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꿈

2007.05.09 05:55

최민자 조회 수:526 추천:12

                  나비 꿈

                                 최민자

  신 새벽 꿈속에서 제비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을 지나온 듯, 밤바다를 적시고 온 듯, 푸르게 일렁이는 물결냄새를 풍기며 나비들이 우왕좌왕 날아다녔다. 산그늘 어수룩한 각시원추리, 내 머리카락이 꽃술처럼 일렁였다. 몽롱한 꿈, 황홀한 멀미. 나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상의 곤충 가운데 가장 사치스런 날개를 가진 나비는 살아있는 추상화다. 신비스런 영감으로 가득 찬 천상의 화가가 섬세한 붓질로 그려 보낸 엽서다. 선명한 칼라, 화사한 프린트, 세련된 디자인. 생존을 위한 비상(飛翔)의 도구로는 다소 연약하고 거추장스러워도 아지랑이보다 여린 파문으로 허공이야 실컷 유린하며 산다. 비단처럼 우아하고 비로드처럼 부드러운 날개는 비에 젖지도, 구겨지지도 않는다.

  나비는 자유혼, 날아다니는 꿈이다. 정착을 거부하는 보헤미안이다. 집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지 않고 사랑을 해도 소유를 꿈꾸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도 잠시 뿐, 미련을 두거나 집착을 하지 않는다. 발그레한 꽃의 귓불을 건드리며‘Shall we dance?’라고 유혹을 해보다가, 웃으며 도리질하는 순정한 꽃들과는 가벼운 키스로 작별할 줄을 안다. 나비는 바쁠 것 없는 한량, 우울을 모르는 신사다. 먹잇감과 집 사이를 최단거리로 비행하는 벌들의 경제성도 유유자적한 이 풍류객에게는 그다지 부러운 덕목이 아니다.

  조직과 서열에 충성하며 질서와 협동을 사랑하는 벌과는 달리 나비는 고독한 아나키스트다. 누구의 명령을 받들거나 어떤 의무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편을 묻고 여왕을 모시는 상명하복의 체제나, 지배와 피지배의 메커니즘에는 아예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무리지어 날면서 파벌싸움을 벌이고, 공동주택 같은 데서 와글거리는 번다함도 애초 나비의 취향이 아니다. 금모래 빛 햇살로 샤워를 하고, 향기에 묻혀 꿀잠을 자는 이 태생적 유미주의자는 꿀을 모으는 일보다 춤을 추는 일에, 건실하고 지속적인 가치보다는 소멸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더 자주 유혹을 느낀다. 그리하여 꽃과 이슬과 무지개 같은, 향기와 바람과 저녁놀 같은, 오직 순간에만 머무는 무상한 것들을 따라 배회하고 또 방랑한다.
    
  나비는 온건한 평화주의자이다. 침도 없고 독도 없다. 더듬이를 부러뜨리며 날개옷을 뜯거나 먹을 것을 사이에 두고 앙칼지게 맞서는 법이 없다. 영역을 가르고 울타리를 친다든가 보초를 세워서 침입자를 몰아내는 비정한 짓거리는 아예 어디서고 배운 바가 없다. 풍요로운 꽃밭을 만나도 한 끼 식사에 감사할 뿐, 다음 끼니를 위해 도시락을 싸거나 냉장고 같은 데에 저장할 줄을 모른다. 어석어석 풀을 씹으며 배밀이를 하고, 어둡고 긴 우화(羽化)의 터널을 묵언수행으로 참아내는 동안, 사는 일의 진수란 다툼이 아닌 나눔, 소유가 아닌 향유에 있음을 깨우치게 된 것일까. 무소유를 신조로 하나 애써 무소유를 설파하지 않음으로 해탈의 경지를 가볍게 넘어선다.

  타고난 춤꾼이요 시인 묵객인 나비는 자연의 음계를 밟고 우주의 오선지를 오르내리며 보이는 음악으로 노래하고 출렁이는 가락으로 시를 쓴다. 수다스러운 일년초 꽃밭을 경쾌한 스타카토로 튕겨 넘다가, 폭설처럼 쏟아져 내리는 연분홍꽃잎을 휘감고 비엔나 왈츠를 추기도 한다. 녹차 밭을 스치는 바람을 만나면 지빠귀나 밭종다리 흉내를 내며 어설픈 공중발레를 선뵈기도 하지만, 춤이란 기실 덧없는 환(幻)일 뿐, 그 사소한 파닥임으로 존재의 심연에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무한 허공을 아무리 팔락거려도 자취조차 남지 않는 나비들의 춤. 추는 순간 사라지는 나비의 춤은 춤이라기보다는 구도의 몸짓이다. 꽃은 왜 슬프도록 빨리 지고 사랑은 왜 속절없이 변해버리는지, 왜 오래지 않아 밤이 오고 날개는 초췌해져 너덜거리게 되는지, 묵묵부답의 하늘을 첨벙거리며 언뜻번뜻 자맥질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벌 같은 사람과 나비 같은 사람이다. 맹수라는 이유만으로 시베리아 수호랑이와 사하라 암사자를 한 족속이라 우길 수 없듯, 사는 곳이 같다하여 하마와 악어를 이종사촌쯤으로 뭉뚱그려 헤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벌들의 근면함과 협동심에 늘 고개가 숙여지는 나는 벌집에 잘못 들어온 굴뚝나비인 양, 때 없이 방향을 잃고 파드득거리곤 한다.

  가슴팍 어디 겨드랑이쯤에 날깃날깃한 조각보 하나를 접어 넣고 살고 있어서일까. 속도와 효율에 서툴고 계산과 실리에 밝지 못한 나는 은밀하게 허공을 탐하며 가벼움에 대한 열망을 앓는다. 중력을 거슬러 자주 땅을 헛디디고, 허방을 더듬다 곤두박질을 치기도 한다. 때로 침에 쏘이고 까칠한 다리털에 긁히기도 하지만, 날렵하게 날개를 바꿔달고 그들의 왕국에 귀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별빛에 닿을 만큼 높이 날지도, 바다를 건널 만큼 멀리 날지 못해도, 나비 없는 봄이 봄이겠는가. 나비 없는 꽃밭이 꽃밭이겠는가. 베짱이의 노래가 개미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육중한 지구가 이만치라도 가볍게 천공에 떠 있는 것은 세상에 온갖 풍각쟁이와 이야기꾼, 낭만적 허무주의자와 어수룩한 꽃들이 꾸는, 아름답고 황홀한 나비 꿈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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