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갈매기

                                  양 미 경

처음에는 그것을 비둘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찾은 부산의 해운대 그 모래사장에 아이들이 과자부스러기를 던져 주고 있었고, 수십 마리의 새들이 떼로 몰려 과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동안 바라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비둘기인 줄만 알았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거 갈매기네!”
  내 눈을 의심 했다.
‘갈매기라고?’

다시 자세히 보니 먹이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녀석들은 갈매기와 비둘기가 반반 정도씩 섞여 있었다. 힘에 있어서는 갈매기가 당연 우세였다. 비둘기가 먹이를 물라치면 갈매기들이 사정없이 달려들어 목이며 꼬리를 사납게 쪼아댔다. 어떤 비둘기는 목덜미 털이 몽땅 다 뽑히기도 했다.  

십여 년 만에 찾은 해운대다. 넓은 바다와 모래사장을 끼고 천혜의 관광자원을 갖춘 이곳은 여름이면 파라솔이 즐비하고 사계절 연인들과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와본 해운대의 자연 경관은 거대한 도시의 그림자 뒤로 밀려나 있었다. 주변 산들은 즐비한 고층빌딩에 가려지고 도로는 하루 종일 차들이 정체하는 비즈니스 도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곳의 갈매기들마저 그들의 생존 터전이었던 바다와 섬을 떠나 인간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차지하기 위해 비둘기와 갈매기가 서로 무차별 폭력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처음엔 비둘기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때론 비둘기에게 먹이를 던져 주던 사람들도 비둘기를 무조건 연민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그 런 몰골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비둘기와 인간의 그런 애증관계는 이미 습관화 되어 있다. 그러나 갈매기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갈매기는 인간들에게 도전과 좌절 그리고 극복이라는 의미로 새겨져 있지 않은가.

몇 년 전에‘갈매기 섬’홍도(鴻島)에 갔었다. 통영에서 약 50㎞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는 홍도는 섬 주변이 거친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괭이갈매기는 절벽 틈바구니에 둥지를 마련하고 갓 태어난 것을 키우며 생활한다. 먹이를 찾기 위해 절벽 끝에서 날개를 펴고 비행을 위해 도약하는 모습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날, 일행이 절벽 근처로 다가가자 갈매기들이 절벽의 틈바구니에서 일제히 날아올랐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였을 것이다. 수평선을 비껴 오르는 그들의 자유로운 날개 짓에서 나는‘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떠올렸다.

‘리차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은 발간된 얼마 후 영화화 되었다. ‘할 버트레트’ 감독은 무려 2만 마리에 달하는 갈매기만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며, ‘닐 다이아몬드’는 이 영화의 배경음악을 만들기 위해 홀로 산 속으로 들어가 6개월을 지냈다고 한다.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 갈매기의 이름을 딴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조나단은 비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다. 멋진 비행을 꿈꾸는 그는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비상의 꿈을 꾼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이 찾기에만 열중하는 동안 조나단은 새로운 방식의 비행술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한다. 결국 무리들로부터 추방당하고 고립되지만 그에게 있어 외로움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갈매기들이 높이 오를 수 있는 비상의 영광과 자유를 소홀히 하는 것과, 그 진실을 외면하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먹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다른 갈매기들의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조나단은 더 아름다운 비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거듭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떠한 갈매기도 가 닿지 못한 아득한 공간으로 날아오르며 드디어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조나단이 수많은 좌절과 극복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그 한 마디로 압축된다. 그가 오랜 비행을 통해 가 닿은 꿈은 바로 우리의 꿈이다. 그는  인간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자신을 소모하지 말고 먼 앞날을 내다보며 자신만의 꿈과 이상을 향해 비상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삶의 참 의미를 깨닫기 위해 비상을 꿈꾸는 한 마리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그러나 그 후예들의 삶은 비참하기만 하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새우깡 하나에 아귀다툼을 벌이는 갈매기를 그의 후예라고 인정하기는 정말 싫다. 그것이 단순히 갈매기의 모습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바로 그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던가.

  나만의 꿈을 위한 날개를 가다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은 실패의 확률이 높은 이상으로 이끌기보다 항상 오늘 하루의 안식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하루의 안식이 주어진 것에 늘 안도한다. 그런 내가 새우깡 하나에 처절해지는 갈매기 더러 나무랄 자격이 과연 있을까?

높이 떠서 멀리 보기보다는 낮게 떠서 더 많은 먹이를 확보하는 것이 다급하기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잃어 버렸던 꿈과 이상들, 그것은 잃어 버렸기에 더 가슴 아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마치 퇴화된 날개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아물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듯이.
  나는 모래사장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아주 먼 곳에서‘끼룩!’하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젖혀보니 아득히 높은 하늘에 수평선을 향해 나는 갈매기 한 마리가 보였다.

  아아, 그는 어디로 가는가.

  아득한 수평선을 향해 날개를 펼친 저 갈매기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나는 그 갈매기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울대까지  차오르는 어떤 슬픔 때문에 목이 아파왔다.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현실 세계를 떠나 까마득한 초월의 공간으로 솟아오르던 조나단의 모습. 그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반주 따라‘닐 다이아몬드’의 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존재한다.
  영원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언어는
  그리워하는 페이지로 존재한다.
  그러면, 신이 당신의 날을 마련해 줄 것이니
  노래하라.
  고요한 목소리를 찾는 음악으로 노래하라.
  그러면, 신이 당신의 길을 인도 해줄 것이니.
        
       -영화 ‘조나단 리빙스턴시걸 의 배경음악 ‘닐 다이아몬드’ Be 일부분

  내 꿈을 위한 날개는  접었지만 그래도 어쩌면 나는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내 꿈의 어딘가를 낮게나마 날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지 날 위한 위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닐 다이아몬드’의 노랫말처럼, 영원의 주제가 기록된 지난날의 페이지를 가슴에 담고 있다면 언젠가 신이 길을 인도할지 알 수 없는 일.

   어느덧 수평선엔 노을이 지고 홀로 비상하던 갈매기는 아득히 사라졌다. 이제, 나 또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