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

2012.11.16 14:03

이주희 조회 수:858 추천:57

중앙일보 2010. 4. 14,
나 희덕 (시인, 조선대 교수) **이주희의 [식탐] 은 미각을 통해 상상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산문시 형식 으로 먹고 싶은 음식들을 줄곧 나열하고 있는데, 시를 다 읽고 나면 그러한 '식 탐’ 이 실은 아버지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곧 마음의 허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위대(胃大)했다 냉면 두 그릇 먹어치우던 위장 뭉떵 잘려나가도 어이해 식탐은 잘려 나가질 않는 겐가 가스가 나오려면 멀었는데 눈에 들어앉는 게걸 머리로 들어차는 뱃구레 어쩌자고 굶주린 이리떼는 침샘으로 몰려오나 좌르르 윤기 흐르는 쌀밥에 쭉 찢은 김치 아귀같이 목구멍에 디밀어놓고 노릇노릇 구은 고등어 자반에 콩나물국은 곁다리지 삼킬수록 뒷맛이 구수히 따라붙는 들깨수제비 아니 혀 뜨거 소방차 부르는 낙지복음에 머리채 쥐고 싸울 듯 비빈 비빔밥 이 알천인가 아버지와 함께 먹던 자장면 맛은 또 어떻고 이내 참숯 오리구 이 한 마리 후딱 해치우고 줄줄이 순대 족발까지 저런 손가락 깨물리겠다 저물도록 먹는 생각 어디가 끝인지 몰라 먹고 또 먹어도 성이 안차 그림 속 빵까지 우적 우적 뜯어 먹네그려 종내 그리움까지 씹다 제풀에 지친 걸신 고향의 달보드레한 감 한 입 베먹으면 허전하고 쓸쓸한 속 노을빛 가득 채워질거나. - 이주희 (식탐)에서 - *이 시의 화자는 위장을 상당 부분을 드러낸 수술을 받고 아직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데 위장은 잘려나가도 식탐은 잘려나가지 않아 먹 고 싶은 목록들이 줄줄줄 떠오른다. 오히려 먹을 수 없다는 허기가 기억 속의 음식들을 더 왕성하게 불러 오는 듯하다. 주목할 것은, 일반적인 음식의 호명에 이어 “아버지와 함께 먹던 자장면"과 “고향에 달보드레한 감” 이라는 특화된 기억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림속의 빵"이나“그리움”이라는 먹을 수 없는 대상으로까지 상상력이 확장되면서 단순한 식탐의 기록을 넘어선 다. "고향의 달보드레한 감 한 입 베먹으면 허전하고 쓸쓸한 속 노을빛 가득 채 워질거나" 와 같은 결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그렇게 시상(詩想)을 유도 해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미주문학 2010년 가을] 계간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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