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이 월란
뒤뜰의 키 큰 나무들이 만취한 듯 몸을 흔들고 있다. 차고 문을 열어 둔 탓인지 차고와 통하는 거실 문이 포악스럽게도 자꾸만 열린다. 벌써 세번째 가서 문고리를 단단히 여며 두었다. 그리고 네번째로 열렸을 때 차고가 찜통이 되더라도 차고문을 닫아버렸다. 바람이다. 헐거워진 틈이라면 여지없이 파고들어오는 항간의 바람이다.
나의 아귀 튼 간극마다 스미는 저 세속의 바람은 계절의 고삐를 물고 뼛속까지 훑고 지나간다. 자해(自害)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차라리 편안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소실점을 향해 기운 선 위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속의 템포에 차라리 쾌감을 느낄 것이다. 식곤증에 몸이 굼뜬 사람이라면 찌푸린 삭신이 차라리 상쾌할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붙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후련할 것이다.
저 떠도는 바람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안달이 난 교활한 음모들이라면 난 뒤뜰의 저 키 큰 나무처럼 휘청거려 주리라. 곤두서는 신경다발들을 저 잎새들처럼, 아둔한 듯 몸 밖으로 내쳐 훤히 보이도록 전율해 주리라. 살아 뻗어버린 넌출의 흔들림들이 이젠 눈에 익을 때도 되지 않았던가. 깨금발로 건너 뛰어오던 깊지 않은 웅덩이들이 발이 스쳐도 젖지도, 빠져들지도 않을 늪이 아니란 것에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던가.
전염성 높은 열병처럼 달거리로, 해거리로 오는 저것들이 궁핍했던 반생의 여독이라면, 건드리면 움츠리는 미모사같은 천성의 수치를 눈물 없이 감당해 낼 줄도 알아야 하지 않던가. 24시간 작동으로 쉬이 닳아 없어지는 밧데리같은 생의 원기를 난파 직전의 벼랑에서도, 저 물결치는 바람의 파문 위에서도 고요히 정박시킬 줄도 알아야 하지 않던가. 내린 닻은 질긴 명줄을 입에 물고 바람 없는 심해의 푸른 가슴에 말없이 안기고 말것을.
2007-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