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끓이며

2006.10.30 15:27

강학희 조회 수:1433 추천:91

미역국을 끓이며 / 강학희

마른 미역 한 줌 물에 담근다
미역은 불어도 검은 물이 우러나지 않는다
미역은 검은 것일까?

씻은 미역을 끓인다
뽀얗게 우러나는 국물
비릿한 엄마의 젖 맛이 난다 미역은 검어도
보이지 않는 속살은 젖살처럼 뽀얄 것이다
끓이면 진국이 되는
미역 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탯줄은 잘렸어도 나는 아직도
미완의 존재, 보이는 몸과 보이지 않는
생각으로 태어나 평생토록 하는 일이란
생겨나는 눈의 물을 닦아내고
보이는 것 속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는 일
더러 벅찬 일에 마음이 달아나도 속을 끓이는 건
미처 보지 못한 불투명한 무엇인가를
투명하게 보고 싶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역을 끓인다
미역은 검어도 흰 물이 우러난다.

*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4월1일, 2006 발표

- 바짝 말라비틀어진 시커먼 미역을 물에 담구면 울어나는 것은 검은 물이
아니라 바다에서 막 건질 때 같은 보드라운 너울거림이다. 팔팔 끓는 물에
집어넣고 끓이면 끓일 수록 엄마의 젖같은 뽀얀 물만 우러나는 미역, 평생
눈물이나 닦아내며 살아오는 미완의 삶이 벅차고 힘들어 보여도 투명을 향
해가는 의지는 삶을 수록 하얀 진액을 내놓는 미역처럼 아름다움만 울어낼
것이니 싱긋한 바다 냄새, 그 미역국 한 솥 끓여볼 일이다- 문인귀 시인 -


- 미주문협 회원 여러분께 오랜만에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이승하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다들 별고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경건하게 오늘과 내일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2006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올해 잘 마무리하시고 2007년 새해에는 좋은 일들 많이 계획하시어 하나하나 성취하면서 많은 기쁨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에서 나오는 <문학나무> 겨울호에 계간평을 쓰면서 미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최석봉, 송석증, 강학희, 송정룡, 정찬열, 강성재 등 몇 분의 시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 계간 시평>
이역 하늘 아래서 생각하는 어머니
―미주작가 특집의 의미


근년에 들어 학술지를 읽다 보면 그리스어로는 '분산'이라는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유배'라는 뜻인 '디아스포라'(diaspore)가 종종 눈에 뜨인다. 구소련권 고려인문학을 연구한 {억압과 망각, 그리고 디아스포라}(이명재 외 저, 한국문화사, 2004)와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김환기 편, 새미, 2006)은 구소련과 일본의 한인 문학 연구가 집대성된 단행본이다. '재외동포문학'을 연구하는 국제한인문학회에서는 2004년부터 학술지 {국제한인문학연구}를 내고 있고, 아래의 책들도 중요한 업적으로 남을 명저라고 생각한다.

설성경 외, {세계 속의 한국문학}, 새미, 2002.
유숙자, {재일 한국인 문학연구}, 도서출판 월인, 2002.
이동하·정효구, {재미한인문학연구}, 도서출판 월인, 2003.
정덕준 외, {중국조선족 문학의 어제와 오늘}, 푸른사상, 2006.

원래 디아스포라란 유대 왕국이 패망하여 바빌로니아로 유배당한 뒤, 토착민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늘날에는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이나 유대인 공동체를 총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 말에 착안한 이 땅의 연구자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창작해낸 문학작품을 연구하면서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취택하여 쓰고 있다. 고국을 등진 이민자에 의해 씌어진 문학이라고 하여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붙여 쓰고 있지만, 옳은 용어 선택은 아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겪지도 않았지만 세계를 떠돈 유대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한국인 가운데 그 나라에서 문학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이들이 무진장 많다. 미국에는 강용흘·김용익·김은국·차학경·노라 옥자 캘러·이창래 등 주류문단의 인정을 확실히 받은 문인이 꽤 되고, 일본에는 전통 깊은 아쿠다가와상 수상자인 이회성·이양지·유미리·현월과 문학적 역량이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김사량·김달수·김석범·김학영·양석일 등이 있다. 독일 문단에는 이미륵이, 호주에는 김동호가, 러시아의 아나톨리 김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전부 그쪽의 언어로 작품을 썼다. 즉, 이들의 작품은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야만 고국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는 근본적인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 연변의 조선족 문학만은 한글로 씌어졌기에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대강은 이해할 수 있어 근년에 들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미국 LA에서는 1982년에 미주한국문인협회가 결성되어 {미주문학}을, 뉴욕에서는 1991년에 미동부한국문인협회가 결성되어 {뉴욕문학}을 계간으로 발간해오고 있다. 계간 {문학나무}는 미주문인들의 창작활동을 격려해주자는 뜻에서 지난 가을호를 미주작가 특집으로 꾸몄다. 책의 1/3에 해당하는 109페이지를 미국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할애, 시인 6명, 수필가 5명, 소설가 3명의 작품을 게재하였다. 지난 호 특집의 의미를 살펴보자는 뜻에서 이번 계간평은 가을호 {미주문학}과 {문학나무}에 실린 작품들과 상주 숲문학회에서 발간하는 동인지 {숲 문학} 제6호(2005) 특집인 '중국 연변민족문학원 회원 작품'과 제7호(2006) 특집인 '연변작가협회 회원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써볼까 한다. 비록 작품을 쓴 이들의 몸은 미국과 중국에 있지만 작품은 모두 한국어로 쓴 것이며, 한국에서 발간된 문예지와 동인지에 발표된 작품이므로 계간평에서 거론해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미주문학}은 도서출판 청동거울에서 편집·제작하여 미국으로 우송하고 있다).

어머니 접니다
카네이션이 곱게도 피었네요
여섯이나 된 자식들
꽃 한 송이 받아보지 못하신 어머니

(…)

지금도 어디선가
생선 팔고 계실 어머니
오늘은
비린내 밴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드립니다
―[어머니 접니다]({문학나무}) 부분

최석봉의 이 시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시적인 기교는 전무하고 상상력의 영역은 조붓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흥이 느껴짐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애틋한 그리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없다. 그런데 "지금도 어디선가/ 생선을 팔고 계실 어머니"라고 했으므로 이 때의 어머니는 지금 이 시간 고국의 어느 시장 귀퉁이에서 생선을 팔고 있을 또 다른 어머니를 가리킨 것이리라. "그저 눈뜨시면/ 생선시장에서 사시던 당신"은 자식을 여섯 두었지만 카네이션 한 송이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 마음으로나마 어머니의 비린내 밴 가슴에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는 것이다. 시인은 머나먼 미국에서 어버이날만 되면 회한에 젖는 것일 테고, 이런 마음은 최석봉 시인만 갖는 것이 아닐 게다. 어머니의 해주신 반찬을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미국에는 얼마나 많을까.

뜨거운 여름햇살 아래
온몸에 흙을 묻힌 채 오이 밭에 쪼그리고 앉아
순질러 주고 계시던
오이 취록보다 아름답던 녹의홍상 새아씨가
날 가물어 허리 꼬부라진
노란 오이꽃 떨어지듯
오이지로 늙어가시던 어머님 생각에
내 가슴은 오늘도 소금물에 절인다
―[오이지]({미주문학}) 부분

오이지로 늙어가시던 어머니가 나오는 송석증 시인의 작품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절절히 읽어낼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오이 취록(翠綠)보다 아름답던 녹의홍상 새아씨였는데 뜨거운 여름햇살 아래 일하느라 오이지처럼 쪼글쪼글 늙어가셨다. 그 오이지는 어머니가 손수 담근 "짜디짠 손맛 오이지"여서 예전에는 찬밥 물에 말아 오이지 하나로 한 끼를 때울 수가 있었다. 시인은 오늘 어머니 생각이 너무 간절하기에 이 시를 "내 가슴은 오늘도 소금물에 절인다"는 시구로 끝맺은 것이리라. 최석봉과 송석증 시인이 그린 어머니는 남편을 대신하여 가혹한 노동의 나날을 보낸 강인한 이미지의 어머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어머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데, 그 이유가 어머니의 고생과 노쇠, 부재 등에도 있겠지만 지금은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짜디짠 손맛이 그립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민 1세대가 햄버거와 핫도그, 치킨 요리와 피자를 허구한 날 먹으면 거의 미칠 지경이 되지 않을까. 강학희 시인은 미역국을 끓이면서 "비릿한 엄마의 젖 맛"을 연상하고, 송정룡 시인은 보름달을 보면서 정화수 떠놓고서 보름달을 우러르며 치성을 드리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뽀얗게 우러나는 미역
비릿한 엄마의 젖 맛이 난다 미역은 검어도
보이지 않는 속살은 젖살처럼 뽀얄 것이다
―[미역국을 끓이며]({미주문학}) 부분

정월 초하루부터 동지섣달 그믐까지
세세연년 하루도 빠짐없이
가냐른 허리 접었다 폈다 빌던 소리 울 안에 차올라
두둥실 달에 실려 떠나시던 일
까맣게 잊으시고
아직도 허리 굽혀 빌고 계시는
보름달 속 우리 어머니.
―[보름달과 어머니]({미주문학}) 부분

강학희의 [미역국을 끓이며]는 어머니를 소재로 한 시는 아니다. 검은 미역을 끓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현상을 보고 "끓이면 진국이 되는 미역같이 되고 싶다"는 깨달음을 얻었기에 깨달음의 내용을 시로 쓴 것인데, 비유의 대상이 "비릿한 엄마의 젖 맛"이다. 연어의 모천 회귀처럼 인간에게는 누구나 모성을 향한 동경과 그리움이 있는 것이다.

송정룡의 [보름달과 어머니]는 어머니가 나오는 다른 어떤 시보다 시적 형상화가 잘 되어 있다. 평이한 서술이 아니라 약간의 환상성을 지녀 시가 몽환적이기까지 한데, 지나치게 긴 문장이라 시적 묘미를 거지반 잃고 있는 것이 아쉽다. 정찬열의 시는 어머니의 말투를 그대로 살려서 쓴 것임에 사실성이 돋보인다.

큰아그집 불났는디 시방 멋들하고있냐는 그느 아부지 호통에 벌떡 이러나보니 꿈이구나 밸일이 있건냐 함스로도 맘이 심숭상숭하다 나는 잘있다 밥맛도 조코 다리심도 안직은 짱짱하다 장꼬방 모탱이 니가 심어논 감나무에 올해 가지가 찌저지도록 감이 열녔다 나무가 저러케 큰것보고 손꼬바봉께 너 집떠난지도 삼십년이 넘었능갑다 억그제 니 생일에 물한그럭 떠노았다 인자 니 나이도 솔찬하구나 그양반 먼저가분뒤에 어린 느그들대꼬 살아온 풍진세월 생각하면 참말로 까막까막하다 올가실은 강두메 밭에 고치도 잘되야서 꼬치까리좀 뽀사 보내주고 시퍼도 맘뿐이다 머시냐 아랫동네 딸그만네 시째딸 그 복사꽃가튼 가시네말이다 너 미국간뒤 절에 들어가 스님되얏다더니 엄니 치상치러 왔다며 우리집 들렀더라 니 안부묻더라 짠하고 쪼끔 거시기하더라 참 도리촌 안심이네는 인공때 소식끈긴 작은아부지를 금강산가서 만나고 왔다더라 산사람은 그러케만나는디 느그아부지는 한번가니 영영이구나 아그덜 마니 컸지야 짬나서 댕개가면 조컷다 못오면 사진이라도 보내그라 할말은 당아당아 멀었다만 으쯔께 하고자픈말 다하건냐 산 내가 죽은 양반 한마디에 맘조리며사는 것이 생각해봉께 얼척도업다 으짜든지 몸성해라
―[영암에서 온 편지 2]({미주문학}) 부분

이 시는 고국에 있는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데 한 통 편지 안에 담긴 사연이 많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산가족이 된 후로 소식을 알 수 없는 남편, 미국으로 이민을 가 30년이 다 된 아들네, 비구니가 된 아들의 옛 애인이 찾아와서 아들 소식을 물으니 마음이 짠하고……. 어머니는 당신의 손자 손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볼 수가 없으니 사진이라도 보내라고 애소한다. 화자의 아들은 보다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가족을 잘 돌보고자 미국으로 간 것이겠지만 고향의 어머니는 아들네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고 처절하다. 소식 없는 남편을 꿈에서 자주 만나는 어머니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아들 생일에 물 한 그릇 떠놓고 건강을 비는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그리움,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을 꺼내들고 눈물짓는 할머니의 손자 손녀에 대한 그리움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눌러온다.
어머니를 회상한 이상 5명 시인의 시는 한마디로 말해 '수구초심'이 주제이다. 미국에서 살아갈 운명에 처한 이민자들이 고국에 두고 온 사람들, 특히 노모에 대한 그리움을 다룬 시는 아마도 그 수가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중국 조선족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어머니상은 좀 다르다.

경북 상주의 숲문학회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 문인들과 주기적으로 상호방문을 하면서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방의 작은 문학회가 중앙의 문예지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들의 민간외교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동인지 {숲 문학} 제6호에는 연변민족문학원 회원 27명의 작품(시·소설·수필)을, {숲 문학} 제7호에는 연변작가협회 회원 14명의 작품을 싣고 있다. 한국에서 습작기를 보내고 나서 미국에 간, 미주 쪽 문인들의 시적 역량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진지하고 소박하다. 짐작컨대, 미국에서 출생한 이민 2세대가 한글로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민자에 의해서 미주문학이 성립되는 것임에 반해 연변 조선족 문학은 중국 태생 한인들의 문학일 수밖에 없다. 중국과 우리나라가 국교를 터 교류를 하게 된 것은 1992년으로, 중국 연변의 조선족은 이때부터 비로소 남한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문학의 영향을 덜 받아서인지 작품이 꽤나 고풍스럽고 고아하다. 달리 말해 작품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가 쓴 것처럼 단순·소박하다.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촌스럽다.

어렸을 때
엄마 품에 매달려
먹어주던
엄마의 젖무덤

고향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볕에 그을린 얼굴

고향에서 풍겨오는
엄마의 향기.
―[메주]({숲 문학} 제6호) 전문

현재 연길시에서 중학교 교편을 잡고 있는 박명순의 이 시를 봐도 시인의 어머니는 고향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는 지난 시절 내내 노동의 나날을 보냈으며, 화자는 농투성이 어머니를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다. 메주 냄새를 "고향에서 풍겨오는/ 엄마의 향기"로 회상하고 있으니, 시인의 어머니 사랑과 고향 사랑은 시의 질적 함량과 상관없이 훈훈한 감동을 전해준다.

해마다 청명이면 나는
어머님과 단둘이서
옛말 잔디밭에 앉아
술잔을 기웁니다
―[성묘]({숲 문학} 제7호) 전문

잔을 드신 어머님 손끝이
접혀진 내 아픔 펴 주시고
술을 마시며 흘리시는 어머님 눈물이
방울방울 흰나비로 날아 내립니다
내 손등이

어머님을 부축하려고
허리를 펴니
어머님 보이시지 않고
손등에서 팔랑이던 흰나비들
하얀 손수건 되어
내 눈 이슬을 받아줍니다
―[어머님,]({숲 문학} 제7호) 부분

이 두 편의 시를 쓴 심예란이 스케치한 어머니는 좀 독특하다. 화자는 해마다 청명에 성묘를 가서(아마도 아버지 묘일 것이다) 어머니와 술잔을 기울인다. 그 다음 시 [어머님,]에서도 화자의 어머니는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리니 그 눈물이 방울방울 흰나비로 날아 내린다. 그 흰나비들이 하얀 손수건이 되어 내 눈의 이슬을 받아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존재라기보다는 내 슬픔과 아픔을 달래주는 벗 같은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나를 키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가엾게 여기고 돌봐주는 이, 지켜주고 살펴주는 이가 어머니라는 뜻이 이 시의 행간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를 노래한 시 외에 이국에 살면서 한국에서의 나날을 아프게 회상하거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사색하고 고뇌한 시인의 시가 있다.

땅 위에서 별들이 봄을 학살하던
일구팔공년 그해의 봄
나는 통나무 선술집 구석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유리창 너머로 영호루 누각이 어슴프레 보이고
깜깜한 어둠에 잠긴 낙동강에서
비상계엄, 비상계엄
술독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통나무 선술집,]({미주문학}) 부분

강성재 시인은 1980년에 어느 날 안동 낙동강변의 통나무 선술집에서 통곡하였다. 광주에서 모종의 사건을 겪고 피신해 간 곳이 안동이 아니었을까. 그런 짐작을 하게끔 한 것은 제2연의 "내 이름을/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주점의 안방까지 밀고 들어왔던/ 별들의 살벌한 군홧발" 덕분이다. "술독 속에 숨어버린 내 모습이 너무 싫어/ 배고픈 내 여인의 젖통 같은 술 사발을 엎어놓고/ 꺼이꺼이 통곡을" 쏟아냈던 것도 비상계엄하의 체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20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땅 위에서 별들이 봄을 학살하던/ 일구팔공년 그해"를 기억하고 있다. 별은 당연히 군장성이며, 봄은 '서울의 봄'이다. 미국에 가 있으면서도 시인은 자신의 비겁함을 용서하기 어려워 이런 시를 쓰면서 자탄하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출입구가
차별화된 것을 경험한 후
언제까지 지켜질지 모를 내국인으로 남기를
고집하고 있다
여권 갱신 때마다
본적과 현주소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고
번번이 밖으로 밀려나곤 하였다
오늘도 영사관 창구에서
신상명세서를 받아들고
막히는 한 대목
부랴부랴 수첩을 꺼내 뒤적여 보아도
딱히 분명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정착 못 하는 삶
―[이방인의 현주소]({미주문학}) 전문

윤휘윤의 이 시를 읽고 공감하는 이민자가 무척 많을 것이다. 수많은 미국 체류자들의 애환을 다루고 있으므로. 화자는 여권을 왜 때마다 갱신하야 하는가. 미국에서 삶의 뿌리를 아직 온전히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적과 현주소가 불투명하다고 영사관 창구 앞에서 줄을 서 있다가 밖으로 밀려나곤 했으니, 그 심사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영사관 창구에서 신상명세서를 받아들고 내용을 메우려고 하지만 꼭 막히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화자는 미국 내의 '내국인'으로 남기를 고집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모국이 여기서는 외국이다. 내국에 남기를 고집해본들 그것은 꿈일 따름이고, 여기 미국에서도 저기 한국에서도 "정착 못 하는 삶"을 화자는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정들면 고향이라고 하는데 화자는 미국사회에 과연 정이 들까. 정을 붙이고 싶어도 자꾸만 밀어내는 나라인 미국, 미국은 정착 가능한 땅도 먹고살 수 있게 하는 직업도 잘 주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이방인의 현주소]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미국 거주 시인의 작품에서 통일에 대한 갈망을 읽기 어려운 반면, 연변 조선족의 시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심심지 않게 거론되는 것은 만주 이주로부터 시작된 역사적인 배경, 북한에 가까운 지정학적인 위치, 조선족 주민들의 남·북한과의 직접적인 교류 등 몇 가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아버지 정기가
백두산에 솟았느냐

어머니 젖줄기가
폭포수로 쏟아지냐

그 정기 그 젖 먹으며
7천만은 자란다.
―[백두산]({숲 문학} 제6호) 전문

림진강 남쪽에서
누나가 통곡하고

림진강 북쪽에서
남동생 애곡한다

해마다 림진강물이
왜 붓는지 그대 알 만한가?
―[림진강]({숲 문학} 제6호) 전문

이 두 편의 시를 쓴 최혜숙은 윤동주의 고향 용정에서 광복되던 해(윤동주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에 태어나 연변대학 의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연변연통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 시인이다. 연변조선족여류시회의 명예회장이기도 한 시인의 최대 소원은 남북한 통일인가 보다. 그녀는 백두산의 정기를 아버지다움의 표상으로, 천지연폭포의 젖줄기를 어머니다움의 표상으로 설정한 뒤에 한민족 7천만이 그 정기 그 젖 먹으며 자란다고 말한다.

윤휘윤의 시를 보면 체류기간이 제한적인 비자를 갖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일부 한국인에게는 시민권이나 영주권 취득이 간절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중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은 확실하게 중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남북한의 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서 마음으로나마 통일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휴전선 일대를 흐르는 임진강이 해마다 범람하는 이유가 천만 이산가족의 눈물 때문임을 암시하고 있는 [림진강]은 시적 기교를 따지기 이전에 충분히 감동적이다. 몸은 비록 중국에 있고 국적도 중국인이지만 마음은 한반도를 향해 있고, 분단된 한반도가 하나로 합쳐질 것을 마음으로 간절히 축원하고 있다. 시의 형식이 미숙하고 내용이 어색하다고 하여 이런 시를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앞으로는 머나먼 이국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시인들의 작품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그들의 몸은 비록 이국에 있지만 마음은 고국을 향해 있고, 더군다나 모국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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