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다 그런거지 뭐

2021.08.16 22:34

노기제 조회 수: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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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6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설촌

   건강하게 편안하게 잘 살고 있을 때, 남의 불행을 엿보며 무심코 내 뱉던 말.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괜찮아. 잘 되겠지. 잊어버려. 하며 획 돌아서곤 했다. 무책임하게 건네던 말들이 뾰족한 촉을 세우며 내 가슴을 향해 달려올 태세다. 글쎄다. 내게 불어 닥친 불행 앞에서 과연 아무렇지도 않게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라고 툭 던질 수 있을까?

   얼마 전, 본인의 죽음을 예상하고 차근차근 필요한 사항을 준비하던 작은오빠가 밝은 톤으로 들려준 한마디에 위로를 느끼며 안심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이든 사람 떠나고 새로운 생명 태어나고 순환이 잘되어야 살맛 나는 세상이지, 늙어 죽지 않고 계속 살겠다고 욕심부리면 세상이 어찌 되겠냐. 걱정하지마. 팔십이면 충분히 내 몫은 산거야. 삼십 전에 떠난 큰오빠, 육십 오세에 가신 아빠, 환갑에 아쉽게 이별한 엄마. 단명한 가족력에 비해 너나 나나 오래 살고있는 거잖아. 감사하지. 그러니 나 떠나는 것 슬프다 여기지 마라.

   확실한 날짜와 시간은 몰랐어도 예상되었던 이별이라 슬픔이란 생각은 없다. 생일까지 견디고 팔십 세를 꽉 채운 닷새 후, 편안히 눈 감았다는 오빠친구 병원장님의 카톡 메시지를 받고, 훅 치고 들어오는 펀치에 울음이 터진다. 이별에 따라오는 눈물은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마지막 정리. 곧잘 입으론 재잘대면서 실천에 옮기려 하면 막막해진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하나? 옷장부터 열어 본다. 옷가지야 두고 떠나면 아무나 처리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내겐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할 것들이란 압박이 크다.

   엄마도 작은오빠도 자신이 입고 갈 최상의 의상을 준비했던 걸 보면 중요할 수도 있겠다. 또 뭐가 있지? 영정사진. 작은오빠 사진은 최고로 근사한 모습을 준비해서 액자에까지 넣어 보관되어 있었다 한다.

   취업용으로 마련한 명함판 사진 찾아와서, 나 죽거든 영정사진으로 쓰라고 농담을 남긴 큰오빠는 만 28세로 떠나며 그렇게 영정사진을 준비했다. 엄마는? 아빠는? 특이 사항이 없다.

   은행 통장과 현금과 우편환 등 꼼꼼하게 정리되어 남은 사람이 쉽게 마지막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남겼단다. 낯설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동안에 오빠 자신의 사후를 온전히 꾸며 놓는다는 행동이. 그러나 나도 해야 한다.

   내 돈이니 내가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빠져나오자. 애 저녁에 내 것 아닌, 하나님 것이려니 생각하며 나누고 살기를 잘했다 싶다. 그럼에도 잘 정리해서 인수인계 할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늘에 지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쌓인 것이 너무 많다. 내 맘에 좋을 대로 나누며 산다고 살았다. 그것도 욕심이었다. 내게 예쁘게 보인 사람에게만 베풀었던 것.

   병자년 2020 1223. 마지막 남았던 한 사람 내 편은 떠났다. 결국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라던 작은오빠의 음성으로 시린 가슴 덥혀 본다. 이 겨울이 유난히 춥지 않기를 소망하며 오빠와의 카톡 대화를 열어 읽고 또 읽고 사진들을 클릭클릭 크게 늘리며 본다.

그런데 오빠야, 이렇게 나 혼자 남고 보니, 인생이 다 그런건 아니란 느낌이 들어 울고 있는데, 오빤 거기서 엄마랑 아빠랑 또 큰오빠랑 다 같이 만나서 다시 가족을 이뤘으니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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