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칼리의 아이들
박무일
'라스 베가스'에서 남쪽으로 다섯 시간 반 정도 차로 운전해 가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나온다.
높다란 담벽을 사이에 두고 한 켠에는 미국이라는 천국이 있고
다른 켠에는 목숨 걸고 이 담을 넘으려는 가난한 원래 이땅의 주인들이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멕시칼리' 시내로 들어가면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모텔들의 간판이 네온싸인으로 빛나고 값이 비싸 이곳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인 맥도날드의 노란 간판 m자가 높다랗게 미국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 멕시칼리에는 한국 선교사 내외분이 20년째 이곳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선교사 아내는 국경지대애서 옷장사를 하면서 남편의 구제선교 사업을 돕고 있다.
가끔 LA 등지에서 단기선교 목적으로 찿아 오는 교회가 있기는 하나 일회성으로 끝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영양식인 비타밀 30포와 약간의 간식을 전달했다.
앞으로도 매달 영양식을 30포씩 공급하기로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싣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영양식은 아이들을 위해서 너무나 필요한 것이었다며 몇번이고 고마워하는 선교사 내외분의 모습이 우리 일행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었다.
석양의 한 줄기 빛이 보육원 아이들의 방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다섯살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벙크 베드 아래층 침대에 쪼그리고 누워 있다.
가만이 소녀 옆으로 다가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서로 '하이' 하면서 미소와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 받았다. 조그만 고사리 손이 내 손을 꼭잡는다. 어둠이 깔려오는 방, 희미한 석양빛 속에서 반짝이던 커다란 눈망울의 그 어린아이가 지금도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이 아이들에게 영양식을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절실한 것은 이 어린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의 가슴에 이 세상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라스베가스'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우리 ASF 회원들이 가끔 방문하여 그들을 안아주고 생일이나 명절 때에는 사랑과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하고 사랑한다는 편지도 보내주자.
또한 한 사람이 한 아이를 맡아 그들의 앞날을 인도하여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볼수 있다면 한 인생을 살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곳 선교사는 그들의 앞날이 지금 환경으로는 볼을 보듯이 뻔하다고 했다.
이곳 보육원 아이들의 엄마는 거의가 가난을 대물림 받은 미혼모 들이라고 한다.
여자아이 나이가 열서너살이 넘으면 남자 친구와 어울려서 아이를 낳고 는 감당을 못하여 보육원 같은 시설에 버리고 행방을 감추어 버린다는 것이다. 현지 선교사는 그들이 예수를 믿으며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으로 살아 갈 수 있기만 해도 만족하겠다면서 우리도 그 뜻에 동참하겠다는 마음을 전하자 너무나 기뻐하시는 모습에 덩달아 기쁨이 차올랐다.
그래서 현지 선교사에게 우선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아이들과 일대일 사랑의 후원자 결연을 맺어주는 운동을 전개 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셨으니 또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하셨으니 이 일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내가 미국와서 힘들게 이민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의 어려움을 눈치채시고 스스로 돈을 빌려주신 어느 목사님에게 감동하면서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목사님에 대한 고마움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다. 그 목사님이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아이들에게 평생 가슴에 남을 사랑의 기억을 남겨 주고싶다.
통성기도를 하면서 목이 터지라고 "믿습니다,할렐루야, 아멘"을 외친들가슴에 사랑이 빠져버린 신앙, 행하지 못하는 신앙이라면 무슨 가치가있을까
최근에 읽은 "최인호의 인생" 이라는 글 중에 소개된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때의 기도가 나를 울컥하고 만들었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 남은 기간 동안 하나님께 얼마나 더 가까이 갈수 있을까 하는 것이 걱정 입니다.
이 죄 많은 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아 주실까.
나이와 함께 오는 여러가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견디어 내겠지만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영혼으로 서고 싶은데 그것이 제일 큰 걱정입니다."
같은 암병동에서 투병생활을 하고있던 최인호 작가의 멘트 또한 감동적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그 깔끔 하시던 분이 대소변 조차 혼자서 해결하지 못 할만큼 쇠약해 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2월의 추운 겨울 밤!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얼마나 고맙던지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나도 모르게 와락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여섯번의 항암치료를 받던 최인호 작가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올것이다.
그것도 그리 먼 훗날 얘기 같지는 않다.
부모로 부터 버림받은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주는 사랑의 후원자가 되어주면 어떨가?
그래서 훗날 주님께서 세상에서의 나의 행적을 물으실때 내가 사랑의 가슴으로 돌본 이 아이의 이름을 댈수있다면 잘했다 하시며 흐뭇해 하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