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처럼 / 석정희

2006.01.10 02:50

석정희 조회 수:95 추천:3

당신처럼 / 석정희


   은행잎.  더러는 노란 색깔을 띄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보다 약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확의 계절에 접어들면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허구 헌 날, 덧없이 시간만을 축내며 살아온 것을 이제야 뉘우치게 됩니다.  
   실은 지금도 그렇고 처음부터도 그랬지만 나는 당신처럼 넓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 안에 사랑이라는 것도 담아보고 베푸는 마음과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존경하며 배려할 줄도 아는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두고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단 한번만이라도 나름대로의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 ‘너와 나’, ‘나와 이웃’ 간에 화합이라는 것이 조화를 이루어 평화와 안정이라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데 지나온 세월들을 되돌아보면 특별하게 짜릿하고 뭉클하게 떠오르는 추억 같은 것은 하나도  없네요.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삶만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에게 쏟아주며 안아주고 다독여 준 애틋한 당신의 사랑에 대한 나의 응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콩 한 알을 놓고도 반씩 나누려는 이웃 사랑,  이런 정서가 나에게도 있었을까요.  나를 대신하여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의 손톱만큼이라도 닮아보려는 생각 같은 것이 나에게도 있었을까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나는 얼마나 뻔뻔스러운 사람이었었나 하고 뉘우쳐지고 있네요.  이제야 말입니다.  늦게나마 이런 깨달음이 생겼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마음이 이제서라도 생겼으니 망정이지 죽을 때까지도 이렇게만 살다간다면 당신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를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파지네요.  
   이제까지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본위의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찮은 예로, 한모금의 물도 내가 우선이었습니다.  당신의 목마름 같은 것은 내 소관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오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당신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고 나에게는 ‘콩 반쪽’의 정서 같은 것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내 어깨가 뻣뻣해지는 약간의 불편마저도 스스로 간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어깨나 허리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불편을 덜기 위해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氣)를 모두 모아 나에게만 쏟아 부어주기만을 바랬습니다.  땀 흘리며 애를 쓰고 있는 당신의 힘든 모습 같은 것에는 내가 신경을 쓸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맛있는 음식을 나 혼자서 홀라당 입에 넣으면서도 당신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도 해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는 당장 이루어져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무슨 필요에 대하여는 누구이든 나를 위해 즉시즉시 이루어 주어야 했지 기다림 같은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이제부터라도 삶의 자세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죄책감 같은 것이 나의 마음을 조여오고 있네요.  지금부터라도 당신에게 무엇이던 간에 베풀고 싶어도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짧을 것 같네요.  이러한 나에 대하여 불평은 고사하고 나를 고분고분 따라만 주고 다독여주기만 해온 당신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철면피, 욕심쟁이, 이기주의자, 폭군.  이것이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이력서입니다.  남이 알아주던 말 던 스스로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겉과 속이 그대로 묘사되고 있는 나의 실제 모습입니다.  이런 나의 모습에 당신은 그 동안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의 참모습에 대하여 당신 혼자만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나의 모습을 알아챘다면 이러한 나를 얼마나 비웃게 될까요.  나는 어디에 숨어야 할지도 몰라 허둥대다가 스스로 파멸의 지경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니 두렵기까지 합니다.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그간에 있었던 당신의 충고나 고충에 대한 설명 같은 것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같잖은 투정이요 불만투성이의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짓거리 정도로만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을 삼십년에 되도록 지긋이 바라다만 봐 주며 참고 견뎌온 당신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동안 꼿꼿이 쳐들고 있던 고개가 삼십년 만에 숙여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숙여진 고개가 앞으로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참에 생각을 좀 해가며 마음 정돈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나는 당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당신과 함께 단풍이 짙어져가는 계곡을 향하여 떠나보고 싶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