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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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미꽃 위에 이슬 (499장)

2010.09.17 14:27

그레이스 조회 수:3000 추천:19


* 저 장미꽃 위에 이슬 *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2.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울던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후렴]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찬송가 499장)


이 찬송은 오스틴 마일즈가 작사 작곡한 찬송으로 요한복음 20장의 내용이 배경이 되어 있다. 즉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예수님의 무덤을 봉했던 돌이 옮겨졌고 예수님의 시체는 간 곳이 없어진 것을 알고 무덤 밖에서 울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 대화한 내용이 이 찬송의 줄거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찬송을 낳게 한 직접적인 동기는 아담 가이벨 박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가이벨 박사의 슬픈 사연이 이 찬송을 낳게 한 또 하나의 동기가 되었으므로 우선 그것부터 살펴 보고자 한다.

가이벨 박사는 1885년 독일에서 태어나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런데 그는 8세에 괴상한 안질을 앓아 완전 실명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어렸을 때 받은 교육으로 찬송곡과 성가곡을 많이 작곡하였고, 가이벨 음악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미국의 종교 음악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화니 크로스비나 죠지 매티슨 목사처럼 비록 육신의 눈은 어두웠으나 심령의 눈이 밝아져 모든 것을 신앙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가정에 또 하나의 비극이 중첩되었으니 그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사위가 나가는 제철회사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공장의 일부가 부서지고 그의 사위도 그만 그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이벨 박사는 실신할 지경이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위는 신앙이 깊은 그리스도인이고 매우 매력적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인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사고가 났으니 과연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더우기 가이벨 박사는 장님으로 세상에서 당해야 할 고통은 다 당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자기가 고통과 번민을 당해서 하나님께 유익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시련을 신앙으로 승리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써 보았으나 노력하면 할수록 심령의 아품은 더해가는 것이었다.

가이벨 박사는 참다 못하여 위안을 얻기 위해 그와 가장 가까운 동료이며, 여기 소개하는 찬송의 작시 작곡자인 오스틴 마일즈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마일즈에게 자기의 아픈 심정을 다 쏟아 놓았다.

그리고는 이와 같은 비통한 심정이 위로받을 만한 찬송시를 하나 써줄 것을 요청했고, 작곡은 가이벨 박사가 하기로 했다.
겸하여 가이벨 박사는 감동적이어야 하고 매절마다 부드러운 감정이 깃들게 해 주고 소망을 잃은 자에게 소망을 주며 고달픈 자에게 ‘쉬임’을 줄 수 있고 임종의 침상에 누워있는 자에게 ‘부드러운 베게’와 같은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날 밤 가이벨 박사는 침상에 누워 이 모든 불행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써 보았으나 사랑하는 딸이 비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모든 공든 탑이 삽시간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마음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고 밤새도록 엎치락 뒤치락하며 울부짖고 있을 때 한 음성이 들려 왔다.

“아이야, 지금은 네가 알 길이 없을 것이나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이 다 명백해 지리라.”
이 음성을 들은 가이벨 박사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예,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당신께서 언젠가는 명백히 알게 하실 날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라는 말로 응답했다.

다음 날 아침, 이 모든 사실을 마일즈에게 낱낱이 다 말했다. 이 날 가이벨 박사는 자기의 방에서 이 말씀을 근거로 한 자기의 찬송을 썼고, 마일즈도 그의 암실에 들어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요한복음 20장을 읽는 가운데 영감을 받아 여기 소개하는 이 찬송을 작사하게 된 것이다. 작사자 마일즈는 이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1912년 3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사진기와 현상기구, 그리고 올갠이 있던 암실에 앉아서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요한복음 20장을 펼쳐들고 읽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시는 광경은 나를 매혹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말씀을 읽을 때 나도 그 장면에 끼여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었고, 마리아가 주님 앞에 무릎꿇고 ‘랍오니여!’라고 부르짖던 극적인 순간에 대한 말없는 증인이 되었었다.
이 환상에서 받은 영감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바로 그대로의 찬송시를 형성한 말들을 재빠르게 써내려 갔다. 그날 저녁 나는 작곡도 마쳤던 것이다.”

이 찬송에서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만난 동산이 어떤 동산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예수께서 장사되었던 동산과 첫 부활절 아침 광경을 작시자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19장 41, 42절에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골고다(마 27:33) 언덕에 동산이 있고, 그 동산 안에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그 무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에서 가까와서 그곳에 두었다고 했다.

안식 후 첫날 아직도 사방이 어둡고 “장미꽃 위에 이슬이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서 그 동산에 찾아왔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함이었다(마 28:1-7, 막 16:1-7, 눅 24:1-8, 요 20:1, 11-13). 그런데 무덤을 봉했던 돌이 옮겨진 것이다. 그가 밖에서 울다가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서 있는 것이었다. 마리아가 되로 돌이켜 보니 예수께서 서 계시며,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하셨으나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의 시체를 내주기를 간구하였다.

이 때 예수께서 “마리아야!” 라고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실 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랍오니여!” 라고 했다. 이 때의 마리아의 기쁨은 어떠했으랴? 그는 즉시 달려가서 예수님께 매달리려 했던 것같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못하였느니라”(요 20:17)
고 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바다 서쪽 막달라 지바에서 태어났으므로 막달라 마리아라고 한다. 그는 일곱 마귀 들렸던 여인이요,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었던 여인이었으나 예수께서 고쳐 주셨다.

그 후부터 그는 정성껏 그리스도를 섬겼다(막 16:9, 눅 8:2-3). 그는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고(마 27:56, 막 15:40, 요 19:25),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지낼 때도 있었다(요 19:25, 막 15:47).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고, 주님의 사심을 제자들에게 고하였다(마 28:8-10, 막 16:8-11, 눅 24:9-11, 22, 요 20:14,18). 그런 마리아가 주님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그가 주신 노래가 “늘 내 맘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다.”고 한 것이다.

마리아는 비록 그곳에 어둠이 덮일지라도 예수와 더불어 그 동산에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하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28장 6,7절에 보면,

“…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Come)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See) 또 빨리 가서(Go)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Tell)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

라고 한 네 가지 동사가 섞인 명령을 천사가 했다.
‘오라, 보라, 가라, 전하라’는 이 명령은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진 명령이다. 즉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하고 그의 ‘부활`의 승천’을 말하며 ‘다시 오시겠다’는 그의 약속을 전해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고 그의 마음은 기쁨에 가득 찼다.

이 경험은 마리아와 같이 그리스도를 찾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쁨이요,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진정 그리스도를 만나 그와 동행한다면 우리도 “그 동산에 머물렀을 때 우리가 나누는 기쁨은 아무도 알 사람이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하시는 음성이 어찌나 감미로운지 새들이 노래하는 것을 멈추었다고 작사자는 표현했다.

한때 죽음의 동산이요 고통과 슬픔의 동산이었던 이 동산이 예수께서 살아나시고 마리아와 함께하실 때 평화의 동산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즉, 예수께서 “마리아야!”라는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그토록 괴로웠던 마리아의 괴로움은 다 가셨고 그의 울음은 멎었다.

주께서 그 곳에 계심으로 슬픔도, 눈물도, 고통과 아픔도, 죄도 다 가고 한때 두려웠던 죽음도 다 없어지고 삶과 기쁨으로 가득찬 평화의 동산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 노래는 아담 가이벨 박사가 작곡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아무리 시도해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그날 저녁 작시자 마일즈가 작곡을 했다는 것이다. 이 찬송이 세상에 나온 지는 반 세기를 조금 지났으나 그 어느 복음 찬송보다 더 많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스며들었고 80만 장 이상의 레코드가 팔렸다.

제공 : 기독교복음침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