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참 뜻을 다시 보았다

 

지난주가 예수 부활 주간이었다. 그날 밤 성당에 다녀온 딸아이와 우연히 장애인 성직자인 윤석인 수녀 얘기를 하면서,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넉넉한 얼굴로 전동 휠체어에 누워 비틀린 손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그분의 속삭임을 새로 들었다.

 

윤석인(尹錫仁)1950년생이다. 환갑도 중반이 지난 나이였다. 그녀는 가톨릭 2000년 역사상 첫 장애인 수녀로써, 일상을 늘 바닥에 누워 사는 장애인이다. 열세 살 이래 서서 걸은 적이 없는, 소아(小兒)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뼈마디 연골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몸이 굳어버린 중증 장애인이었다.

 

당시의 한 언론사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녀는 또한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휠체어에 누워 비틀린 조막손으로 붓을 놀려 그림에 몰두함으로써 뼈마디를 후벼 파는 고통과 세상으로부터 절연된 고독을 극기한다고 했다.

 

기자에 의하면, 그녀에겐 열세 살 때부터 동무도 없고 바깥나들이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사다주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 완역본을 읽고 철학 책을 읽었다. 처음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책에 미친 듯이 몰입하니까 나중에는 다 이해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20대까지 책에 미쳐 살았다. 너무 억울해서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농약을 먹을까? 자동차에 치어 죽을까? 목을 매? 동맥을 끊어?' 별의별 자살 기법을 연구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은 그런 맹탕을 보듬어 준 존재였다. 딸이 방안으로 숨어들던 날 아버지는 걷지 못하는 딸을 위해 모든 종류의 가족나들이를 중단하고 그녀의 그림자가 되었다. 엄마는 공예학원에 등록해 그날그날 배운 내용을 집에 돌아와 딸에게 가르쳤고, 올케는 그림 그리기를 권했다. 그래서 공예와 그림을 배웠다. 6개월 동안 아그리파, 줄리앙 석고 데생을 했다. 그렇게 엄마를 그렸고 사진을 보며 풍경도 그렸다. 그런데 2년 만에 슬럼프에 빠졌다.

 

"꽃 하나 잘 그린들 무슨 소용인가, 그런다고 내가 역사에 남을 사람이 될 수도 없지 않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상에는 없다"는 절망에 죽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어둠 속으로 침몰해갔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20대에 읽은 기본스 추기경이 쓴 교부들의 신앙이란 책이었다

 

"나 성당 갈래" 1982년 어느 날 딸의 부탁에 불교신자인 엄마가 동네 복덕방에 물어물어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은 통신으로 교리학습을 하도록 배려했고, 얼마 후 신부가 집으로 와서 영세를 했다. 세례명은 '보나(Bona)'. 라틴어로 '좋은'이라는 뜻이다. 윤석인은 "절박한 영세였다"고 했다. "신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너무 어두우니까 오로지 빛을 찾겠다는 그런 절박감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19년 만에 처음으로 성당 봉사자들을 따라 나들이를 했다. 미술관도 가보고 소풍도 갔다. “나를 위해 기도해줘요" 그때 야유회에서 만난 박성구 신부는 그녀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했다.

 

이 내가 남을 위해 기도를 한다구?” 그 순간 그녀에게 씌워있던 모든 어둠이 소멸되었다. 책도 다시 읽고 그림도 되살아났다. "가족의 동행(同行) 으로 감내한 인생, 서른두 살에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고 동행하며 나를 살려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나도 없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박신부는 늘 이렇게 말했다.

 

"골방에서 울면 뭐하는가, 기왕 울려면 거리에 나와서 울어라면서 "수녀가 되어보라" 고 권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드디어 199212월 김수환 추기경의 허락을 받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작은 예수수녀회'가 창립되었고, 장애인 윤석인과 비장애인 3명이 수련 수녀로 입회하여 그후 1999년 종신서원을 하고 정식 수녀가 되었다. 가톨릭 2000년 역사에서 처음 탄생한 사지 마비 수녀였다. 그녀는 말했다.

 

"두 팔을 반 정도 펼 수 있어서 숟가락과 젓가락 사용하여 밥을 먹을 수 있고, 머리가 가려울 때는 앞부분을 긁을 수 있고, 눈곱을, 귀지를, 콧속을 청소할 수 있고옆으로 눕기 5, 엎드리기 5분을 할 수 있고등을 45도 각도 정도로 구부릴 수 있는 축복왜 내가 장애를 갖게 되었는지, 이제 그 뜻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축복이다"

 

그녀는 내 가슴 속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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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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