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중
이월란(09/07/29)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구둣소리가
시멘트 벽을 때리곤 지구 반대편까지 메아리친다
동아리방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 이제 밥 먹으러 간다는 그녀
그 늙은 여학생의 목소리가 왜 혼자 죽으러 간다는 말로 들리는걸까
너무 멀어서일까 쾅! 철문 닫히는 소리
그녀는 감옥 속에서 공부를 하는 것일까
생의 음향효과는 때론 너무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또각또각 그녀는 아직도 지하감옥같은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데
나는 수화기로 밥을 먹고 있다
혼자 밥을 먹을 때 비로소 나의 허기를 받아먹는 내가 보여
거울처럼 앉아 나를 비추는 나의 허기와 마주앉을 수 있어
골목마다 지키고 서 있던 나의 허기를
숟가락으로 퍼보고 젓가락으로 짚어보고
어린 모가지 ㄱ자로 꺾어 우물 속을 들여다보던 유년의 공포처럼
바닥없이 물무늬지던 그 배고픔
그림자는 늘 나보다 더 길거나 더 짧거나
허기는 늘 모자라거나 넘치기 일쑤여서
그녀는 지금 나처럼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단다
아득한 거리가 주는 공복감
그녀의 허기가 뚜우뚜우 전선을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