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해야 할 것들

2005.11.05 13:23

강학희 조회 수:640 추천: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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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해야 할 것들 / 강학희
- 스트레스 방생하기.



내 아버님 늘 하신 말씀
네 얼굴에 너를 보이지 마라.
기쁨, 슬픔, 분노, 질투, 미움, 사랑, 온갖 희노애락 보이지 마라.
그저 늘 지나치지 않게
잇 속 보이지 않는 단아한 웃음 지으며 살아라 하시더니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도
세상으로 가는 모든 부라인드 다 내리시고 그렇게 혼자 앓으시며
소리 없이 가느다란 미소 한가닥 잡고 가시더니...

이날 이때 냉전 체질이라 욕이라는 걸 잘 뱉지 못하고
못 참을만큼 화가 나면 나 혼자 궁시렁 궁시렁
무슨 저런 인간이..., 저 인간 때문에... 중얼 중얼하던 소리
얼핏설핏 옅들었나
어느 날 아들녀석 제깐엔 엄청 화가나서 사촌에게 멱따는 소리로
욕을 하는데 당연히 인간이 최대의 욕,
"야! 이 인간, 인간, 인간 같은 인간아!"하고 열을낸다.
저 쪽 테이블에 앉았던 우리들 모두는 배를 잡고 넘어지고...

문득 문득 되돌아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 아버지, 언니, 삼촌,
모두들 다-아 쉰살 넘자마자 바로 바로 암으로 돌아가신 건
그 때 그 때 훌훌 쏟아내지 못하고 묻어둔 응어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천성으로 욕도, 성질도 못내고 꾸욱꾹 누질러 논 홧덩이들이
병이 된 것 같기만하다. 그나마 집안 내력이 술을 즐기는터라 아무
뒷탈 없다 술술 잘 넘기던 약주도 어쩜 약술이 아니라
독주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참저참 목마름을 말로 풀지 못하고 술로 해갈한 세월만큼
으슥한, 아니 기중 여린 약점을 찾아 점.점.점 번지기 시작한
질나쁜 불량 세포들이 바로 암덩어리가 되었을 터.,

그래, 우리 차마 어디다 대놓고 욕이라도 할 수 없을량이면
하다 못해 욕탕물이라도 크게 틀어놓고
속옷, 겉옷 다 벗어버리고 가슴 속 뱉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
모두를 생각나는 말이란 말은 다 동원해 물처럼 좔 좔 쏟아버리고
오늘로써 나는 너를 다 용서했다, 아니 다 용서받았다,
겉과 속의 얼룩들, 눈물자국들 빠득빠득, 살이 쓰리도록 시원하게
씻어버리고 말자. 나도 욕탕도 빨갛게 씻기고 속도 겉도 시원해보자.

아님, 아무도 없는 시간
흔들 의자에 앉거나 서거나.... 베토벤의 운명이라도 꽝꽝 틀어놓고
쨔자자잔 울리는 음에 맞춰 그래, 운명아! 내 운명의 모든 덧들아!
몽친 것, 놓친 것, 두려운 것, 서러운 것, 모두, 모두 몽땅 다
아무 눈치 볼 것도 없이 다 끄집어내서
혈관을 막는 속터지는 삶의 귀싸대기 올려붙이듯
쨔자자잔 터지는 음표들을 쨔자자잔 맨 손으로 휘갈기며
나를 지휘해보자. 땀이 뻘뻘나게 저 혼자라도 신명내보자.

어차피 마음대로 지휘되지도, 지휘 할 것도 없는 세상,
별 것 아닌 일에 혼자 미처서 낄낄대다보면
절대로 별 일이 닥칠 때는 미치지 않는 법.
혼자 속시원히 열내고 웃고 땀흘려보면 꽉 막혔던 쳇증도 싸-아악
내려가는 시원함과 더불어 음악 레파토리도 바꿔가며
신나게 음악을 듣는(?) 습관도 생길 뿐 아니라
건강 호르몬을 나오게 하는 알파파의 뇌파가 펑펑 쏟아지는
금상첨화 음악테라피가 되는 것을....

이렇게든 저렇게든,
어쨋든 우리 몸안의 모든 노폐물의 주범인 스트레스 끄집어내서
사월초파일 물고기, 거북이, 새들- 훠어-이 훠어-이 놓아주듯
나쁜 기운들을 방생放生시켜버리자. 격랑 뒤 서서히 맑아지는
강물처럼 잔잔한 피의 흐름으로 새날을 맞아
가뿐한 마음으로 또 다시 한 세상 걸어가다 보면 어쩜 여직껏
보이지않던 또 다른 세상의 면면들이 제 얼굴을 훤히 드러내
'아-하' 하고 인생의 무릎을 치는 일도 생기는 법.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남에게도 나에게도 탈 없는 제 숨은 비법(?)으로 뛰든, 걷든,
듣든, 소리치든, 씻든, 벗든, 산이든, 강이든, 벌판이든
아스팔트 길이든, 운동기구이든 달리고 또 달리며
몸 안의 좋은 세포 욱박질러 변질시키는 암이란 세포 자라나지
않게 틈틈히, 부단히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도록 해보자.

사람들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방생放生한다며
제 안에 방생해야 할 것들은 다 잊어버린 채
제 몸 밖의 것만 보고
묶는 마음이 아닌 묶인 것만 데려다 방생을 한다.
진짜 놓아야 할 것은 놓아 보내지도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조울
짬짬히, 바퀴벌레 잡듯이 재빨리, 옷장 안 좀벌레 찾듯 꼼꼼히,
필히 시간을 내서 내 안에서 방생해야 할 것들을 찾아보자.
끼니 마다 차오르는
뱃살, 밉살, 욕慾살, 돈貨살, 홧怒살,... 찾아서 방생해 버리자.
잡아 놓고 방생하는 자비가 아닌
진짜 나의 방생을 만나보자. 끝내 나를 방생시켜보자.

그 게 바로 진정한 진. 선. 미.
나를 위한, 남을 위한 자비인 것을.
내가 자유롭지 않고서야 어찌 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랴.

세상이 점점 더 나를 윽박지르고 거세게 달겨들어도
물처럼 바람처럼 내가 먼저 훠-어이, 훠-워이 흘러가며는
결코 세월은 나를 옥죄지 못하고 풀어놓아주리라.
나는 방생되리라.
오-케이!, 야무진(?) 방생의 꿈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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