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사이

2006.04.07 23:58

강학희 조회 수:1255 추천: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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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사이 / 강학희

  • 미국에 오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되려고 내과 의사인 남편의 사무실에서 일을 돕다 보니, 이중 언어를 해야하는 어려움으로 구인도 쉽지않고, 최소한 사무적인 일에서 라도 조금 편해지길 바래서 그대로 함께 일한 것이 이젠 언 듯 27년이 되어간다. 직업상 비교적 삶과 죽음의 모습이나 개인 생활의 애환을 볼 기회가 많이 있어 때로 는 허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람으로 뿌듯하기도 하다.


  • 의사들 사이에 웃는 말로 내과의사는 사망 진단서에 이름을 남기고, 산부인과 의사 는 출생 신고에 이름을 남긴다 하듯 내과병동은 끊임없이 희비애락이 교차되는 매일 매일의 일상 삶과 같아서, 늘 "죽고 살기도하는데 무언들 그리 맞붙어 싸울 일이냐?" 는 짝꿍의 말처럼 오늘 내 생명에 어떤 일이 일어날른지는 그 분 외에는 아무도 알 지 못한다.


  • 실제로 막상 죽음이나 긴 병치례 앞에 서게 되면 사람마다 그 현실을 받아 들이는 모 습들 또한 참으로 다양하고, 이젠 오랜동안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그 순간의 가 족들의 진면목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인다. 대개 부부 중 한 사람이 극한상황에 이르게 되면 오래 동고동락하여 제 살 같은 사람들은 말은 대단치 않게해도 그 안쓰 런 눈길, 손길이 따뜻하고 다정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말은 공손하고 애틋한 듯 해도 눈길이 불안정하고 치닥거리를해야하는 불편한 심기가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나 손길에서 묻어난다.


  •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육신을 자신이 가둥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보면 배우자 뿐아 니라 자식들의 경우에도 노부모를 대하는 모습들이 천차만별, 삶이 무엇인가 다시 생 각 하게 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물론 예외야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성공 한 자식들이 병고에 누운 부모님을 돌보는 모습과 하루 하루 일당의 노동으로 사는 화이트칼라가 아닌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는 모습들이 극과 극인 것 같아 씁쓰름하기 도 하다. 의무로 하는 뒷수발과 마음으로 우러나서 하는 뒷수발의 차이가 훤히 보이 기 때문이다.


  • 통상 전문직을 하는, 잘 나가는 자식들은 하나 같이 다 잘 살긴해도 제 앞길에 번져 놓은 여러가지 일에 매여 부모님께 하는 성의가 단순 노동으로 육체가 고달픈 자식 들이 밤잠 설쳐가며 병실이나 노인 아파트에 들려 아픈 부모님 곁에서 수발하는 모습들과 어찌나 다른지 놀랄 때가 많다.


  • 가만히 보면 많이 배워 지식이 풍부하고 이성이 발달되면 상식적으로는 감성도 함께 자라 둥근 전인적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이즈음의 전문직업을 갖은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에게서는 이성만이 발달한 것인지 도무지 감성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저 전화나 두어통 걸어 병명이나 확인하고 그런 병이니 그럴 것이라 여기 는지, 따스한 식사 한끼라도 준비해서 병실이나 집으로 가져오는 사람들이 드물고, 대개 그런 경우 부모들도 하이칼라 지식인들인 경우가 대부분 인 걸 보면 감성이 풍 부한 부모밑에서야 감성이 풍부한 아이들이 나온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님 혹 냉혈도 유전인 것인지?...


  • 반면에 별로 배운 것없이 이민을 와서, 또 아이들도 그럭 그만한 일을 하며 크게 여 유가 없이 살아가는 가정인데도 누군가 식구가 아파서 입원을 하게되면 식구 모두들 짬짬히 번갈라 오며 가며, 입성, 먹성을 챙기며 애끓어 하는 걸 보면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린 그런 날이면 "여보, 죽자사자 아이들 가르칠 일도 아니구먼 배운녀 석들보다 덜 배운 녀석들이 더 애처로이 부모님의 등을 두들겨주는 걸 보면." 하고 웃으개 소리(?)를 하게도 되고, 진정한 여유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이성과 감성은 반비례로 나가는 것인지, 지식이 감성을 막는 것인지, 참 지식과 아 닌 것은 책에서는 배울 수가 없는 것인지... 부모인 우리 자신은 자식에게 어떤 것 을 가르쳤고, 어떤 대접을 받고있는 것인지... 낳기는 쉬우나 키우고 함께 함이 얼 마나 어려운 것인지... 많은 날 내과적 질병들을 보면 어떤 육체적 기능의 이상으로 생기는 병보다 심리적, 정신적 장애로 생기는 병들을 고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놀 랄 때가 참 많다. 또한 병고보다 더 시린 가족의 냉대에는 어떤 치료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도 된다.


  • 많이 배우시지는 못하셨지만 13남매를 낳아 기르셨던 시어머님이 이즈음엔 누구보다 도 존경스럽다. 여장부시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도 된다. 시어머님이 나라를 경영한 다고 나가 억億떼기 사과 상자나 나르는 사람들보다는 훌륭한 경영인이란 생각이 든 다. 그것도 한국의 그 고난한 시절에 열셋 아이들을 하나도 잃지도, 굶기지도않으시 고 진두지휘 살려내신 것은 어떤 일을 경영하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 것이므로 달 랑 아이를 하나만 낳은 나는 절로 고개가 수그러든다. 더구나 7년이나 중풍으로 누 워 계신 시아버님을 손수 병수발하시고, "에고, 내는 그리 누우면 홧병에 죽을 것이 다."하시던 시어머님도 정말 중풍으로 누우셔 딱 일주일만에 아이들 얼굴 일일히 눈 맞추시고, 깔끔히 돌아가신 것 또한 열 세번 배부르고 낳고하신 업과 수발이 도에 이 르셨음(及)이라 감히 말하고 싶어진다.


  • 진인사 대천명이겠으나 내 몸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 뉘도 고생시키지 않고 갈 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누려보고 싶은 복락이 아니 랴. 오고 감이 순서도 없는 세상에서 매일밤 내 기도의 첫번째 목록이 바로 이 것인 것은 아마도 감성보다 이성으로 살아 온 날이 많은 제 죄를 알기 때문인가 보다.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읽으며 감정을 풀어놓고 살고싶다. 허용되는 날까지 쉽게 울 고 웃으며 누구에게나 쉬운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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