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깎는 채송화

2012.11.16 13:21

이주희 조회 수:618 추천:45

**팔십 중반이 되시는 어머니와 당뇨로 고생하는 언니와 함께 고국을 방문하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여동생 집에 지내고 있을 때다. 앞마당을 살펴 걸으시던 어머니가 불쑥, 45도 경사를 잔뜩 움켜쥐고 서 있는 나무에게 말씀을 건네셨다. "이 녀석아, 너는 언제부터 여기에 서 있었느냐?” 근처에 있던 언니가 듣고서 어머니 연세보다 훨씬 많은 이백 살이 되어가는 나무들이라고 설명을 드리니 ‘나무로 치면 나도 비슷하겠지' 하시면서 발걸음을 옮겨 은행나무 허리에 나 있는 상처 자국을 어루만지셨다. “너는 왜 열매를 맺지 않아서 몸통을 찍혔느냐?” 최근 들어 기억이 많이 떨어지시고 혼잣말을 많이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파라솔 밑에 앉아서 바라보던 우리자매들은 은행나무의 도끼자국을 두고 야릇한 농담을 하며 킥킥거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화분에 심은 채송화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채송화야, 아직도 너는 머리를 깎고 있느냐?” 동시에 웃음을 거든 네 자매들이 기억하시는 부분을 다투어 여쭤보았더니, 남동생이 태어난 집에서 예쁘게 꽃을 키우시던 것과 오래전 작은 딸의 시詩 한 부분을 잊지 않고 있으셔서 나는 절로 눈물이 흘러 나왔다. 시집 타이틀을, 쓰고 있는 소설 "그네 위에 비탈거미" 로 할까 아니면 ”머리 깎는 채송화“로 할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어머니는 단번에 결정을 내려주신 셈이다. 아직도 나는 걸음걸이가 뒤뚱거리는 미성숙한 사람이지만 그 또한 내 모습이기에, 넘어지면 일어나 무릎잡고 울던 어린 시절처럼 슬프면 같이 울고 즐거우면 같이 박수치리라. 끝으로 고국에서 격려를 해주신 글벗주간 최 봉희님과 글벗 회원님들, 미국에 계신 오렌지 글사랑회원님들,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님들, 그리고 마음을 담아 고운 그림을 주신 노령의 박 영길 할머님과 그 외 축하의 글을 주신 어르신들, 특히 홍제의 벗들, 함께 즐거워해준 나의 가족 모두에게 고마움의 큰 절을 올린다. 저자 이 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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