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이 웃는다

                                        조옥동

더위가 깨지고 하늘도 지붕도 깨졌다
영원한 무표정의 얼굴
침묵조차 깨트리고 무슨 간절함
파열하여 첨탑의 종소리 끌며 퍼져 가는 가
날카로운 입술 푸른 피를 흘린다

투명한 가슴에 숨어 있던 낮과 밤의
조밀한 치열이 들떠 흔들리고 잇몸사이로
바깥세상 바람소리 새어 드는데
매끈했던 보호막은 허세를 꾸겨 들고
창 너머 풍경을 주름 잡아
끝 모를 허공 창틀에 걸어 놓았다

절망으로 쌓은 단절의 벽
한 번쯤 그리 깨지면 귀 구멍 수 없이 뚫려
내 밖의 소리 들리게 되고
마음의 상처 꿰매던 바늘로 이 세상 흠집 곱게 누벼 접는
눈 속 모세혈관 타고 내리는 밤하늘 별빛도
눈시울 적시며 가슴으로 실핏줄 긋겠지

그 앞을 지나며
꼭 눌린 마개를 열어 무의식의 病 쏟아 버린 후
파르르 바삭하게 깨어지고 싶다
유리창 너머 스치는 것마다 깨졌다가 되살아 나 듯
아름답게 깨어지는 연습을 한다

햇살이 물살 진 얼굴에 볼우물 하나 깊게 패여
깨진 유리창이 웃는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59 가슴을 찌르는 묵언 file 김용휴 2006.06.22 110
2258 능금 -이브 2- 이윤홍 2006.09.19 64
2257 안경라 2006.09.19 20
2256 적막 오영근 2006.09.19 56
2255 우리 집 막둥이 정찬열 2006.09.17 171
2254 보랏빛 고구마 백선영 2006.09.16 82
2253 흔적(痕迹) 정용진 2006.09.15 34
» 깨진 유리창이 웃는다 ---- <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6년 9-10월호 조만연.조옥동 2006.09.16 193
2251 까치밥 정용진 2006.09.16 38
2250 비 오는 날 오영근 2006.11.20 124
2249 나뭇잎 하나 -이브 3- 이윤홍 2006.09.19 77
2248 환각 이기윤 2006.07.28 50
2247 비에 젖은 시 정문선 2006.07.28 328
2246 사랑한다는 것은 유은자 2006.09.01 35
2245 청솔연가 유은자 2006.07.27 66
2244 곤보(困步) 유성룡 2006.07.27 55
2243 중국산 가구 윤석훈 2006.07.27 174
2242 몇 만년의 걸음 유봉희 2006.06.21 141
2241 [크리스천투데이 신년시]'채우고 누리려고만 하지 않게' 석정희 2015.01.04 89
2240 홍시 만들기 유봉희 2006.06.21 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