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한 사람, 내 편

2021.05.26 16:35

노기제 조회 수: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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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촌 노기제

 

   “숨쉬기가........, 다 된 것 같다. 그간 고마운 게 많았다.”

   유언처럼 짧게 전해진 메시지에 심장박동이 기승을 부리니 나도 따라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해가 바뀌면서 부쩍 통증을 호소해 오던 작은 오빠가 보낸 카카오 톡 문구다.

   산다, 죽는다에 연연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오던 대로 살자. 가야 할 때가 되면 묵묵히 받아들이자. 뭔 호들갑이냐고 다독이며 인생의 마무리 작업을 돕고자 했던 시간들이 저만치서 웃음기 없이 나를 본다.

   친구 어머님 끝마무리도 혼신을 다한 기도로 해 드렸고, 나이가 채워지지 않은 환자들에겐 꼭 회복하기를 원해서 기도를 했다.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분명 병상을 털고 일어나리라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들은 고통스러워 불행한 얼굴을 내게 보이며 떠났다. 모두 다.

   환갑을 한 해 앞둔 시누님도, 시 아주버님도 병상을 털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내 정성어린 기도로 끝을 삼고 떠나셨다. 친정 엄마도 입맛 잃고 기운 없어 말도 못하시더니 내 마무리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거칠게 몰아쉬던 마지막 호흡이 기억난다.

   평화롭게 오빠를 설득한다. 오빠가 살아온 생활패턴으로 얻은 암이란 녀석을 두 번씩이나 제거 수술을 했지만 이젠 폐까지 점령했다니 호흡이 곤란한 결과야 당연한 것 아니겠나. 통증을 동반했다면 진통제로 피하고, 그도 아니면 몰핀 주사로 시간을 연장하다 끝나는 것이 순서니 그러려니 준비하도록 종용한다.

   시신 기증도 좋은 일로 마무리하는 방법일진대 선택 여부를 물었더니 버럭 언성을 높인다. “, 나 그렇게 금방 안 죽어.” 나랑 뜻이 맞아 죽을 준비가 잘 진행되나 싶더니 갑자기 거부반응이 나온다. 역시 남의 얘기에 내가 너무 깊게 간섭을 했나보다. 나 자신도 시신기증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 남편의 반응이 걱정스러워 서류를 건네지 못하고 있지않은가. 막상 끝 시간이 닥치고 보니 피하고 싶은 심정이 느껴진다.

   자식이 있으면 뭐하나. 남겨 줄 재산 없는 병든 부모 마지막 정리 정돈 맡아서 끝낼 자신이 없단다. 무섭기도 하단다. 감당 못하겠단다. 숨어 버리고 싶단다. 하물며 작은오빠 자식은 미국에 있으니 곁에 없다. 남은 핏줄이라곤 나, 나 하나뿐인데 나도 떠안기 싫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한 정치로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한국으로 오빠 마지막 마무리하러 가기 싫다.

   그래도 오빤데. 단 한 사람 내 편이 되어주는 친정 오빤데. 어찌 싫다는 소리가 이리도 금방 나올까. 비행기 타고 13시간 날아가서 마땅히 머물 곳도 없는 한국인데, 누구에게 연락해서 의지할 사람도 없다. 다행히 오빠 친구들이 주위에 여럿 있어 끝마무리 해주겠단다. 구태여 내가 가서 쩔쩔매며 고생하느니 오빠 친구들께 맡기면 안 될까.

   “, 팔순이 넘은 노인들이 뭘 해주냐. 요즘은 장례식 같은데는 가지도 않아. 할 수 없지. 무연고자로 정부에서 해줄 터니 넌 걱정하지 마. 우선 통증이라도 잡게 병원에 입원해야겠다.”

   오빠 속마음은 어떨까. 나라도 혼자 가서 곁에 있어 주다가 끝마무리 하느라 고생하더라도 오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난 확고하게 안 가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아예 오빠가 내게 부탁하지 못하도록 일찌거니 선을 그었다. 싫은 건 싫은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못 박고 그 외에 내가 뭘 해주길 원하느냐 묻고 있다.

   “, 됐어. 해주긴 뭘 해주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아무 걱정 하지 마.”

   여섯 살 터울로 여동생 생긴 후 작은 오빤 아마도 많은 시간을 나 돌보느라 애썼을 거다. 엄마 도와주려고 우는 동생 등에 업고 달래기도 했고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고 싶을 때 집에 잡혀서 나가지도 못했던 날들도 허다했을 텐데 그 많은 작은 오빠의 노고를 난 빚지고 있는 거다. 엄마 아빠 앨범에서 본 사진 중에 내 마음을 찌른 작은 사진 한 장. 오만상을 찌푸리고 울고 있는 애기를 자전거에 태우고 뒤에서 안고 어르고 밀어주는 오빠. 확연한 작은오빠 얼굴이다. 작은 오빠보다 두 살 위인 큰오빠는 나를 봐주는 모습이 어디에도 없다.

   어쩌나. 그래도 한국 나가기 싫은데. 아직도 남편보다는 내 편인 작은오빠. 죽지말지. 까짓 것 전신에 퍼진 암 덩어리 곱게 품고 같이 살지. 그냥 이렇게 카카오 톡하면서 내 편으로 남아있어 주면좋겠다 오빠야.

 

 

 

 

 

 

 

중앙일보 문예마당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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