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바람/강민경
처음엔, 한 점 바람
하찮게 여겼더니
여름이 다 가도록 얼씬도 않는 바람
삐쳤는가?
끓는 지열에 턱턱 숨 막히며 늘어지는 육신
이제는, 아양이라도 떨며 비위라도 맞추며
상전으로라도 모시고 싶은 심정이다
“무슨 날씨가 이래” 하고
원망해 봐도
핏대를 세우며 성질을 부려 봐도
하늘마저 구름 한 점 없더니
우르릉 꽝, 번쩍번쩍, 이제 됐다 싶은데
끝내, 소리만 요란하고 칼춤만 춰대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도 거짓말이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평소에 싫어하던 에어컨을 켜는데
내가 싫어하니까 저도 싫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일 바닥이 흥건하다
누구의 눈물인지 혹은
누구의 비뇨인지 모르지만
한 점 바람 하찮다고 괄시했다가
올여름 된통 당하고
에어컨 바람에 닭살 돋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