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 석정희

2006.01.10 02:49

석정희 조회 수:107 추천:3

벼랑 끝 / 석정희


   그녀가 나를 만나자고 한곳은 산타모니카 해변의 벼랑이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는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때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바로 뛰어내리기만 했어도 오늘 같은 날 구태여 나를 만나 이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울먹이기부터 하는 걸 보면 그녀에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굴지의 모 업체에서 엔지니어로 있는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까지 두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금슬이 좋은 부부로 부각돼 있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누구나 다 그랬듯이 어렸을 때 꿈도 많고 욕심도 많았었다고 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해오며 몸을 사리지 않고 삶의 전선에서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뛰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한지 십년도 지나고 이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와서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이 벼랑 끝에 와서 서성거리고 있어야 했을까.  얼마나 크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선뜻 목숨까지도 내던지고 싶은 생각이 났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녀가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은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그녀가 한참 잘 나가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와 결혼할 것을 마음으로 결정할 때는 그녀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키워왔던 웬만한 목표나 계획 같은 것을 포기하거나 다소 수정을 가해도 후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었다고 했다.  그녀는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상세히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견딜 수 없는 어떤 중증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걸핏하면 손찌검을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통을 얻어맞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보면 병원의 침대에 누워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심한 두통 증세는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손찌검을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그것도 그녀가 가려던 방향을 바꿔놓게까지 했던 바로 그 사람이.  그와의 만남으로 인해 다니던 학교도 중단하고 어린 나이에 가정주부로 변신을 하게 했던 바로 그 사람.  그녀는 그와의 결혼을 하기 위해 모든 계획에 수정, 아니 포기를 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그녀에게 후회하지 않아도 될  결정인지에 대한 갈등도 있었지만 그녀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며 어깨를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잘 나갈 수 있던 길을 막아놓고 데려다가 겨우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니.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위기 상황에 처해있을 때 자기 보호도 하며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주먹을 쓴다거나 불의 앞에서 보여주는 의로운 행동이라면 멋있게 보여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별것도 아닌 의견의 차이나 자기 자신만의 독선에 따라주지 않을 때 휘두르는 주먹은 비겁한 행위가 아닐까.  한때 “너 아니면 나는 살 수가 없다.”며 사랑이라는 말을 남발하던 그의 모습이 역겹기도 하다며 눈가를 적시고 있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해줄 말을 찾을 수가 없어 묵묵히 그녀의 등이나 두드려 주는 게 고작이었다.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자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대개가 피해망상이나 열등의식에 사로잡혀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내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같은걸 가지고 있는 경우를 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논리적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상대방을 이론적으로 설득시킬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언성은 높아지고 마지막에는 주먹을 휘두르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힘으로라도 자기 내세우기를 고집하며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어지는 것일까.  그녀는 이러한 치욕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자기 자신을 한탄하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랑이 뭐고, 인생이 뭐고, 이런 게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젊은 날의 꿈은 고작 한 남자의 아내며 한 아이의 어미로서 조롱 안에 갇힌 한 마리의 새로 안주를 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더라고도 했다.  맹목적인 희생이 아내로서, 어미로서의 본분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다 남편의 화풀이 상대역 노릇이라도 맡아야 한다면 가끔은 그런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이제 일상화되어 가는 것 같다며 앞으로 살아갈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녀의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보니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나고 나면 허망하기만 한 게 인생이라는 걸까.  그러면서도 한 순간에 의도적으로 마감을 할 수도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걸까.  산다는 것은 지녀오던 꿈을 어려움 없이 실현시키는 실습장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현실은 이제까지 꿔오던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무엇이 되고 어떻게 살며 남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는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의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깨우치게 된다.  그녀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겠지만 그녀는 이런 일로 인하여 더 이상 비관을 하거나 자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 이역의 하늘 아래, 태평양 물결이 넘실대고 있는 벼랑의 끝에 와서 서성거리고 있어야 했을까.  바다 저쪽 건너편에 있는 그리운 안색들을 되새겨 보려는 마음에서였을까.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서였을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런 것들이 한껏 사치스러운 생각이었을 게다.  벼랑 밑으로 뛰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한마디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터인데 손찌검이라니…….  
   뺨을 맞으면서, 머리통을 구타당하면서, 졸도까지 해가면서도 일말의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그녀의 말 못할 아픔.  그녀의 속내를 알지도 못하면서 가장 행복한 가정, 잉꼬 같은 부부, 모범적이고 가장 화목한 가정이라고 칭찬을 들으며 더러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이럴 때의 마음은 더욱 아팠고 부끄럽기도 했다는 그녀의 슬픔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요즈음 ‘성격상의 차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헤어지는 부부들도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정’이라는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지키기 위해 아픔을 견뎌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으로나마 달래주려 했던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흔히들 말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도 생각해 본다.  기쁨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에게도 꿈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해 보며 이를 위해 나는 또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도 생각해 본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