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박정순의 문학서재






오늘:
13
어제:
26
전체:
47,020

이달의 작가
[그리움으로 피었다 지는 꽃]을 읽고 리나 김(토론토 거주) 도시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밤이었다. 화랑의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밀치고 행여,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파트리샤와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얼른 눈에 띄는 곳에 빈 자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자리에 주인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파트리샤는 옆에 앉은 동양 여인에게 물었다. “ 여기 앉아도 되나요?” 맑은 웃음을 띈 그녀의 대답이 시원 하게 “물론, 너가 원한다면..” 하고 말했다. 그때 내 눈의 놀라움. ‘와아, 한국 사람인 것 같은데….’ 놀라움에 앞선 반가움이 나를 뒤흔들었다. 관중의 대부분이 백인들이었고 동양인이라고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던 그 모임에서 유일하게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그 자체가 커다란 반가움이 아닐 수 없었다. 박정순 시인을 만나게 된 것은 고던과 프리츠의 시 낭송의 밤이었다. 그들은 이민자로서 고던은 보스니아 시인으로 “전쟁과 평화”라는 시집을 내면서 이곳 캐나다의 문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리고 프리츠는 스코틀랜드인으로서 시인이며 편집인임과 동시에 펜 캐나다의 회원들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화랑을 나온 이후에서야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한자리를 꽉 메운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속엔 저마다 간직한 뜨거운 시의 열정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아른거렸던 한 여름밤의 열기. 이곳에서 이민자로 자의던 타의던 뿌리를 내리는 우리들로서는 모두가 낯선 사람이 되어 영어로 말을 해야하는, 영어로 생각해야 하는 삶의 힘겨움을 외쳤다. 그날 밤 늦은 시간까지 문학을 이야기했고 시를 이야기 했고 그리고 영화를 이야기 했다. 그리고 박정순 시인의 시를 만나기 위해 집에 도착하자 마자 한맘 성당의 홈페이지를 찾아갔다. 처음 한번 읽고, 또 읽어보고, 아, 그리고 그 살아있는 시어의 맑음에 한국말의 아름다움에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나는 파트리샤에게 그녀의 시를 영역하여 보여 주었고 그리고 우리들 의 만남도 늘어났다. 이곳 캐네디언들의 시의 영역이 느낌으로서의 일상생활을 많이 표현한 것이라면 박정순 시인님의 시에서는 자연의 작은 소재를 통한 동양 철학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예술인이 어디 있을까? 마는 자연을 통한 이민 생활을 표현한 것등은 내가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사는 원초적인 뿌리기 또한 싶지 않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인해 시인은 외로 움은 더 단단한 시의 씨앗을 잉태하여 꽃 피우는 것 같았다. 두번째 시집, [그리움으로 피었다 지는 꽃]은 상사화라는 꽃을 풀어서 쓴 것이라고 한다. 상사화라는 꽃은 이른 봄에 잎사귀가 먼저 싹이 트고 파랗게 되었다가 형태도 없이 노랗게 폭삭 삭은 그 자리에서 한 여름 꽃 대궁이가 올라와 한송이의 꽃을 피고 지는 꽃이란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핀 꽃 이름에서 착상한 상사화는 읽는 이의 가슴에서 눈물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시어들이 한국의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함을.... 박정순 시인이 만나는 사람들속에 몇 번 동참한 적이 있었다. 한국문인으로서 캐네디언들의 문학을 만지고 듣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시인의 문학 세계관도 넓혀 나가야 한다면서.. 그녀의 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며 이렇게 단정한 시인이 우리곁에 아니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참 행복함을 느낀다. 나는 그녀를 나의 언니로 만들었으므로...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