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탁 예설라(矩矩托 禮說羅)‘

 

어제 그제가 붉은 원숭이 운운 하면서 희망(?)을 품던 2016년 병신년이 문자 그대로 나쁜 뜻의 한해로 변해 온 나라가 들끓으며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새해가 왔다. 날마다 일상적으로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만, 그래도 새해가 되면 한번쯤 그 해의 유래와 운세를 챙겨보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2017년은 정유년으로 붉은 닭(;)의 해라 한다. 정유(丁酉)는 육십 간지 중 34번째로 닭은 인간들에게 알과 고기로 보시(布施)를 하며, 수탉은 새벽이면 목을 길게 빼 울음으로 여명을 알리는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닭 울음은 시보(時報)의 역할을 하였고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엔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또한 닭의 울음소리는 벽사(辟邪)의 기능을 가진다고 하여 닭이 제때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일테면,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다고 하고 밤중에 울면 불길하다고 생각했으며, 수탉이 해진 뒤에 울면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긴다고 했다. 특히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제사를 거행했다. 새벽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돌아가고, 잡귀들도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닭은 선조들의 삶의 일부요, 온 가족이 함께하도록 돕는 덕금(德禽)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경(詩經)에 따르면, 닭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1,400년대에 이미 중국에서 닭을 키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인도, 자바, 말레이 반도 등지에 서식한 꿩에 가까운 닭을 양계(養鷄)로 키운 데서 비롯되어 그것이 서방으로 전해지면서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를 거쳐서 여러 나라로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의 닭에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진시대에 작성된 중국의 정사 삼국지에서 전해진다. 정사(正史) 삼국지에 의하면 한나라에 꼬리가 가는 닭(細尾鷄)이 있었는데, 그 길이가 다섯 자로 지금으로 따지면 115cm 정도가 되었다고 전한다. 남북조시대에 작성된 후한서에서 이것을 꼬리가 긴 닭(長尾鷄)으로 고쳐놓았다는데, 아마 이것은 전설의 새인 봉황(鳳凰) 새의 미화가 아닐까 싶다.


삼국유사에도 닭의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4권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신라를 구구탁 예설라(矩矩托 禮說羅)’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구탁은 닭이고 예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닭을 귀히 여기는 나라라는 뜻이다. 신라는 닭 신을 공경하여 높이기 때문에 관에 깃을 올려서 장식했다. 이것은 절풍(折風)에 새 깃을 꽂아 장식하는 조우관(鳥羽冠)이나 조미관(鳥尾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창세 신화 중에 전하는 무속(巫俗)모음인 천지왕본풀이서두에 보면, 태초 혼돈 속에서 천황 닭이 목을 들고, 지황 닭이 훼를 치고, 인황 닭이 꼬리를 치며 크게 우니 동방에서 해가 떠오르며 세상이 열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아침에 우는 닭의 특성에서 기인한 일종의 토템 신앙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닭을 조류 숭배신앙에서 받들던 하늘 새(봉황)와 동일시 한 신앙적 유래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닭에 대한 옛 신화적 서술보다는, 실제적인 것은 중국 노()나라 애공(哀公)의 신하 권요가 쓴 계5(鷄五德)이 표상적으로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닭에 대한 풀이였다. 예컨대, 첫째는 문(-머리에 있는 붉은 볏은 관()으로 선비의 표상인 벼슬을 나타 냄). 둘째는 무(-날카로운 발톱은 싸움의 무기를 나타 냄). 셋째는 용(-적을 만나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기백을 나타 냄). 넷째는 신(-새 시간, 새 날, 새 세상이 밝아 옴을 알려주는 시의성). 다섯째는 인(먹이는 발견 모두를 불러 서로 나눠먹는 배려를 나타 냄)을 나타내고 있다고 풀이한다.


거두절미, 신화적이든 실제적이든 관계없이 다가오는 올 2017년 닭 해에는 제발 그 5덕이 온 나라에 골고루 퍼져 나가길 기대하며, 특히 그중에서도 신()과 인()의 덕목만큼은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

 

(:절풍 [折風]/고구려에서 쓰던 관()의 하나. 그 모양은 고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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