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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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할머니와 향수

2008.07.22 09:33

최향미 조회 수:1216 추천:134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토요일 늦은 아침에 모처럼 아이들과 동네 미국 식당에 들어갔다. 빈자리가 많은 만큼 식당안은 조용했다.아직 어린 꼬마 두 녀석은 식당 분위기 때문인지 어색하게 점쟎은 모습으로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생인 동생 앞에서 조금은 잘난 척을 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제 동생에게 식당 예절을 가르치는 딸아이가 우습다. 분위기가 워낙 조용해서인지 아이들이 말도 소근 소근 한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한껏 밝다. 실내 놀이터가 있는 햄버거 집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놀던 분위기와 다른걸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다. ‘우리도 분위기만큼 의젓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눈빛으로 읽을 수 있었다.

        식사를 중간쯤 하는데 우리 뒷자리로 새로운 손님이 들어와 앉는다. 지팡이를 집고 파스텔 색상의 옷으로 곱게 차려입은 백발의 노인 두 명이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작은 아이가 인상을 찡그린다. 음식을 입에 넣다가 다시 울상이다. “엄마...나 토할라구해” 하는게 아닌가. 마주 보고 앉은 딸아이에게 눈짓으로 물어보니 “ 엄마, 냄새가 너무 많이 나 ” 한다. 방금 들어온 할머니들한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나는 심할 정도로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아빠를 닮았는지 냉장고 문을 열다가도 가끔씩 헛구역질을 할 만큼 후각이 예민하다. 아들의 개 코에 먼저 걸리고 딸아이의 후각에도 자극을 준 냄새는 바로 뒤에 앉은 백인할머니들한테서 나는 향수 냄새였다. 빨리 먹고 나가자는 내말에 아이들은 다시 포크를 집어 들었지만 결국 우리는 남은 음식을 싸들고 나오고야 말았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아이들은 그 지독한 향수 냄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 할머니들은 아마 노인 냄새를 감추려고 향수를 뿌린 게 조금 지나쳤던 것이 아닌가 싶다. 순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얘들아 그 할머니들이 일부러 냄새 때문에 다른 사람들 골탕 먹이려고 비싼 향수를 뿌렸을까? ” 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아니...” 라고 대답한다.

        -보통 노인한테 나는 냄새가 있다고 한다. 아마 그 할머니들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냄새를 주고 싶어서 돈을 들여 향수를 사서 뿌린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그 냄새 때문에 식사도 중단해야 할 만큼 피해를 본거다. 남을 위하려는 행동이 결국 남에게 피해를 주는 바보짓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해가 되는 짓을 안 하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한다. -  아마 이렇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맑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들이 기억난다. 나도 가끔씩 지금 우둔한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때 마다 생각나는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뱀 같은 지혜가 늘 필요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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