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LA에는 "라디오 코리아" 라고 하는 한인 방송국이 있다.
이 방송국 프로 중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며 무려 18년 동안 방송되어온 프로가 바로“박무일의 고국소식”이라 할수있다
오후 4시부터 한 시간에 걸쳐 방송되는 이 프로는 특히 50-60대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해설자 박무일씨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한국내의 핫 이슈들을 재미있고 날카롭게그리고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속이 후련하게 만들어 준다
미국에 사는 한국사람 치고 특히 장년층에서 박무일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내 이름도 그 유명한 박무일씨하고 똑 같은 박무일이다.
모임이나 교회에서 나를 소개하면 으례 그 박무일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분은 인기 탈랜트에게 하듯이 감동어린 눈으로 종이와 펜을 드리댄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 했을때 어느 모임에서의 일이다. 내 이름을 소개 받은 참석자 중의 한 분이 내가 아는 사람도 박무일인데...이것도 인연이니 통화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하며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대충 몇마디 하고는 나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얼떨결에“나는 LA에 사는 박무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과 같은 이름이고 또 선생님 팬입니다.”하고 인사를 했더니“와아! 진짜 반갑심더. LA 사람보면 꼭 고향사람 같심더.
언제 한번 만납시더.”하면서 반가워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데 고향이 어딥니꺼? 나는 대굽니더."
“아! 그래예 나도 대굽니더."
"목소리 봐서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나는 뱀띠입니더."
"나도 뱀띰니더. 그라모 우리 갑장이네.
가만가만!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십니꺼?"
“K고 예." 하자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야! 이거 보통 인연 아니네. 족보 한번 (선후배) 따져 봐야겠네”
"K고 몇 햅니꺼?"
"41회 박ㅇㅇ하고 동깁니더."
“그럼 내가 40회니 내가 한해 선배되네.
이거 보통 인연이 아닌데 내가 한해 위지만 일년 손해 볼테니까 우리 서로 말틉시더”
“ 그래도---”하며 후배되는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괜찮심더. 지금부터 니내돌이 한다. 괜찮제?
쇠뿔도 단숨에 빼라 캤다고 당장 만나보자.
거기가 어디고? 니 국시 좋아하나?
인사동에 안동국시 라고 있다. 묵을 만하다. 내가 대접할께"
이렇게 해서 두 박무일은 만났다.
만나서 따져보니 무려 일곱가지가 같았다.
이름은 물론 고향도 같고, 나이도 같고, 학교도 같고, 키도 비슷. 목소리도 비슷하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백년지기처럼 가까워졌다 . 그리고 또 뭐가 같은 게 있나 찾아보다가 우리는 또 놀라고 말았다. 같은 달 생일에 같은 달 결혼, 결혼한 예식장까지 같은 것이 아닌가! "야! 이거 이러다간 마누라 까지 같은거 아이가?
가만있자 자네 마누라 이름이 머꼬?"
이렇게 둘은 금방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그 후 내가 미국에 돌아 와서도 자주 통화를 하며 친분을 쌓고 있다.
에라! 내친 김에 박무일이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을 다 모아 박무일 써클이나 하나 만들어 볼까.
그래서 내가 회장이라도 하면 이 친구 박무일 보다 더 유명해지지 않겠나. 그리고 훗날 내 장례식에 수많은 박무일이란 이름이 적힌 화환으로 꽉 차면 참 재미있는 뉴스꺼리를 남기지 않겠는가.
동명이인이라 해도 경우가 다 같지는 않은 것 같다.
한 때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연쇄살인 흉악범 강아무개, 그 자와 똑 같은 이름을 가진 강 아무개가 우리 이웃에 있었는데
그는 죄도 없으면서 선듯 자기 이름을 밝히지도 못하고 괜히챙피해 하고 쑥스러워했다. 자기 이름 때문에 지나간 사건을 회상시킨다고 심지어 죄스러워 하기까지 했다. 이런 경우는 동명이인으로서 내 경우와는 분명 격(?)이 다르지 않는가.
또한 이런 경우는 어떠한가?
박정희,김대중,나훈아 같이 누구나 다 아는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경우에 누가 이런 사람들과 이름이 같다고 혹시 당신이 그분이십니까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까.
누가 종이와 펜을 들고와서 싸인이나 해 달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라디오 방송 때문에 많이 알려진 유명인과 이름이 같은 덕분에 나의 사회활동에서나 사교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같아 동명이인 덕을 톡톡이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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