은 문제아로 전략하기 일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예’는 언제나 좋은 것이고, ‘아니’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아니’를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당하게 ‘아니’를 외치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때로는 ‘아니’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하며 꼭 필요한 언어라는 것 을 절실히 느낄 때가 많다.
어려서부터 나의 어머니는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바탕으로 우리를 가르쳤다.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고 하시며 언제나 순종하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며 가르친 어머니셨다. 그 어머니는 친히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어른들에게 어떠한 경우, 그 어느 상황에서도 언제나 순종하며 ‘아니’라는 단어는 감히 상상도 해 본적이 없이 살아오셨던 어머니시다. 그러한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치며 어머니처럼 살기를 바라셨는데 어디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게 둬둘까.
그 어머니의 교육덕분인지 속에서 분이 솟아올라도 쉬 아니라는 말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때로는 ‘절대로 아니’라고 소리 높이기도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윗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 분명‘아니’라고 해야 함에도 혹시 그 한마디 때문에 내가 나중에 더 큰 불이익을 당할까봐 숨을 죽이고 있을 때도 있다. ‘아님’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비겁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많은 사람들, 특히 한인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한 이름 ‘조승희’. 그 청년은 남에게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어느 글에서 읽었다. 교회에서 아주 어린 아이들이 그를 놀려서 가만히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며 그냥 있어서 담임교역자가 “그러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소리라도 지르렴,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해.”하고 말해도 그냥 웃기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는 늘 문제를 일으키고 부모와 가족에게 어려움을 주어도 나와서 단 한사람에게도, 심지어 아주 어린 초등학생들이 놀리는 자리에서도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내온 그. 그는 ‘아니’라는 말을 입으로 하는 대신 가슴에다 그 ‘아니’를 가득히 묻어두었다. 내 뱉었으면 그냥 지나갔을 일들을 가슴에 묻어 두었던 그 결과는 너무 엄청나게, 이제 다시는 생기지 말아야 할 큰 사건으로 자리하고 말았다. 차라리 일찍부터 아니라는 말을 배워서 좀 편안히, 자연스럽게 누구에게나 아닐 때는 당당히 ‘아니’라고 말하였더라면 그렇게 큰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오래전 한국에서는 늘 남편에게 매 맞고 살아온 한 아내가 남편을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이 전국을 놀라게 했다. 언제나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그러지 마세요, 이러면 안됩니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이 그냥 때리면 맞고 입 다물고 죽은 듯이 지내다가 결국 그녀의 화가 도를 넘자 남편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일까지 가고만 것이다.
‘아니’라는 말을 잘 할 줄 아는 것은 정말 지혜로운 것이다. 아무 때나 ‘아니’라는 말을 하여 다른 이들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문제이지만 적절한 곳에서, 적당한 시기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아주 용감한 사람이며 지혜로운 사람이다.
내가 잘 아는 어느 부인 역시 남편의 심한 언어 학대를 그냥 견디며 살아왔다. 성품이 유난히 고운 그녀는 그러한 남편의 언어학대에도 단 한번도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참고 묵묵히 지내오다가 어느 날 남편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조용히 남편에게 말하였단다. “여보, 지금 당신은 잘못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시면 나나 아이에게 마음에 큰 상처만 더할 뿐 조금도 도움이 되지를 않는답니다. 그러니 조금 자제하여주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조용히 말을 하자 남편이 깜짝 놀라서 단 한 번도 대꾸를 하지 않던 부인의 말에 조용해지며 그 다음부터는 조심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였다.
‘예’를 잘 하는 것도 분명 어렵다. 그러나 ‘아니’를 잘 할 수 있는 것이 더 어렵다.
‘예’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도 잘 하지 않을까. 상대의 의견에 진정한 마음으로 동조하며 그 진의를 잘 파악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예’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꼭 아니라는 말을 해야 할 상황에서 겸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아니’를 말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도리어 온전히 상대방의 말에, 그 의견에 따듯한 마음으로 ‘예’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전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아님을 보여주고 거절해야 할 상황에서도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지는 않을까.
평소에 잘 순종하는 사람이, 언제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다른 이들의 말이나 행동에 머리 끄덕이며 동조할 줄 알고 상대방의 말을 잘 인정해주는 사람, 그러나 정말 아닐 때는 조용한 말투로, 그러나 단호하게, 예의를 갖추어서 하는 ‘아닙니다’는 그를 한껏 높여주고 그의 인격을 모두에게 인정받게 하는 행동이다.
‘뱀같이 지혜롭게, 비둘기같이 순결하게’라는 성경구절이 있다. 때로는 사실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어도 적당히 맞추어서 그저 편안히 ‘예’를 잘 하면서 순간순간을 모면하면서 잘 넘어가는 사람은 지혜롭다. 세상을 살기에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결해야하는 부분에서는 때로는 나에게 좀 불이익이 온다 하더라도 단호히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순수함이 필요한 세상이다. 자신의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아니’를 못하는 사람은 용기 없는 사람이라 이른다. 더하여 그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떳떳이 ‘아나’라는 한 마디 못하는 그를 좋은 사람이라, 훌륭한 사람이라 이르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대하여도 언제나 가만히 있으면 세상은 그를 계속하여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이다. 무조건 참는 것, 그것만이 대수는 결코 아니다.
지혜롭게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 꼭 필요한 것이며 또한 참 어렵지만 세상을 이기는 또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8/2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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