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춤 . 2
2016.11.03 07:23
시간의 춤 . 2
손 용 상
저만큼 허공에서
잠자리 한 마리
시간의 線 위에 머물러 있다
사부작사부작
가끔 소리 없이 흔들리는 나래 짓
시간을 거르며
슈만이 아이들의 어깨를 타고
꿈을 일깨운다
창 바깥 숲 길은
환상의 나라가 되고
트로이메라이 선율 따라
아가들은
날개 달린 천사가 된다
다시 가을
창공엔 꽃 무릇 같은 깃털 구름
지나간 시간 새삼 내게로 다가와
나는
무엇보다 귀한 손주들과 함께
다시 날개를 퍼득이려 한다
너...
아직도 천사가 되고 싶은가? *
2016년 10월
댓글 4
-
Chuck
2016.11.03 09:43
-
Chuck
2016.11.04 03:26
김동길 교수님 말씀정말로 모든 것을 다 대통령에게 책임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무리한 요구일 것입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도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제35대 대통령 존-에프 케네디의
Ask not what your country,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말이 기억납니다.
"아~ 5.16. 신의 은총이 이 땅에 내린 날"박정희 장군이 제대를 하고,
사회에 나와 자신의 고향인 대구 근교에서 여당이던,
야당이던 국회의원에 출마 하였으면 당선이 되었을까?
99.999 % 낙선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박정희가 누구 인줄
대구 시민들은 몰랐다.
당시는 금품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고무신, 막걸리, 국밥, 양은냄비,
비누, 수건 등을 뿌리지 않으면 당선은 언감생심꿈도 못 꾸던 시절 이었다.
당시 박정희가 돈이 어디 있었나?
청렴강직하기로 소문이 났던 박정희가 무얼 뿌린단 말인가?
당선은 택도 없는 소리이다.
대선출마? 미쳤나?
박정희가 이런 바보짓을 하지 않은 게 오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60년 전통 야당을 운운하는 자 들에게는 비극이요,
재앙인 일이었다.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5.16을 맞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재삼 생각해 보아도 박정희가 선택한 구국의 용단은 옳았고
그래서 우리는 박정희 이름 석자 앞에 위대한 이라는
형용사를 아낌없이 붙인다!
위대한 박정희의 등장에 최대 피해자라고 자처하는 60년 전통 야당의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좌파들은 사실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 이기는
마찬가지 이다.
왜냐 하면, 박정희가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
싸우면서 건설하자고 당시 국민들과 피와 담을 흘릴때,
당시 야당 정치인, 좌파들은 박정희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반대,
발목잡기에 혈안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한 일도 없이 그들도 뒤로는 역시 부자가 되었지 않는가?
박정희가 공업정책을 세우면,
농업정책이 우선이라고 거품을 물었고,
고속도를 딱는 현장에 당시 김대중은 땅바닥에 들어 누워
발광을 한 것은 당시 신문보도,
사진으로도 남아 있지 않은가?
그때의 야당 정치인들과 오늘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정부의 3년여 동안
반대와 발목잡기에 혈안인 야당과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독자들 중에 누가 한 번 대답 좀 해보시라!
위대한 박정희는 당시 오늘과 같은 반대를
제 2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신을 일으켜 기여코 한강의 기적을 창출케 했다.
정말로 위대하고, 또 위대했다.
이런 말은 글이나 쓰고, 말이나 해서 먹고 사는 이 나라 언론인,
평론가,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못하는 말이다.
우리 같은 쫄장부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혹자는 박정희를 공과를 따져가면서 평을 한다!
혹자는 박정희가 민주 질서를 파괴한 독재자라고 악평을 한다.
정말 구상유취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다.
박정희는 우리 민족 5천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돼지고기 국에 흰 쌀밥을 싫컨 먹어 보는 게 소원인
위대한 수령의 나라 북한을 보라!
조선의 딸들이 되넘의 늙은 총각에게 씨받이로,
노리개로 팔려가는 어버이 수령의 북한을 보라!
수백만의 주민을 굶겨 죽인 위대한 원수,
김일성 동지가 만든 지상 낙원을 보라!
최고 존엄의 그림자를 밟으려고 했다고 기관 단총세레에 화염방사기
추가 써비스를 해주는 떠오르는 태양 김정은의 나라를 보라!
박정희의 공과가 어떻다고?
박정희가 민주 질서를 파괴한 독재자라고?
인간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비록 입은 삐뚤어 졌어도
말 만은 바로 하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을 해결해주고,
오늘 세계에서 12번째로 잘살게 해주고,
세계 5대 첨단공업국,
6대 무역강국,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준 위대한 박정희를 욕하는 자들은
인면수심의 동물 같은 자들이다.
위대한 박정희는 모든 것을 혼자 질머지고 저승세계로 갔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인간들!
너희들은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완벽한 인간이길래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찾냐?
도대체 너희들의 민주주의는 뭐냐?
너희들 좌파 정권 10년 동안 무얼 했냐?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다!
5.16은 신이 한국인들에게 박정희를 앞세워서 준 은총이다.
위대한 박정희의 명복을 정중히,
진심으로 빈다.
독재자 세종대왕[군사쿠테타]" 세종은 독재자였다.
反민주적이었다.
세종은 노예제도를 지지했다.
세종은 지배계급인 양반들을 지지했다.
소수의 착취계급과 다수의 피착취계급으로 구성된
불평등한 신분제도를 지지했다.
거대한 장원과 수많은 노비들을 거느린 부르주아 귀족들을 지지했다.
세종은 황해도 일대를 재산으로 가진엄청난 부동산재벌이자 不在지주였다. 세종은 골육들을 죽인
살인마 태종을 아버지로 두었으며,
침략자 명나라를 정벌할 군대를 돌려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찬탈하고
高麗왕족 王씨들을 학살한 살인마 이성계를 할아버지로 두었다.
즉, 세종은 요즈음 친일파에 해당하는 親元派의 후손이다.
세종은 침략자였다.
국경지역에 살던 여진족 주거지역에 쳐 들어가 여진족을 다 몰아냈다.
세종은 호색(好色)·호육(好肉)하였다.
첩이 5명이나 되고, 자식은 18남4녀로 22명이나 두었다.
비만한 몸으로 종합병동이라 할 정도로 전립선 질환,
당뇨병 등 온갖 질병을 몸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육식을 몹시 즐겼다.
세종은 자식교육에 실패해 아들 수양이 손자 단종을 죽이게 만들었다.
단종은 방에 갇혀 펄펄 끓는 방 구들에서 타 죽었다.
요즈음 같으면 큰일 날 일이다.
아들들 병역문제로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이회창을 보라.
사위 마약문제로 곤욕을 당하는 김무성을 보라.
세종은 측근관리에 실패했다.
큰형 양녕대군이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악행을 저질러 지방관들로부터
장계(狀啓)가 빗발쳐 올라왔으나 처벌하지 않고
끝까지 형을 비호(庇護)했다.
그래서 양녕대군은 “왕(충녕대군)과
부처(효령대군)를 동생으로 두었으니,
살아서는 감옥에 갈 일이 없고 죽어서는 지옥에 갈 일이 없다”
고 큰소리쳤다.
세종에 대한 上記 부정적인 평가는
요즈음 기준으로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아무도 세종대왕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할까? 그건 지금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시대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전(全)세계 어디나 王政을 했기 때문이며,
다른 나라 왕들과 비교해 보면 세종은 훌륭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 세상에 악마 아닌 사람이 없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폭군이 아닌 통치자가 없다.
하지만 통치자는 사람인 이상 불완전하므로,
우리는 통치자를 지금이 아니라 그들이 살던 시대와 환경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36년의 식민지배와 3년의 軍政을 거친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던 지난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당시의 선진국들이 아니라 당시에 독립한 수많은 신생독립국들과
비교하는 것이 순리이다. 초등학생을 대학생과 비교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시작도 훌륭했고 산업화 시작도 훌륭했으며,
산업화 성과도 훌륭했고 민주화 성과도 훌륭했다.
67년 만에 기존의 수백 년 전통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들턱밑까지 좇아갔다.
100여개 다른 신생독립국들은 모두 까마득히 저 밑에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턱없이 높은 기준으로 대한민국 초창기의 ‘
민주주의의 수준과 산업화의 공’을 폄하하는 것은일종의 과대망상이다.
그렇게 뛰어난 민족이라면,처음부터 가난하지 말고 또 식민지도 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건 나라이건 겸허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처지와 능력을 평가하고
주어진 상황 아래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세종대왕 시대의 관료들만 먹던 동빙고의 얼음을 박정희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먹을 수 있는 냉장고를 만들었다.
입만 열면 초창기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는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잘났는가?
韓民族에게 도대체 무슨 기여를 얼마나 했는가?
"軍事 쿠테타가 必要한 事態" 현직 대학교수가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반세기전 했던
군사쿠데타가 다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하봉규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달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군사쿠데타가 필요한 사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하 교수는 "반세기전 4·19(혁명) 이후 출범된 장면 정부는
신파와 구파라는 당대 갈등으로 식물 정부가 됐고,
자유당 이래로 관행화된 언론, 대학,
야당들의 무책임이 극에 달해 군사 쿠데타를 불러왔다"고 밝혔다.
이어 "50년 전 군사쿠데타가 필요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반세기전 정치부패와 민생파탄에 빠진 조국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사쿠데타를 선택했고,
이후 조국근대화의 위업을 달성했던 자랑스런 국군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주의가 아무리 높은 가치일지라도 조국안위보다
높을 수는 없다"며 "질서와 교양이 포기되고 범죄와 패륜이 판치는
사회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진 1987년 이후의 상황에 대해
"민주화 25년은 반 영웅이 대통령으로 민주주의가종북 친공으로 변질된 전도와 반역의 시도였다"며 "가치관이
전도된 미쳐버린
조국을 구할 애국군인들이 다시 한 번 나설 때"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1979년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이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이 다시 일어날 분위기"라는 내용의 글도 올렸다.
그는 "지금 감지되는 기운은 10·26의 냄새다.
지금 국난의 상황은 청와대가백설공주와 7난장이 놀음을 한가하게
허용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비상계엄과 국회해산이냐 아니면 처참한 종말이냐
오직 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한국은 쿠데타를 한 번 경험해봤기 때문에 한 번 더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며
"지금은 1997년 구제금융위기 때보다더 안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쿠데타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생각해야 한다 뜻"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1992년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저서로는 < 국가경영: 국가개조의 리더십>,
<한국정치와 현대 정치학> 등이 있다.
"첨언하는 말" 이런 생각을 하봉규 교수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
종북세력이 이렇게 난동치는 것을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서국민의 자유의사 선거에 의해서
당선된 대통령을 사퇴하라는 세력은 전부 잡아서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선거와 부정선거 운동은 다른 것이다.
인터넷에 쪽지 글 단 것은 부정선거 운동이냐,
아니냐를 가릴 일이지 부정선거가 아니다.
이것을 부정선거라고 하면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나라를 망치자는 것이다.
자유도 좋고, 언론도 좋지마는 헌법을 부정하고국법질서를 부정하는
종북세력은 이 나라에는 필요 없는 인종들이다.
자기 개인의 출세욕, 무리들의 출세욕 때문에
국가를 망치는 세력들은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자유가 좋고, 언론의 자유도 좋다.그것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고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국가의 안녕질서와 국민의 권익을 위해서국권을 훼손하는 무리들을 척결할 때가 왔다.
이것을 그냥 두면 개미 구멍으로 방천이 무너지듯
국가가 위험해진다. 설마 하지마라.?
설마가 사람 잡는다.
나라가 상처를 받으면 우리민족이100년~200년이 걸려도 회복하기 힘든다.
세계의 역사를 보라.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 만에 나라를 찾았는가.
국정원은 더 강해져야 한다.
이스라엘 에는 유명한 정보기관 <모사드>가 있다.
이 <모사드>가 있기 때문에 아랍제국의 협박과 압력 속에서
건장히 살아간다.
이스라엘 국민은 <모사드>가 있어서나라를 지키고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조국을 위해서 궐기하자.
이 혼란한 나라를 구해야 한다.
군사 쿠테타가 오기 전에 우리나라를 재건하고 구해야 한다.
종북세력 제거하고 조국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는 것도 애국자다.
장성택이 처럼 육신을 벌집을 만들고재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사람은
종북을 하라. 차라리 종북의 본거지로 가라.
잠에서 깨어라.
기지개를 켜라. 내일이면 늦다.
오늘부터 하자.
국민들이여! 조국을 구하고 민족을 구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그가 어릴 때 그를 등에 업고 다니며,
극진히도 돌봐주시던 누님이 딱 한 분 계셨다.
동생이 대통령이 되었을 당시 누님은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어렵게 살아 올케가 되는 육영수 여사에게
좀 도와 달라고 어려운 부탁에 편지를 보냈다.
이를 받은 육 여사는 친·인척 담당 비서관에게 이 편지를 건네 주었다.
당시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기생이었고,
박 대통령의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박 대통령 모르게 은행에서 대출을 알선해
(일종의 압력이었음) 박 대통령 누님의 아들에게 택시 3대를 사서
운수업으로 먹고살도록 주선을 해 주었으나,
나중에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박 대통령은 大怒해서
친구이기도 했던 담당 비서관을 파면하고,
택시를 처분함과 동시에누님과 조카를 고향으로 내 쫓아 버렸다.
이 조카는, "삼촌! 대한민국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습니다."
라며 울먹이면서 대들었지만,
박 대통령은 단호하게 고향으로 쫓아 버렸다.
누님의 원망을 들은 박 대통령은
"누님 제가 대통령 그만두면 그 때 잘 모시겠습니다."
며 냉정하게 누님을 외면했다.
그 후 누님은 할 수 없이 대구에서 우유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대통령인 동생을 원망하면서…
단 한 분 그것도 자신을 극진히 돌봐 주시던 누님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대통령이 된 지금 이렇게도 냉정하게 뿌리친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총을 들고 혁명을 일으킨 진정 메마른 눈물을 가진
독재자였기에 때문에 감정 없는 그런 인간이었을까?
피를 나눈 혈육의 정까지도 마다하고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며,
사리사욕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관이 확실한 애국심을 가지고
이 나라 4,000만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탁월한 영웅,
대한민국 역사 이래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라!
후임 지도자들을…
그 누구 하나 부정부패 비리로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지도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며,
지금까지도 전직 대통령들의 자식들이 감옥에 가 있음을…
박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단 한 번도 친인척
그 누구도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고,
청와대 초청 한 번 안 했으며,
박 대통령 자녀 중 누구도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지도 않았고,
단 한 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았으며,
특혜도 베풀지 않았다.
인간이 재물에 대한 욕망은 그 끝이 없음이 현실이다.
그러나 재산은 죽은 후 주머니에서
십만 원과 고물시계를 팔에 차고 있었던 것 뿐이였으며,
그 이상 발견된 것이 없다.
단군이래 대한민국 지도자 중,
단 한 건에 비리도 없었던 박 대통령 말고
또 그 누가 있었다면 말해 보라.
대통령은 커녕 출세했다, 장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 자식 취직자리부터 먼저 챙기는 썩어빠진 것들이 개혁을 외치며,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단점만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어찌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이 어찌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말이다.
참으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초등학생 불러다 놓고,
이같이 설명하며 물어봐라.
대한민국 역사 이래 누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요
훌륭한 지도자였느냐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는 자들아…
박 대통령 사후 지난 수십 년 간
그의 정적들이 박 대통령을 깎아내리려
눈에 불을 켜고 비리를 찾아보려 했으나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역사를 똑바로 세워야 된다며 친일파 청산이란 명제 하에
박 대통령을 몰아붙이고 연초부턴 한일 외교 문건과
문세광 비밀문건을 공개, 흠집 찾기에 몰두하더니,
화풀이 분풀이 욕구 해소라도 해야겠다고
박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운현각'
'충의사' 현판을 뜯어내고 부시고 뽀개고
빠개고 하는 것이란 말이더냐…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좌파들이 박 대통령을 헐뜯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며 매도하려 발버둥치는 것을 보니,
혈육의 정까지도 냉정하게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청렴결백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이 나라에 진정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보릿고개 굶주림은 박정희 대통령 때 없어졌고,
간첩잡자'는 말은 김대중, 노무현 때 없어졌다." -
김동길 교수 - ※ -
Chuck
2016.11.04 05:31
오규원(오규옥)출생 1941년 12월 29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사망 2007년 2월 2일 직업 시인, 교육자 국적 대한민국 장르 시 대표작 <한 잎의 여자> 수상내역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오규원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퍼센트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질환을 앓다가
2007년 겨울에 타계하셨다. 나는 시인의 죽음이 물론 안타까웠지만 그보다도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쓰셨다는 시가 가슴 깊이 남아있었다.
그는 임종 직전에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라는 마지막 시를 남겼다.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품은 시인이었다.
<한 잎의 女子1>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87)에 실린 작품인데, 그 당시에 많은 연인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옮겨 보내곤 했다고 한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땐 약간 흘러간 유행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여자, 여자 하고 자꾸만 반복되는 시구가 자꾸만 입에 맴돌았다. 이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 시를 사랑했던 여자의 모습들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의 시, 혹은 헤어진 후에도 뒷방에서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리며 여자에 대한 서운함을 가진 남자의 푸념의 시로 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이 시의 묘미는 읽으면 읽을수록 여자에 대한 이미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언어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는 것이었다.
시인은 죽어서 시를 남긴다는 건 틀린 말이다. 시인은 죽어서 시가 된다. 시가 되어 돌아온다.
지난 여름 병석에 누운 시인의 ‘불 타는 오후다’라는 시를 어느 시인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망연자실했다.
그때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아껴둔 동반시다. 동반시에 대한 시평이 기막히게 좋다.
시는 더 좋다.
잊지 말고 작성산의 정상에서 충주호를 바라보며 이 시를 읊자. 충주호같이 아름다운 호반을 닮은
여자를 생각하며. 이런 女子 하나 가슴에 품지 않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다.
이런 女子 하나조차 가슴에
품지 않은 남자 아닌 남자가 읊어라. 가을처럼 읊어라.
한 잎의 여자
오 규 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끄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나는 정말로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https://www.youtube.com/embed/0KJ60uJZ3-Q"
[출처] 오규원/ 생애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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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yongsang
2016.11.04 12:13
오규원씨를 아시나요? 70년대 태평양화학 근무할 때 제 사수였죠. 좋은 시인이었지요. 갑자기 죽은 그 분을 최선생님이 떠올려주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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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시 / 겨울 斷想 . 2 | son,yongsang | 2016.12.03 | 40 |
» | 시간의 춤 . 2 [4] | son,yongsang | 2016.11.03 | 187 |
40 | 시간의 춤 . 1 ㅡ아내룰 위한 序詩v [3] | son,yongsang | 2016.11.03 | 109 |
39 |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돌아본다 [7] | ysson0609 | 2016.09.18 | 212 |
38 | 천사여, 고향을 보라 | ysson0609 | 2016.05.08 | 148 |
37 | 윤회(輪廻) ㅡ소이부답심적한(笑而不答心積限) | ysson0609 | 2016.04.04 | 451 |
36 | 진정한 ‘부활’을 다시 보았다 | son,yongsang | 2016.04.04 | 17 |
35 |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 son,yongsang | 2016.03.25 | 42 |
34 | 우리가 사는 이유 | son,yongsang | 2016.01.13 | 78 |
33 | 겨울 素描 | son,yongsang | 2015.12.24 | 49 |
32 | 나의 고백 . 2 [2] | son,yongsang | 2015.10.18 | 171 |
31 |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 son,yongsang | 2015.08.14 | 27 |
하루의 시작은 빈 그릇
작아지기도 하다가
커지기도 하는 빈 그릇
보이지 않는 그 그릇에는
보고 느끼고 겪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
모든 것이 담긴다
주워 담아도 담아도
양(量)이 차지 않을 때도 있고
저절로 넘쳐흐를 때도 있다
희로애락이 기웃기웃거리다
가끔은 기분 좋은 것만
때로는 슬프디 슬픈 것만
채워지기도 한다
지워버려야 할 것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꿈속에서도 들락날락하다가
아침이면 다시 빈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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