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 세 편

2007.11.21 23:23

김용자 조회 수:713 추천:57

  
                           여우의 눈물

  소나기가 한 줄금 내리꽂히더니 지나간다. 총탄이 바닥을 훑고 지나가듯 후다닥 지나간다. 빗방울이 탁구공 크기다. 땅바닥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미처 빗방울이 끝나기 전에 한쪽에서 햇살이 비친다.

  여우가 시집을 가고 있었다. 연지곤지 찍고 시집을 간다. 초례청(醮禮廳)에 나와 선 여우는 신랑이 무서워 울고 그 눈물이 소나기가 되었다. 들으니 여우에겐 이미 약속된 총각여우가 있었더란다. 차마 어린 우리에게 적절치 못한 이야기가 되겠기에, 총각여우의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하듯 삭제가 되었다. 내가 크고 난 후에야 미루어 짐작해서 모자이크 안의 그림을 찾아 완성시켰다.

  총각여우는 어떻게 견디었을까. 시집가는 처녀여우를 그냥 순순히 보내주었을까.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나서 서럽게 또 서럽게 울었을까. 노랫말 같이 ‘고까짓 것 했더래요’ 하고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리고 말았을까. 그러면 무지개가 없어야 되는 것 아닐까. 나의 궁금증은 끝이 없었고, 지금도 궁금증은 이어진다.

  개울에서 목욕하고 있을 때 여우 시집가면 혹시 무지개가 뜰까 하늘을 올려보며 무지개 찾기에 바빴다. 무지개가 뜨면 여우는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기 때문에 우리 하동(夏童)들은 발가벗은 체 기원하듯 무지개를 찾았다. 여우가 행복하게 잘 살아달라고 무지개를 향해 두 손 모아 비나리 하던 어릴 때의 순수를 모두들 어디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지금도 여우는 시집가고 계속 울어서 소나기가 되는데. 모두 살기에 바빠서 무지개 한번 쳐다볼 여유나 가지고들 살아가고 있는지,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늙어가고 있을른지.

  커다란 토란잎을 우산처럼 쓰고 원두막이든 어디든 머리만이라도 밀어 넣었다. 옷은 젖어도 머리카락이 젖으면 안 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높다란 원두막에 올라앉아 쳐다보는 하늘은 어느 사이에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에 무지개가 반원을 그렸다. 소나기에 젖은 옷이 채 마르기도 전에 후다닥 여우는 시집을 가고 말았다. 무지개는 여우의 눈물에 비친 곱디고운 아롱이었다. 프리즘이었다.      
  

                           물 막  

  인도네시아 어디에서 ‘쓰나미’라는 태풍이 삽시간에 아름다운 해변을 휩쓸었다. 수 많은 사람과 재산을 쓸고 갔다.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미리 알고 피했다고 한다. 또 그곳 원주민도 태풍이 올 것을 미리 알고 높은 산속으로 피신을 했다. 모두가 살았다.

  강 상류에서 물막이 터지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미리 감지하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배워 익혔다. 들에 논물을 보려 갔던 머슴이 “오늘은 물막이 질 것 같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모두들 조심하면서 강가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물막이란 강 상류 쪽에 비가 많이 와서 하류에 엄청나게 밀려드는 물폭탄을 말한다.

  멍석말이 보다 수십 배나 더 큰 엄청난 큰 물 멍석이 둘둘 말려서 굴러내려 오면 그 가공할 공포.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쓴다. 집체가 떠내려 오고 집 위에 돼지, 닭이 수북이 올라있다. 누렁이 소가 둥둥 떠내려 오기도 했다. 산판에서 베어낸 아름드리 적송(赤松)이 집단같이 떠내려 오면 마을 청년들은 긴 동아줄 끝에 쇠갈고리를 달아서 휙 던져 물 섶으로 끌어 건져 올리기도 했다. 웬만한 집을 지어도 될 양이기도 했다.

  물막이 터지기 전에는 물비늘이 아른거리는 너무나 평온한 강이었다.
  십계(十戒)라는 영화에서 이스라엘사람들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널 때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맞아 저 물 멍석을 나는 어려서 보고 자랐어.’ 하는 생각과 함께 그때의 흥분이 밀려들었다. 여름에 접어들면 가끔 물막이 터지는 것을 구경했으면 좋겠다는 가당치도 않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정강이를 간신이 적실만큼의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강물에 거품덩어리가 떠내려 오면 어른들은 긴장을 하며 아이들에게 경고를 한다. “물 막 터진다. 모두 조심해라”

  물고기가 수면위로 고개를 쳐들고 있으면 밭에 나가있던 농부들은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강가에서 놀다가 물가 모래 속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거리는 소리가 나면 열중하던 놀이를 팽개치고 집에 왔다. 주먹 크기의 누런 거품덩어리가 떠내려 오고 얼마 후면 수박, 땅콩 같은 밭작물은 흔적도 없이 쓸려가고 만다.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여름 이야기다.

  산허리에 올라가서 집채 같은 물이 몸을 둘둘 말고 모든 것을 차례로 휩쓸면서 내려오는 그 무시무시한 흥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 까치집이 있는 커다란 미루나무도 맥없이 넘어진다. 원두막이고 논밭이고 순식간에 흔적이 없다. 싯누런 물이 멍석말이하는 그 흥분 때문에 인간사 3대 구경거리중의 하나가 물 구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등대

  3km 바다 수영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참가신청을 한 후 열흘간은 혼란의 나날이었다. 과연 이 나이에 완주가 가능할까. 파도에 휩쓸리지는 않을까. 취소를 할까,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도전해 볼만하지 않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을 출전 준비하면서 다스렸다.

  3km를 숫자로서는 알고 있었지만 시각적으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당일에 막상 바다에 나가 보며 밀려드는 공포감에 떨었다. 수평선 저 멀리 가물거리는 지점에 부표가 있다고 생각하니 공포감은 고통으로 이어졌다.

  “아이고, 어매야!”
  후회가 밀려든다. 아침부터 남편,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온 식구가 응원을 해야 한다고 이 더위에 야단이다. 회갑을 지난 철없는 여자의 장례 날이 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축제인양 신바람이 났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이 이리 떨리고 있는 것을 애써 누르고 있는 줄 우리식구들은 아무도 모른다.

  주의 사항을 듣고 몸 풀기를 했다. 1,500명이란 숫자를 한자리에 모아 놓으니 기가 질린다. 각양각색의 수영복이 꽃밭을 방불케 했다. 텐트가 천막촌 같다. 서서히 흥분이 밀려온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 나와 보라고 해 하는 오기가 발동을 한다. 나이별로 모자가 주어졌다. 손목에 번호가 적힌 팔지도 채워졌다. 먹은 나이도 억울한데 60살 이상은 회색 모자다. 힐끔거리는 젊은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했다.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완주에 목표를 두자’ 출발선에서 한발이라도 먼저 나서려는 신경전에 나도 끼어들었다. 마이크에서 총소리가 크게 들렸다.

  서서히 물살을 차고 나갔다. 둥둥 물위에 몸을 싣는 기분이 짜릿하다. 물이 사람을 흥분시킨다고 하지만 너무나 큰 바다는 나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공포감은 막상 물위에 뜨고 보니 어디로 갔는지 흥분만이 넘실거린다.

  반환점이 아직 먼 것 같은데 먼저 출발한 선두 그룹은 줄을 잇고 돌아오고 있었다. 싱싱한 돌고래 같다. 파도에 쓸려 자꾸 궤도 이탈을 한다. 수경(水警)이 급히 와서 방향을 잡아 준다. 앞선 사람과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파도에 몸을 싣고 넘실거리면서 서서히 앞으로 나갔다. 기록은 포기한지 오래다.

  자유형에서 배영(背泳)으로 영법을 바꿨다. 벌렁 누우니 갑자기 하늘이 열린다. 갈매기들이 구름 아래서 날갯짓을 한다. “아아! 자유롭다.” 바다와 한 몸을 이룬 듯, 어머니 품에 안긴 편안함이 왔다. 회색 구름이 이불같이 나를 덮고 있다. ‘하늘이 이불이라.’ 시신(屍身)이 관 속에서 덮는 이불을 천금(天衾)이라고 한다. 내가 갈매기 수(繡)를 놓은 천금을 덮고 누어있다. 그러면 지금 깔고 있는 바다가 지요이다. 요에는 어떤 물고기로 수를 놓았을까. 천금지요. 그렇다면 이 우주가 나의 관(官)이다. 갈매기가 계속 맴을 돈다. ‘이대로 멀리멀리 떠갔으면’ 수경이 보트를 타고 가까이 다가왔다.

  “포기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어머니 품에 안겨서 이렇게 편할 줄 누가 짐작이나 할까.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모르게 방향도 없이 물살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물을 갈랐다. 수경의 보트가 계속 따라오면서 방향을 잡아준다. 수경과 농담을 주고받다가 자유형으로 영법을 바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망망한 바다에 나와 나를 에스코트하는 수경이 탄 보트만 달랑 남았다. 속력을 내어야 할까보다. 어린 수경이 나 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든다. 회색 모자를 썼으니 수경들도 나를 봐 주는 것 같다.

  파도가 밀려왔다. 솟구치는 파도에 올라탔다. 팔을 힘차게 내저었다. 앞으로 죽죽 나아갔다. 결승점을 향해 더 빨리 치고 내달렸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힘이 빠졌을 리가 없다. 내 삶의 실체가 여기서도 들어 난다. 넘실넘실 파도가 나를 실어 간다. 순간 어느 한점(点)에 내 시선이 꽂혔다. 출발 때부터 지금까지 ‘자유의 여신’같이 부동자세로 한자리에 서 있는 내 남편이 보인다. 그는 등대였다.

  갑자기 환호소리가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나의 도착을 축하하고 있었다. 갈매기와 이야기하고, 수경들과 농담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동안에도 안전한 항해(?)를 위해 한 살로 불빛을 쏘고 있는 성실한 나의 등대를 향해 힘차게 물을 가른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1
전체:
214,689