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작사 첫사랑 작곡

2021.08.19 17:24

노기제 조회 수: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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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0                                           짝사랑 작사 첫사랑 작곡

                                                                                   노기제  

   쿵쿵, 두두근 두두근, 콩닥콩닥, 경고도 없이 예고도 없이 내 심장이 내게 전해주는 신호다. 더 다양하게 보내오는 소리가 감지되면, 어이없어 난처한 표정만 지으며 지켜보기 여러 번. 끝내 찾아 내지 못한 이유를 더듬다가 급기야 죽을병에 걸렸나로 마침표를 짓는다.

   몇 번이나 이런 증세를 경험했나. 구태여 이유를 밝히려 애쓰지 않는다.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양 볼이 발그레 물 드는 경우가 있다면, 그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어떤 음성이 나를 설레게 한다. 어떤 표정이 나에게 작게 이야기한다. 어떤 배려 한 조각이 나를 감동시킨다. 고마움이 살며시 물결치면 그만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제일 처음 이성을 좋아했던 기억은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다. 또래 보다 비교적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무엇보다 순둥순둥 조용한 성격이 나를 그에게 묶어 버렸다. 그 애도 나도 어떻게 반장, 부반장이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일 학년 꼬마들에게 민주적 투표를 시켰었는지, 1학년 2반 이순자 담임 선생님이, 그냥 시킨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같이 짝이 된 것도 아니다. 어디쯤 멀리 떨어져 앉았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딱 한 장면 투명하게 기억난다. 방과 후 청소시간이다. 빗자루를 보관해 두는 곳이 마루 한 귀퉁이를 열고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오래된 몽당비는 잘 쓸리지 않아서 불편하다. 용케도 새것 수수 빗자루가 몇 개 있다. 잽싸게 마루 뚜껑 열고 들어가 새 빗자루를 차지해야 청소가 쉽다.

   매번 후다닥 달려가 빼앗듯 새 빗자루를 차지하는 것보다 청소 끝난 후, 어딘가에 숨겨 두는 편이 확실하게 내 전용으로 만든다는 이치를 깨달은 건, 반장이 아니라 나다.

   날마다 청소를 하는 건 아니었을 터다. 분단으로 나뉘어 있으니 순번대로 돌아가며 청소를 했을 텐데 그런 건 다 모른다. 얼마나 자주 반장과 내가 그 마루 밑으로 내려가 앉은뱅이걸음으로 컴컴한 구석 커다란 기둥 뒤에 빗자루 두 개를 숨겨 두고 들락거렸는지도 기억에 없다.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들어가면 큰 기둥 뒤에 있는 빗자루를 꺼내기 전, 둘이 쪼그리고 앉아서 한 동안 숨을 죽인다. 청소 전이었는지, 청소 후였는지도 기억해낼 수 없지만, 바로 그때가 내 가슴이 콩닥거리던 순간이었음은 기억난다.

   그 시간이 있어 청소시간을 종일 기다렸었는지도 생각 안 난다. 몇 번이나 그랬는지도 모른다. 둘이 손을 잡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기억도 없다. 오래 그러고 있고 싶어 했다. 누가 먼저 이젠 그만 나가자고 했는지도 까맣다. 지금도 그 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이 학년 되면서 주일이와 난 딴 반으로 나뉘었다. 육 학년까지 다시 한 반 되어 만난 적 없다. 교실 밖이나, 학교 밖에서 그 애를 만났던 기억도 없다. 어쩌면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까맣게 색칠된 시간들 속에 서울 청계초등학교 6년을 마치고 졸업했다.

   가끔 중간에 전학 가는 아이도, 전학 오는 아이들도 있다. 6년을 꾸준히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가정환경이 그리 쉽지는 않다.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하고 어떤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었는지 주일이가 일 차 입시에 실패했다는 소문을 스쳐 들었지만, 확인할 마음도 방법도 없었던지, 그렇게 잊혀진 내 첫 짝사랑 김주일이다.

   남녀 각 세 반씩 떨어져 공존하던 중학 생활 중에도 특별히 주일이를 생각했던 기억은 없다. 보고 싶었다면 같은 학교 다니던 초등학교 때 찾았어야 했다. 어느 중학교에 입학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를 새삼스레 생각하고 그러기엔, 너무 어렸다.

   중학교 이 학년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나? 마침 사범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교생 실습 중이었다. 역사과 졸업반 김건흡 교생 선생님과 함께, 방과 후 귀가 길이다. 성동역에 있는 학교에서부터 걸었는지 동대문까지 전차로 이동 후 을지로 방향으로 갈아타려 걸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를 향해 가던 길, 청계천을 통과하던 중이다. 북적이는 인파로 교생 선생님과 제법 어깨가 스치는 거리로 무슨 얘긴지 유쾌하게 떠들며 걷고 있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무척 가까운 사이로 진단 내렸을거다.

   순간 인파를 뚫고 재빠르게 내 앞을 가로막은 물체. 내 시야에 확 들어온 흰 교복 상의에 붙어 있는 명찰. 김주일. 얼굴도 안 봤다. 단지 명찰만을 내 눈앞에 들이대 놓았다. 옛날 초등학교 마루 밑에 보이던 커다란 기둥의 밑둥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듯 지나는 나를 가로막고 우뚝 멈춰 섰다.

   옆에 걷고 있던 교생 선생님도 알아채지 못한 짧은 순간으로, 난 그 아이를 살짝 피해 계속 걸었다.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머릿속이 까맣게 불이 꺼져 있었다.

   육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난, 그날의 그 장면을 선명하게 보고 있다. 어쩜 나만의 짝사랑이 아닌 우리 서로의 첫사랑이었나 의심이 든다. 보고 싶다. 만날 순 없을까? 1959년 청계초등교 졸업 김주일. 꼭 생존해 있기를 소망하며,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나 주면 좋겠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의뢰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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