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사이
말끔히 헹군 여름의 그림자
공손하게 줄지어 서 있는 베란다
띠우지 못한 풍선 같은 욕망도
베풀지 못한 관용 같은 향기도
날아가 버린 가여운 옷차림으로
입추에 떠밀려 온 모서리 양지
낡은 그러나 가라앉아 맑은 샘처럼
솟아오르지 않아도
흘러나가지 않아도
언제나 싱싱하던 햇살
당당하던 사슴팍 언제 야위었을까
발자국 소리에 키를 돋우는 고추나무처럼
주인 없는 소음에 갈라진 목소리에도
어느새 기대고 싶은 연인이 되어 다가오는 은행나무
블라인드 사이엔 물빛처럼 투명한 낯선 하늘
그리운 만큼 멀어지고
부르는 만큼 깊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