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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07:43

산홍아 너만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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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홍아 너만 가고


암울하던 일제말기! 
사각모에 검은 망또를 낭만처럼 걸쳤던 그 시대의 지성이던 대학생들,
그들이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밤거리를 몰려다니며 나라 없는 울분을 술로 달래고 노래로 토해내던 시절에 널리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산홍아 너만 가고’ 였다.
가난하지만 기생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던 그 시대의 대학생들, 
이 노래는 산홍이란 기생을 사랑했던 한 대학생의 슬픈 사연으로 그 당시 많이 유행하던 노래라고 한다.
유난히 이별이 많았던 시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나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나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지만 올해 93세된 아버지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자주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만 혼자 남았느냐
너 없는 이 세상은 달 없는 사막이요
눈 오는 벌판이요, 불 꺼진 항구로다"

아내 떠나 보내고 외로웠던 세월 15년,
효자 자식들의 정성에도 눈치 세월 15년,
방안이 온 세상이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어머니가 그리우신가
구성진 노래가 방안을 적신다

아버지는 요즘 가끔씩 정신을 놓으신다
며느리의 밥상을 받고 ‘고맙습니다’ 하고
자주 오는 딸을 보고도 ‘누구십니까’ 하신다
멀리 미국에 살고 있는 큰아들의 전화를 받으면 목이 메여 말을 못하시고 가끔은 전화를 하셔서 말 없이 엉엉 목놓아 울기도 하신다.
한국에 효성 지극한 두 아들이 있고 딸이 있지만 항상 미국에 사는 큰 아들 생각하고 그래도 큰놈이 제일 효자라고 하신단다.
긴 세월을 외국에 살면서 이따금씩 전화만하는 무심한 큰 아들을 그래도 제일 효자라고 하신다니....
35년전 큰아들과 큰며느리 그리고 4살배기 첫 손자가 미국으로 떠나던 날도 만취하신 아버지가 큰 손자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시며 부르시던 노래가 이 노래라고 한다.
너 없는 이세상은 달 없는 사막이고 눈오는 벌판이라고-

15년전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를 보러 미국에 오셨다
같이 지내는 몇달 동안에 불행하게도 어머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 가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지금 뉴욕의 공원묘지에 누워 계신다.
청천벽력으로 아내를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 묻고 아버지는 혼자 쓸쓸히 한국으로 떠나셨다.
공항에서 출국장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의 마지막 뒷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도 보고싶던 큰 아들과 맏 손자를 보러 왔다가 아내를 땅에 묻고 혼자 떠나는 아버지의 처진 뒷 모습은 내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세대만큼 기구한 세대가 또 있을까?
구한말의 지독한 가난, 일제의 압제, 6.25전쟁, 피난생활 등등…
유난히 한이 많고 눈물이 많았던 아버지의 세대는 요즘의 떠들썩한 얕은 노래보다 마음의 고향같은 노래 “산홍아 너만 가고” 하는이 한이 서린 노래가 더 가슴에 닿는 모양이다.
나도 혹시 아내가 먼저 이세상을 떠난다면 이민생활의 밑거름이 되느라 한 많은 세월을 보내며 흘린 아내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산홍아 너만 가고” 이 노래를 아버지 대물림으로 부르게 될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한국에 있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 아버지가 금년을 못넘기실 것 같애’
왜 어떠하신데?’
그저 내 느낌이 그래. 형! 웬만하면 한국 한번 다녀 가
순간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몇 달전부터 라스베가스에 있는 큰 아들과 뉴욕에 살고 있는 딸,그리고 로스 안젤레스에 사는 막내아들에게 할아버지의 간절함과 아버지인 나의 설득으로 자식들과 어려운 합의를 이루어 내었다.
새로 직장을 옮겨 금년에 휴가를 받을 처지가 아닌 사위나, 세미나로 꽉 짜여진 스케쥴을 조정해야하는 큰아들이나, 지난해 부터 휴가도 없이 일하면서 전전긍긍하는 막내의 회사 사정이나 같은 날자로 휴가 스케쥴을 잡기는 모두가 어렵지만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5월30일로 날짜를 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동생에게 알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두달 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 내외와 손자 둘,손주 며느리 둘, 손녀에 손주사위까지 그리고 증손자 셋, 모든 아버지의 산홍이들이 아버지 뵈러 꼭 가겠습니다.

그러나 5월28일 아침 한국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 아버지가 방금 운명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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